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네가 있는 요일 (양장) 소설Y
박소영 지음 / 창비 / 2023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102. 박소영 – 네가 있는 요일

#서평단 #도서협찬 #도서제공


p.61

“내가 지긋지긋한 불안을 끝내고 싶어서 오프라인으로 돌아오고 싶은 거라면, 현울림 넌 정말로 이 세계를 좋아하잖아. 이 세계가 굴러가는 방식을.”

최 사장 같은 옛날 사람들이 여전히 ‘현실’이라 부르는 이 세계가 굴러가는 법칙은 간단했다.

노력은 쉽게 틀어지고 간절한 바람은 가볍게 짓밟힌다. 그 무엇도 영원하지 않으며 아름다운 것은 찰나의 순간. 사랑하는 것에도 반드시 끝은 있다. 


p.62

(…) 엄마와 아빠를 다시 만날 수 없게 된 뒤로는 나도 어느 날 갑자기 죽을 수 있다는 걸 알았다. 그러니 내게 주어진 지금이 행복해야 한다는 걸 배웠다. 길가에 핀 흔한 들꽃조차 다시 볼 수 없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면 괜스레 한 번 더 뒤돌아보게 되었다. 그러면 들꽃은 낙원에서만 볼 수 있는 대단한 꽃 못지않게 특별해졌다. 이 들꽃은 매년 가을마다 피어나겠지만, 어느 가을부터는 더 이상 내가 존재하지 않을 테니까.


p.63

낙원에서는 부단히 노력하고, 간절히 바라고, 결국 실패하는 일이 잘 없었다. 뭐든 쉬웠고, 그래서 뭐 하나 굉장하지 않았다.


[Comment]

<네가 있는 요일>은 하나의 신체를 7명이 공유하여 각자의 요일에는 오프라인에, 나머지 6일은 가상현실 ‘낙원’에서 살아가는 ‘인간 7부제’가 도입된 미래 사회에서, 자신의 보디메이트에게 죽임을 당한 현울림이 진실을 밝히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이야기이다. 시선을 끄는 독특한 세계관과 이를 서술하는 상상력도, 목적이 뚜렷한 복수극도, 절절한 로맨스도 재미있었지만 이 작품에서 가장 좋았던 것은 주인공인 현울림을 통해 보여주는 ‘현실’을 대하는 태도였다.


울림은 무엇도 쉽지 않고, 무엇도 영원하지 않은 현실을 사랑한다. 실재하지 않는 아름다움보다 평범하더라도 생생하게 감각하는 순간을 가치 있게 여기고, 노력과 간절함과 우연이 만들어낸 현재를 특별하다 여긴다. 그래서 울림은 영생을 살 수 있는 낙원보다 현실에서의 무모한 길을 택한다. 끝이 정해져 있을지라도 지금 느끼는 사랑에 충실하기를, 어차피 알 수 없을 미래보다 끌어안은 오늘의 행복을 소중하게 여기기를 선택한다. 억울하고 분한 일을 겪고도, 최선을 다한 뒤에는 비극에 메어있기보다는 그 다음을 살아간다. 영생의 낙원도 없이, 막막한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울림의 씩씩함은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한다. 


서평단 미션 Q. 인간 7부제 사회에 살게 된다면 어떤 사람과 요일 메이트를 하고 싶나요? 

A. 신체를 공유한다는 건, 나의 생활패턴과 물리적인 공간 또한 공유하게 된다는 뜻이다. 그래서 취미가 맞는 사람과 요일 메이트를 하고 싶다. 합의하에 여러 나라로 여행을 떠날 수도 있고, 눈을 뜨는 공간에 좋아하는 책을 함께 모아두고 읽을 수 있다면 일주일에 하루 뿐인 나의 요일이 더 풍성해질 것 같다.


*출판사 창비(@changbi_insta)로부터 가제본 도서를 제공받아 읽은 후 기록한 개인적인 감상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별과 새와 소년에 대해
장아미 지음 / 자이언트북스 / 2023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99. 장아미 – 별과 새와 소년에 대해

#서평단 #도서협찬 #도서제공 


p.56

“모르겠다. 우리가 여기서 왜 이러고 있는지. 이게 다 무슨 짓인지.”

