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 문학의 탄생 - 한국문학을 K 문학으로 만든 번역 이야기
조의연 외 지음 / 김영사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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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학 번역이 지금 ‘K 문학’이라는 브랜드로 성장해 나가고 있다. 한국문학이 지금보다 더 흥미로운 초국가적 이야기를 생산하고 번역가의 목소리가 지금처럼 확대되어 나아가는 한, 이러한 성장은 지속될 것이다. 결국 머지않은 미래에 ‘K 문학’이 아닌 ‘한국문학’으로서 영미, 유럽, 일본 문학처럼 세계문학 안에 입지를 공고히 할 수 있을 것이다.

문학을 번역하는 일에는 어떤 고통이 따를까. 번역이란 작품에 대한 심도 있는 이해를 바탕으로 하여 작가의 문체를 최대한 살리는 방향으로 언어를 재구성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책을 읽으며 많은 번역가들의 목소리를 듣고 난 후에는, 작품의 두 번째 작가로서 문장을 짜는 일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작품이 본래 가지고 있는 뜻을 해치지 않으면서, 각국의 독자들에게 어떻게 가닿을지에 관해 수없이 고민하는 지난한 과정이 포함되는 일이었다.

제이미 장의 번역에는, 인물의 생애와 스스로의 생애를 비교하고 가늠하며 그의 삶을 아주 오래도록 깊이 있게 헤아리는 과정이 있었다. 문학은 해석의 여지가 다양한 만큼 자신의 해석에 몰두해 인물을 오해하는 일이 없도록 유의해야 한다. 그러나 아무리 객관적으로 바라보고자 노력한들 스스로의 감상을 배제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번역가는 이러한 상황에서도 균형적으로 사유하며 인물의 삶을 부드럽게 파고든다. 직접 인물과 만나는 경험을 상상함으로써 독자에게 전달될 이미지를 형상화하여 언어로 투입한다. 가벼운 마음가짐으로는 결코 불가능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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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실성에 떠밀려 쉽게 고려되지 않는 창조성을 질문하면서, 나는 재미있는 상상을 한다. 번역 작업은 부서지기 쉬운 작은 배를 타고 파도가 일렁이는 대양을 건너는 일이라고. 충실성의 가치가 번역의 닻이자 덫이라면, 창조성은 그 배를 출렁이게 하는 파도의 힘이다.

언어의 창조성이 가장 두드러지는 장르인 시를 번역하다 보면 충실성과 창조성의 사이에서 고뇌하게 될 것이다. 정은귀는 ‘시를 번역하는 일은 시인의 창조적 감각을 번역가에게 이입하는 일’이라고 말한다. 시어는 함축적이고 그 속에 수많은 의미를 내포한다. 그 다양한 선택지 중 단 하나를 골라 담아내는 일에는 끝없는 고민과 용기가 필요할 터다. 서로 다른 언어가 등가적일 수 없다는 것은 명백하고, 따라서 충실성만으로 번역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창조성이라는 파도가 함께할 때, 바다를 건너가는 구절은 새로운 빛의 언어의 물결을 타고 나아갈 것이다.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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