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제 : 전쟁사를 여행하고 싶은 어린 여행자들을 위한 입문서
과장을 조금 보탠다면 역사에서 전쟁이 차지하는 비중은 절반 이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만큼 전쟁은 인류의 역사와 발전에 함께한 사건이었으며 덕분에 수많은 역사가들과 대중들을 매료시키기에 충분한 소재이다.
아마도 이러한 갈증을 해소하기 위해서 수많은 밀덕들, 그리고 역덕들은 자료를 수집하거나, 혹은 직접 당시의 무구와 장비를 차려입거나, 그도 아니라면 수많은 게임을 통해 전쟁사라의 한 부분을 체험해보고자하는 시도를 해왔다.
하지만 앞서 전위대님이 지적한 것처럼 국내에서는 애석하게도 전쟁사에 대한 저작은 그렇게 많지 않다. 아마도 이는 민감한 문제와도 연관이 되는데, 한국 현대사에 있어서 군사정권의 등장은 필연적으로 전쟁사의 연구에 있어서 어떠한 방식으로든 악영향을 주었을 수 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해외에 비하여 다루는 것이 조심스럽고, 또 한정적이다.
그렇기 때문에 '전쟁으로 보는 서양사'는 수많은 어린 입문자들을 위한, 매우 훌륭한 입문서라고 할 수 있겠다. 혹은 뒤늦게 이 분야에 많은 궁금증과 지적 호기심을 해결하고 싶은 입문자들에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다만 늘상 그러하듯 비평해야 할 부분은 존재한다. 스스로를 헤비밀덕 혹은 헤비역덕이라 자부하는 사람이라면 무언가 싱거운 느낌을 받을 수도 있다. 책은 제목 그대로 전쟁으로 보는 서양의 역사를 다루고 있다. 하지만 책에서 다루고 있는 챕터들은 무언가 한정적이다. 작가가 본인이 가장 자신있는, 혹은 가장 좋아하는 부분을 집중적으로 다뤄서인지는 모르겠으나 책의 제목을 모두 아우르기에 배당된 챕터들은 사례가 부족하다. 또 한 지점에 집중되어 있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특히 십자군 부분은 시오노 나나미의 십자군 이야기와 김태권의 십자군 이야기와 일관 겹치는 부분이 많아 거슬리는 부분이 있기도 하다. 오히려 면과 면의 전쟁, 선과 선의 전쟁, 점과 점의 전쟁이라는 지점에서 전체적으로 유럽의 전쟁이 어떠한 방식으로 변화했는지에 집중했다면, 혹은 권수를 나눠서 시대별 서양의 전쟁을 다뤘다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마지막으로, 가벼운 인터넷 밈 혹은 드립 위주의 대사들은 보는 이를 즐겁게 하면서도 한 켠으로는 우려를 가져온다.. 역사 컨텐츠를 다룰 때, 고증보다는 그 안에 담긴 이야기가 더 중요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대해 필자는 2년 전에 이러한 글을 쓴 적이 있었다.
역사컨텐츠를 위한 스토리텔링을 만들어가는 것은 기본적으로 과거의 이야기, 그 중에서도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루는 것이다. 컨텐츠 안에 담긴 그 이야기를, 작가가 의도적으로 취사선택하여 역사적 사실 대신 재미를 우선시한다면 매우 곤란하다.
대중이 잘 모른다고해서, 자극적인 이야기를 선호한다고 하여 컨텐츠 안의 사실을 강조하는 대신 재미를 추구한다면 결국에는 역사적 사실과 거리가 먼 왜곡으로 점철된 폴란드볼과 같은 밈에 불과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 있어서 책 속의 밈이나 드립들은 조금 우려가 된다. 이 책은 그야말로 입문자들을 위한 입문서다. 입문자들에게 무분별한, 특히 어린 입문자들이 무분별한 밈과 드립에 노출되는 것은 딱히 달가운 일은 아니다.
잔뜩 날 선 비평들을 남겼지만, 그럼에도 입문서로서 전쟁사를 다루는 책이 나온 것은 일견 환영할만한 일이다. 최근들어서 전쟁사, 군사사를 여러가지 컨텐츠에 접목시키는 시도들은 자주 나타나고 있다. 최근 전쟁기념관에서 열렸던 한국 군사사학회의 발족도 이러한 분위기와 무관하지 않다.
필자 역시 구한말을 다루는 군사사 책을 쓰고 곧 출판을 앞둔 입장에서, 이러한 책들이 대중에게 유통되는 것은 너무나도 반갑다. 앞으로 수많은 입문자들이, 또 어린 '밀덕'. '역덕' 꿈나무들이 이 책을 접하고, 더욱 발전하기를 바란다.
대중과 학계를 이어주는 것은 결국은 컨텐츠이며, 이처럼 어리고 젊은 덕후들이 자극을 받고 등장해야만이 끊임없는 발전을 하는 것이니까. 어쩌면 한국 군사사나 전쟁사 분야에서 한 획을 그은 것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