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드 뉴욕
이디스 워튼 지음, 정유선 옮김 / 레인보우퍼블릭북스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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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의 시대로 잘 알려진 미국작가 이디스 워튼의 단편소설집이다. 워튼은 여자로서는 최초로 퓰리처상을 수상한 것으로도 유명한데 자신이 상류층 출신이어서 그런지 뉴욕의 상류사회를 배경으로 한 소설을 많이 발표했다. 이 단편소설집에서도 그녀의 그런 성향을 확인할 수 있다. 모두 4편이 실려있는데ㅡ 헛된 기대/ 노처녀/ 불꽃/ 새해 첫날 ㅡ 그 중에 인상깊었던 작품 노처녀. 아마 제목만으로도 독자들 특히 여성독자들의 시선과 흥미를 끌었을 법하다. 이름있는 가문 출신인 델리아는 연인을 저버리고 부유한 가문의 남자와 결혼해서 안락하고 유복한 삶을 누리고 있다. 경제적으로 형편이 여의치못한 사촌동생 샬롯은 델리아 남편의 친척인 청년과 약혼중이지만 실은 델리아의 옛 연인과의 사이에서 몰래 딸을 낳았었다. 샬롯의 고백으로 이 사실을 알게 된 델리아는 샬롯의 병을 핑계로 두 사람이 파혼하도록한 뒤 샬롯의 딸 티나를 보살피고 나중에 남편이 사망한 뒤에는 샬롯까지 받아들여 함께 산다. 샬롯의 딸이면서도 델리아를 모친처럼 따르며 자란 티나, 티나에게 이모 역할을 하면서 깐깐한 노처녀로 변해버린 샬롯, 티나에게 묘한 애정을 느끼게 되는 델리아. 이 세 여인의 관계, 특히 티나를 사이에 두고 델리아와 샬롯 간의 미묘한 대립과 세월이 흐르면서 그들이 겪게되는 외면적 내면적 심리변화와 감정의 진폭이 그려져있는데 표면적으로는 얼크러져있는 그들의 관계요 내부적으로는 인간 내면의 심연에 도사리고있는 그 알 길없고 이해하기도 어려운 깊고 복잡한 감정이다. 평범하고 둔한 일반인과는 달리 예술가인 작가는 남달리 날카롭고 예민한 촉수를 지니고있기 마련인데 그들이 자신의 더듬이로 감지해낸 것들은 마찬가지로 평범한 일반인은 설령 안다고해도 이를 표현해내기 어렵지만 예술가인 작가들은 언어의 힘을 빌려 인생의 비의와 인간 내면의 모순을 그려내는 데 능하다. 작가로서 이디스 워튼의 수준과 솜씨를 이 단편소설에서도 충분히 가늠해볼 수 있다. 더구나 여기에 더해서 줄거리에 살을 붙인 것이 현실에서 드러나는 인간의 개인적 사회적 위선과 허위, 정신적 때로는 물질적 욕구, 이기심, 타산..이런 요소와 어우러져있는데 특히 도입부 부분에서나 때로는 중간중간 드러나는 신랄한 묘사가 쓴웃음을 머금게한다. 표면적으로 이 단편의 제목은 노처녀고 샬롯이 주인공인 것 같다. 하지만 유부녀인 델리아의 충족되지못한 욕망과 환상은, 그래서 티나를 통해 대리만족을 추구하고 티나에게 젊은 날의 자신을 투영하는 델리아는 어떻게 해석해야하는가? 

아쉬운 점은 단편이어서 등장인물의 심리 추이나 변동, 대립의 개연성이 충분히 설명되지못한 점이다. 특히 티나의 심리는 거의 그려져있지않은데 아마 장편이었다면 달라졌을 것이다. 마지막은 델리아가 티나에게 당부하는 말로 끝나는데 그야말로 전형적인 단편소설다운 여운을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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