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선엽을 말한다
유광종 지음 / 책밭(늘품플러스)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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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백선엽 장군이 타계하면서 장례식이 대전현충원에서 육군장으로 거행되었다. <백선엽을 말한다>는 백선엽 장군의 일생에서 전반부를 그린 평전이다. 일제시대에 궁핍한 가난속에서 태어나 부친없이 자란, 말이 없고 명석한 소년. 어릴때부터 독서와 사색에 골몰하던 소년은 청년이 되어 군문에 들어간다. 만주 군관학교를 졸업하고 만주군 간도특설대에 복무하던 중 조국해방을 맞아 민족주의 지도자로 이름높던 조만식 선생의 비서가 되었으나 당시 북한에서 틀을 잡아가던 소련식 공산주의와 소련을 등에 업고 권력을 쥔 김일성으로 인해 월남하면서 미군정이 만든 군사영어학교에 들어간다. 혼란한 해방정국에서 백선엽은 임관한 이후 꾸준히 군대를 훈련하고 군사전법을 연구하며 맡은 소임에 충실했기에 미군의 신임을 받을 수 있었다. 조만식의 비서로 있을 당시 김일성과의 짧은 만남이나, 정보국장이 되어 숙군작업을 할 때 남로당 군사책으로 사형선고를 받았던 박정희 소령(훗날 박정희 대통령)을 구해준 일 등은 한편의 영화나 소설을 읽는 것처럼 흥미진진했다. 그리고 그 시기에 숙군, 즉 군대에서 좌익을 척결하는 작업이 없었더라면 나중에 어떻게 되었을지, 지금 생각해도 눈앞이 아찔하다. 


6.25는 준비없이 맞은 전쟁이다. 북한은 소련의 지원과 중공의 뒷받침으로 치밀하게 남침준비를 했다. 개전 초반에 북한군의 공세에 힘없이 밀렸던 국군의 사정을 감안해보면 숙군작업은 대단히 중요했다. 숙군작업이 없었더라면 대한민국 군대는 더 빠른 시간안에 더 철저하게 무너졌을 것이다.  -p.130


백선엽은 숙군을 성공리에 마친 후에 일선지휘관이 되어 광주로 내려간다. 당시 전라도에는 빨치산이 활개를 치고 있었다. 무장한 빨치산이 대한민국의 안정을 위협하고 있었던 것이다. 호남에서 준동하던 빨치산을 와해시키고나서 국군 1사단 단장이 된 백선엽. 그러나 불과 두 달 후에 6.25가 발발한다. 백선엽은 '군사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게 없다'고 했다. 병력, 화력, 보급물자 외에 끝없는 훈련이 쌓여야한다는 말이다. 밀고 내려오는 북한군에 서울이 함락되고 결국 1사단은 철수하고 후퇴해야했다. 전쟁터에 미군이 투입되었으나 낙동강까지 밀린 국군은 이제 마지막 일전을 벌여야했다. 배수진을 친 다부동에서의 혈전. 양쪽의 시체가 산처럼 쌓인 혈투였고 대격전이었으나 그 속에서도 백선엽은 미군의 준비성, 병력배치, 조직력, 전법을 배워나갔으며 마침내 다부동에서 북한군을 격퇴했을뿐만 아니라 덕분에 맥아더의 인천상륙작전이 성공하는데 일조하면서 평양공격의 선봉에 설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통일을 눈앞에 두고 중공군의 개입으로 다시 후퇴, 그리고 미국과 중공(중국)이 휴전을 희망하면서 휴전회담이 성사되는데 물론 이승만 대통령은 휴전을 강력히 반대하였으나 우리 민족에게 통한스럽게도 휴전은 성립되고만다. 다만 이 때 이승만이 반공포로를 전격적으로 석방해버렸으니 미국을 비롯해서 세계가 놀란 뉴스였고 참으로 속이 시원한 쾌거였다. 이승만 대통령이 대한민국에 자유와 민주의 틀을 놓았다면 뒤에서 미군과 교섭하면서(한미상호방위조약 등) 국군의 현대화와 증강에 힘을 쏟은 사람이 백선엽이다. 그의 리더십, 품성, 능력이 곳곳에서 빛을 발했고 신생 대한민국이 전쟁이 상흔을 딛고 다시 일어나 성장 발전하게 된 배경에는 백선엽 장군의 공로가 참으로 크다하지않을 수 없다.  

서울현충원에서 국장으로 장례를 치러야 마땅한 인물이지만 안타깝게도 그에게 친일프레임을 씌우고 멋대로 폄하하는 지금의 작태를 보면 이 땅에서 공산주의를 몰아내고 자유민주주의를 지키느라 목숨을 희생했던 분들에게 무어라 말할 수 없이 죄송할 따름이다. 그분들이 있었기에 대한민국이 유지될 수 있었건만. 백선엽을 친일파라 매도하는 이들은 왜 백선엽을 그토록 미워할까?  답은 일전에 모방송에서 백장군은 6.25때 '우리 민족에게' 총을 겨눈 사람이라고 했던 말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대한민국이 공산주의의 수렁에 빠지지않도록 굳건히 지켜냈기에 그토록 미워하는 것 아니겠는가. 그러나 걱정인 것은 오히려 지금이다. 그 때는 미군이 있었고 유엔군이 있었다. 그러나 냉엄한 국제현실에서 미국과 중국은 우리나라가 분단된 그 상태로 휴전을 맺어버렸다. 물론 그들로서는 당연한 일이다. 백선엽 평전을 읽으면서 그 때는 백장군이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었지만 지금은?하는 걱정과 우려가 머리속을 떠나지않았다. 어쨌든 백선엽은 그의 일생을 자신이 할 일에 최선을 다하고 세상을 떠난 분이다. 부디 평안히 영면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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