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의 기쁨과 슬픔
알랭 드 보통 지음, 정영목 옮김 / 이레 / 2009년 8월
평점 :
절판



요즘 나에게 있어 화두는 무엇일까?

늘 이런저런 감정들에 휩싸여 살다보니 오히려 나 자신을 관찰하지 못한걸까. 내가 요즘 무엇에 가장 집중하는지, 아니면 무엇 때문에 집중하지 못하는 지 다시 한번 생각해본다.

일? 사랑? 사랑. 이건 음..나에게 있어 건강관리와 같은 개념이랄까. ‘항상 챙겨야해’ 라고 강박관념처럼 생각하고 노력하는 듯하지만, 정작 우선순위에선 뒷전이네. 만성적 고민거리라는 면에서는 둘다 맞다.

알랭드 보통을 이 책을 통해 처음 만나보았다. <불안>을 몇 번이고 만지작 거리다가 정작 사질 못했었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클까봐 전작들의 제목이 아주 매혹적임에도 불구하고 자꾸만 뒤로 남겨놓았었다. 냉면을 먹을 때도 한점의 고기를 맨 마지막에 베어물고 계란 후라이의 노른자도 마지막 숟갈에 먹었다. 물론 이런 습관들은 정글에 살면서 많이 고쳐지긴 했다. 얼른 집어들지 않으면 누군가 채어갈 수도 있다는 걸 알아채기 시작한 것이다.(역시..비유를 들어도 먹는 것이구나..) 좋은 것은 자꾸만 나중으로 미루는 것. 그러나 귀히 여기는 태도는 아니였음을 깨달았다.

책을 읽으면 점점..이 사람 보통이 아니구나..입이 쩍 벌어졌다. 알랭 드 보통은 왜 ‘보통’이면서 ‘보통사람’이지 못한가. 찰나에 가까운 일상의 세세한 느낌들을 이렇게 잘 묘사할 수 있다니. 그러다 알랭드롱의 ‘알랭 드’가 이름에 붙었기 때문이라는 실없는 소리를 하며 다루와 킥킥거렸다. 한 시대를 풍미한 꽃미남 배우와 보통사이의 간극을 그는 더 멋지게 채우고 있는 것이리라..

이번 여름엔 일이 나에게 가장 큰 화두였던 것 같다. 그리고 제목에 이끌려 주문한 이책.
 

일의 즐거움과 괴로움이 아니라 일의 기쁨과 슬픔이다. 전자는 일을 하는 사람이 감정의 주체인 반면 기쁨과 슬픔이라니. 일 자체가 생명력을 갖고 감정을 느끼기 시작한 걸까.

책을 보면서 친 밑줄이 너무 많아 아마 초서를 했더라면 손목이 나갔을지도 모른다. 공감백배를 외치며 그와 대화를 시도하기도 하고, 읽으며 혹시 나라별로 인쇄를 달리하나 하는 의심이 들기도 했다. 팬서비스를 다양하게 준비한 걸까 하는 의문이 들 정도로 ‘한국’에 대한 이미지, 상품, 지역명이 군데군데 숨어 있었다.

책은 10가지 산업 또는 직업에 대한 관찰로 이루어져 있다. 나에게 가장 흥미로웠던 건 직업상담, 물류, 회계. 직업상담을 업으로 하던 시먼스에게  나의 모습을 보기도 하고, 부레가 없는 참치의 가혹한 운명에 미안해지기도 하고, 회계사들의 사무실을 구경하며 함께 비웃기도 했다. 생산성을 높이기 위하여 더욱 잘게 쪼개어지는 일들-분업화의 현장에서 정작 내가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주위를 돌아보게 된다. 누가 나에게 하는 일이 무어냐고 물어보면 단박에 설명할 수 있는가. 중학생인 조카에게 1분내에 설명할 수 있을까.  

사람들이 일하기 위해 만들어 내는 일들중 하나가 아닐까. 영토확장전쟁이 여기에서도 일어나는게 아닐까. 당연하다고 여겼던 것들에 대한 의심이 다시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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