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정 - 정명공주와 광해군의 정치 기술
박찬영 지음 / 리베르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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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화정>이 뭔가싶었다. 

얼핏 사람이름인가했는데 아하하..조선시대 선조의 유일한 적녀인 정명공주 이야기다. 

아니..정확히 말하자면 17세기 조선의 모습을 광해군의 이복누이인 정명공주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엮었다고하는 그 시대 정권다툼의 혼란상 이야기다.

조선의 역대 국왕 중 유일하게 폐위당한 2명의 왕인 연산군과 광해군. 연산이 폭군이라는 점에는 별 이의가 없겠으나 광해군에 대해서는 오늘날 현재도 학계에서 여전히 설왕설래 말이 많은데 그게 다 조선시대 당쟁이 지금까지도 그 맥이 완전히 끊기지가 않았다는 증거다. 따지고보면 참 무섭기도하다만. 

오늘날 학계는 조선시대 후반 서인 노론의 집권을 찬미하고 찬양하는 학자들이 상당수 아니..어쩌면 99%일까..여튼 그런 인물들이 대부분 포진하고있기때문에 당연히 이들은 죽자하고 광해군을 물고 늘어진다. 광해군은 어디까지나 무능하고 혼미한 암군이었고 그 유명한 폐모살제..그러니까 계모 인목대비를 정식왕비자리에서 내쫓고 이복동생인 영창대군을 죽인 폐모살제를 저지른 참으로 비인륜적 임금이었으니 서인들이 머리를 모아 맞대어 반란을 일으킨 인조반정이야말로 정당한 거사였으며 한마디로 말해서 서인집권과 노론일당독재시기는 조선이 찬란하게 빛나는 살기좋은 시절이었다는 거다. 

그러니 당연하게도 이 학자 및 교수님들은 인조 이후 몇대를 거슬러 내려와서 노론과 척을 지고 대립했던 사도세자와 정조마저 열씸으로 공격해댄다. 사도세자와 정조는 지금도 외롭구나. 강단사학자들이 그리도 못잡아먹어 안달이니. 

뭐 거야 어쨌거나...여튼 <화정>은 조선시대로는 드물게 83세까지 장수했던 정명공주를 주인공(?)으로 삼고있는데 아쉽게도 그녀에 대한 기록은 별로 찾아볼 수 없다. 관련해봐야 계축일기에서 약간, 실록에서 몇 줄 언급되는 정도인데 어차피 정명공주 아니라도 특별히 스캔들을 일으킨 인물이라면 모를까 별 잡음없이 살다간 여인에 대한 기록이 풍부할 리가 없고 오히려 그렇다면 그게 더 이상하다.

그래서 이 책도 대부분은 선조-광해군-인조 시기의 정치상황과 사건에 대해 서술하면서 부분적으로 정명공주를 언급하고 있는데 예를 들어보자. 책 제목인 '화정'은 정명공주가 쓴 서예글씨에서 나왔다. 華와 政인데 이 글씨를 구경한 사람이 있을 것이다. 나도 전에 봤는데 나야 서예도 서법도 모르지만 암튼 그 글씨가 아주 크고 힘이 있어서 여성이 쓴 것같지는 않다는 느낌을 받았었다. 

<화정>은 이 글씨를 포인트로 해서 정명공주가 추구했다고 하는 '빛나는 다스림'과 그 속의 자기수양과 애민정신을 강조하고 돌아본다.

정명공주는 그 일생을 간단히 소개하면 선조와 인목왕후 사이에서 출생하여 사랑받은 공주였지만 부왕이 죽고 광해군이 집권하면서 동생 영창대군을 비명에 잃었고 이후는 모친 인목대비와 서궁에 유폐되어 간난을 겪다가 인조반정으로 부귀를 누리게 된다. 그러나 인목대비가 승하한 후에는 인조의 의심을 사서 한동안 어려움을 겪기도했다. 다행히 인조가 세상을 떠난 후로는 별 탈없이 왕실의 족친 어른으로서 무난하게 장수와 부귀를 누리며 살다가 사망했다.

그러나 정명공주가 말년에 막내아들에게 내렸다는 유훈이라할까 처세훈이라할까 그런 글귀를 한번 보자.


내가 원하건대 너희가 다른 사람의 허물을 들었을 때 마치 부모의 이름을 들었을 때처럼 귀로만 듣고 입으로는 말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다른 사람의 장점과 단점을 입에 올리고 정치와 법령을 망령되이 시비하는 것을 나는 가장 싫어한다. 내 자손들이 차라리 죽을지언정 경박하게 말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런 말이 들리지 않기를 바란다.


가부장적 남계 위주의 조선사회에서 어차피 권력과는 거리가 먼 여자의 몸이기는하지만 이 글귀를 볼 때 그녀의 삶도 결코 쉽지만은 아니했던 아니 어떤 면에서는 살얼음을 딛는 것같기도했던 삶이었음을 보여주는 증거라고하면 지나친 과장일까.

표면적이건 어쨌건 암튼 정명공주를 주인공으로하고있기에 정치적인 면에서 <화정>은 광해군에 대해 야박한 평가를 내릴 수밖에 없으며 반대로 선조에 대해서는 지나치게 후한 평가를 하고있다. 그러나 그런 편파적 견해도 인조에 대한 평가에 이르면 어느 정도 균형을 잡고있는 것같기는하다. 

바람잘 날 없던 정치적 상황 속에서도 정명공주는 자신을 조용히 묵묵히 다스렸고 병자호란때에는 재물보다 백성의 목숨을 중히 여겨 피란민을 대피시켰다는 에피소드가 나온다. 그와같은 겸손함과 공순과 후덕함이 공주의 삶을 결국 안온과 평화로 이끌었을까.

서문에서 인간은 원초적으로 갈등관계이며 세상사도 따라서 갈등 그 자체. 그러니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공생코드인 관용, 친절, 배려로 서로 함께 공생할 수 있는 지혜를 찾자는 저자의 주장은 되새겨봄직한 一言이다. 세상에 선과 악의 싸움은 오히려 드물고 그보다는 선과 선의 싸움이 태반이라. 붕당에 찌든 조선도 선(善)이 선(善)을 죽이는 사회가 아니었느냐는 저자의 물음 역시 귓가를 울린다. 

화정이라는 화두, 빛나는 다스림...이는 현대에도 우리 사회에 변함없이 절실히 요망되는 사항이라 그 점 더욱 안타가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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