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왼발잡이 토끼의 무덤 - 청년 전태일을 키워드로 한 소설가 15인의 짧은 소설
강윤화 외 지음 / 삶창(삶이보이는창)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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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전태일이라는 이름을 처음 알게 된 것은 고등학생 때다. 수업 시간에 선생님께 잠깐 그 이름을 듣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에 대한 영화를 보았다. 아직 마음이 어렸는지 그때 당시 그 영화는 약간의 충격이었다. 개인의 안전이나 편안함보다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들을 위한 한 사람의 몸부림이 너무 처절했고, 반면에 세상은 그렇게 크게 동요하지 않았다. 아마 그 충격은 지금까지 살아오는 동안 내내 이어져 온 것 같다. 한진 중공업 사태로 목숨을 스스로 끊은 사람이 한둘이 아니지만 우리 세상은 크게 놀라거나 동요하거나 변하지 않는다. 처음에만 약간 놀랄 뿐 세상을 또 어제와 같이 움직인다. 사람이 죽었는 데도 움찔하지 않는 세상이 가끔음 무섭게 느껴진다.

  '전태일을 키워드로 한 짧은 소설'이라는 것을 보고 어떤 이야기를 담았을까 하는 호기심 반, 또 나만 움찔하게 하는 이야기인건 아닐까 하는 약간의 두려움이 반이었다. 짧은 소설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은 살면서 만나게 되는 사람들이고 내가 살고 있는 인생이었다. 책을 읽어가면서 내가 괜한 걱정을 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또 모른다. 내가 고등학생이었다면 '아, 어른이 되면 이런 세상을 살아야 하는 것인가'하며 또 충격이었을지도. 하지만 지금은 이미 겪어본 적이 있는 세상이어서 그런지 그다지 충격으로 다가온 것은 없었다. 다만 이야기마다 씁쓸함과 알 수 없는 짠한 마음을 남겼다.  

  맨 앞에 나온 강윤화의 <지금은 여행 중>에 나오는 두 여자 주인공은 늘 마주치는 그런 어린 여자들이다. 지금의 고단한 생활을 여행으로 여기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단함을 넘겨왔을까 하는 생각과 언제고 이들이 전태일이 되는 날이 오지 않아야 할텐데하는 생각이 들었다. 김하경의 <지를 자자! 찌찌!>는 지금을 사는 또 다른 모습의 전태일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진짜 전태일보다 과격하거나 거칠지는 않지만 어떻게든 목소리를 내어보려 애쓰는 전태일들이 있다. 어쩌면 우리들은 누구나가 마음 속에 크든 작든 전태일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만 목소리를 내느냐 그냥 그 목소리를 삼키느냐의 차이만 있는 것 같다.

  지금도 여전히 전태일이 몸을 불태웠을 때처럼 부조리하고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수없이 펼쳐지는 세상이지만 어느 새 거기에 파묻혀 잊고 지내왔다. 책을 읽는 동안 오랜만에 어릴 때 느꼈던 충격이 되살아나고 내가 살고 있는 세상에 대해서, 그리고 그 세상에서 사는 나의 태도에 대해서 진중하게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하지만 한정된 지면에 짧은 이야기에 의미를 담아내야 했던 한계 때문인지 매 이야기마다 마치 "주어진 주제가 잘 드러나도록 글을 쓰시오."에 대한 답장과 같이 느껴지는 부분들이 조금 아쉬운 점으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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