출판하는 마음 일하는 마음 1
은유 지음 / 제철소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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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글은 좋지만 그게 책이 될 순 없어요

광화문 사거리 조선일보 건물 뒤 어느 카페. 지금은 다른 가게로 바뀐 카페에서 나는 출판사 편집자로부터 당혹스러운 말을 듣고 있었다. 원고를 보완해서 잘하면 책을 출간할 수도 있겠다는 정오의 희망곡과도 같은 말을 이어가던 때, 내부적인 논의를 거쳐 출간 논의를 중단하기로 했다고 했다. 이유도 구체적이었다. 잘 팔릴 것 같지가 않다는 의견이 있다고 했다. 나는 책이 팔린다는 단어에 미묘하게 감정이 꿈틀거렸다. 책은 물성을 지닌 매개이고 책 속에 담긴 사유와 사상과 텍스트가 독자에게 전달되는 것이 더 중요한 것이 아닌가요. 그렇다면 팔리는 것과 무관하게 좋은 글을 발굴해서 세상에 출간해야 할 의무가 있지 않나요. 나는 속으로 이렇게 중얼거렸다. 내가 생각하고 생산하는 글에 자부심이 넘쳐 흐르던 스물 일곱 살의 한 자화상이다. 편집자는 미안하다는 말을 남기고 먼저 일어섰다. 내 몫까지 계산하며 사라진 공간에서 나는 오래도록 자리를 뜨지 못했다. 마실 커피도 없는데 찻잔을 움켜쥐고 있었다.
 
책을 독자들에게 팔리고 읽히는 상품의 하나로 인식하기 시작한 건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앞서의 말을 조금 덧대야겠다. 내가 생각하고 생산하는 글에 자부심이 넘쳐 흐르던 것 맞다. 하나 더, 책에 대한 엄숙주의가 나를 감싸고 있었다. 책은 모름지기 읽어야 하는 것이며, 그 중에서도 인문, 문학, 예술, 사회와 같은 인문학 책을 읽어야 하는 것이며, 잘 팔리는 베스트셀러는 깊이가 얕기에 그런 책을 찾는 독자들 역시 이해할 수 없다며 혀를 찼다. 특별한 계기는 없으나 책과 책을 읽는 사람은 이래야 한다는 엄숙함이 오만함이라고 느낀 것은 꽤 최근. 은유 작가는 좋은 글이 꼭 책으로 만들어져 팔리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좋은 글과 좋은 책은 다르다고 했다. 그런 의미에서 책을 만들고 판매하는 인더스트리에 얽힌 여러 사람의 현실적인 이야기를 듣는 것에 정확하게 공감했다. 책은 미지의 세계를 향한 발판이자 얼어붙은 마음을 깨는 도끼이기도 하지만, 감정 없이 물성을 지닌 책 자체이기도 하다는 것.

 

http://blog.naver.com/marill00/221349468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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