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주의자 무소작 씨의 종생기
이청준 지음 / 열림원 / 2000년 1월
평점 :
절판


이 작품은 '무소작'이라는 평범한 인물의 일대기를 그려내고 있다. 그렇지만 그의 일대기는 전기의 성격을 전혀 띠지 않는, 우리 주변에서 흔히 스쳐 지나가는 평범한 인물에 대한 '이야기' 일 뿐이다.

'무소작' 이라는 이름에서 우리는 '아무 것도 거두어들일 것이 없음'이라는 의미를 상상하게 되고, 그래서 그것을 인생의 의미로까지 확장시켜볼 수 있다.

어렸을 때부터 소작은 바깥 세계에 대한 동경이 컸다. 갑갑한 내부에서 벗어나서 동경의 세계인 바깥으로 나가고자 하는 욕구는 결국 그로 하여금 끊임없이 세상을 떠돌게 한다. 그의 바깥 여행은 씨앗 파헤치기, 물고기 물 밖으로 끌어내 주기에서 시작되어 산아래 마을에서 산 위의 세계로까지 확장되고 드디어 그는 집을 떠나 서울로 가게된다. 그렇지만 거기에서도 그는 만족하지 못하고 중동에까지 가게되고 또 다시 세계 일주의 편력에 이르기까지 색다른 무엇인 '바깥'을 향해 끝없이 나아간다.

그렇지만 그가 얻을 수 있었던 것은 약간의 진기한 체험이었을 뿐. 바깥 세계는 끝없이 넓었고, '세상은 갈수록, 더 끝이 없고 알 수 없는 일 투성이'라고 결론을 내릴 때쯤, 어느덧 그의 내면은 고향을 향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힘들게 찾아간 고향은 너무 많이 변해있어서 이제 옛 자취를 찾기조차 힘들었다. 그렇지만 소작은 그곳에서 자신의 진귀한 경험을 파는 이야기꾼으로서의 위상을 확보함으로써 새로운 삶을 꿈꾸게 된다.

고향에 도착한 소작은 자기가 일생동안 떠돌아다니면서 경험했던 진기한 이야기를 마을 사람들에게 해준다. 처음 며칠 동안은 사람들은 할 일 조차 미루면서 그의 이야기에 빠져든다. 그렇지만 그런 관심은 오래가지 않았다. 처음에는 진지하게 그의 이야기를 듣던 마을 사람들의 반응은 이내 시들해져버린다. 사람 살아가는 이야기는 결국 한가지라는 것이었다. 마을 사람들의 이러한 반응에 무척 당황한 소작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 좀 더 흥미로운 이야기를 찾아 내려한다. 그래도 마을 사람들의 관심을 끌어내지 못하자 그는 이야기 자체를 흥미롭게 지어내기에 이르지만 결과는 참담한 것이었다.

자존심을 상해 고민하던 그에게 잠자리를 제공해주었던 집주인은 소작의 이야기에 자신의 진실이 녹아있지 않음을 따끔하게 지적한다. 이에 소작은 일생동안 그가 겪었던 바깥 세상의 진기한 모습이 내부의 본질성 에 의해 무참히 깨어지는 순간을 맞이하게 된다. 도대체 그는 일생동안 무엇을 찾아 헤매었던가. 결혼이라든가 돈 같은 일상적인 모든 것을 희생하면서 그가 평생 동안 추구했던 바깥 세상의 진실이, 안에서만 생활했던 사람들의 진실과 조금도 다름이 없음을 그는 느끼게 되는 데, 여기에서 우리는 '파랑새'의 이야기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떠돌이의 '삶'에서 그가 건져 올린 것은 무엇일까. 결국 겉과 안의 경계 없음이 아니었던가. 겉이든 안이든 한 곳에서의 옹골진 뿌리내림 없이는 그것은 영원한 부초의 삶일 뿐이다. 그런데 소작의 이런 삶은 결국 우리 자신의 삶의 모습과 너무나 많이 닮아 있다. 우리는 현실과 이 자리가 견딜 수 없는 어떤 것이며, 바깥 세상은 항상 구원의 세계라는 환상을 지니고 산다. 그렇지만 그 '바깥'이란 것은 허구에 다름 아니다. 그렇다면 그것은 무얼 의미하는 것인가. 삶이란 결국 현재에 충실하고 현재를 사랑함으로써 공고해지는 것이 아닌지. 물론 꿈은 우리를 시들게 하지 않는 싱싱한 '물주기'와 같은 것으로 그 나름대로의 가치가 충분히 있다. 그렇지만 그 꿈은, 우리가 처해있는 현실을 어떻게 이끌어가야 하는가를 가르쳐주는 지침이 될 때에야, 비로소 빛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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