“어떤 일은 아무런 이유 없이 벌어지기도 해. 사소한 우연이 겹쳐서. 그뿐이야.”


p.175

준후의 진심을 알게 되는 것이 무서웠다. 그런 속내를 들키고 싶지 않았다.

차라리 모두 잊을 수 있다면. 망각한다는 건 상처조차 지워버린다는 의미였으니까.


p.184

“제가 저지른 실수를 바로잡고 싶어서, 그래서 여기에 왔어요. (…) 그러니까 제가 정말로 소망하는 건요, 준후를 원래 모습으로 되돌리는 거예요. 잊지 않는 거예요. 상처 입은 일까지 계속 기억하는 거예요.”


[Comment]

<별과 새와 소년에 대해>는 희미가 신목에 빈 소원 때문에 준후가 새로 변하면서, 세 소녀가 준후를 사람으로 되돌릴 방법을 찾아가는 이야기이다. 그리고 옛 신이 있는 집에서 자란 희미, 새를 사랑하는 민진, 신비로운 존재인 새별에 대한 이야기가 중간중간 진행된다. 다만 각 소녀에 대한 이야기도 비중 있게 나오다 보니 주요 줄거리가 단순함에도 불구하고 이야기의 속도감이 느리게 느껴졌다. 얇은 책인데도 앉은 자리에서 끝까지 쉽게 읽히기보다는 여러 번 끊어 읽었다. 


‘한국형 판타지’라는 소개처럼 신목, 업, 넋 등 한국 설화의 소재가 다수 사용되었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도시의 넋인 새별이라는 소녀였다. 산신이 마을과 자연을 번영하게 하는 것처럼, 새별은 도시의 고양이들과 소통하고 도시를 돌본다. 자연과 옛 신을 상징하는 신목과 도시를 상징하는 새별은 구분되어 보인다. 하지만 새별은 자신이 신목과 이어져 있음을, 자신의 힘으로 신목을 살려야 함을 깨닫는다. 한국 설화의 요소들로 도시와 자연의 공존을 그려낸 것이 흥미로웠다. 


새별의 성장이 도시와 자연이 연결되어 있음을 깨닫는 과정이라면, 희미의 성장은 타인의 세계를 그 자체로 인정하는 과정이다. 희미는 짝사랑하는 상대가 자신을 좋아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기 어려워한다. 우리는 나 아닌 세계를 완전히 알 수 없다. 곤줄박이의 세상을 알 수 없는 것처럼. 그로부터 오는 공포와 불안을 받아들이고 그 세계를 그대로 인정하는 것이 누군가의 진심을 제대로 알기 위한 준비임을 알게 되는 희미를 보며, 스스로를 돌아보게 된다. 


*출판사 자이언트북스(@giantbooks_official)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읽은 후 기록한 개인적인 감상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젊은 근희의 행진
이서수 지음 / 은행나무 / 2023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읽는 데에 오랜 시간이 걸렸다. 막히는 것 없이 읽히는 문장들인데도 유독 더디게 읽었다. 대단히 핍진한 열 편의 소설 속 인물들이 안타깝고, 밉고, 공감되고, 이해되지 않아서 그랬을까. 그 모든 인물들이 어딘가에 반드시 있을 것이라 여겨지는 걸 보면 평론가의 표현대로 이 작품은 ‘시대의 초상’일지도 모르겠다.

이서수 작가님의 <젊은 근희의 행진>은 청년들에 대한 단편집이다. 젊음은 화려하고 빛나고 아름다운 거라고 SNS와 유튜브에서 소리치는 이 시대에서, ‘종이에 앉는 단어도 이렇듯 제자리가 있는데’ 아무 곳에도 앉지 못하는 청춘들을 그리고 있다. ‘아무 곳’이란 한 몸 누일 집이기도, 자신의 재능이 빛을 발할 기회이기도, 꿈을 이룰 수 있는 공간이기도 하다. 각양각색으로 다양하게 불행한 청년들을 보고 있자면 마음 한 켠이 답답한데도 끝까지 읽을 수 있었던 것은, 지난한 삶에도 서로의 손을 놓지 않는 인물들 때문일 것이다. 

현실에 허덕이고 이상에 치이면서도 오늘을 살아가는 모든 젊음들에게, 많관부.


*은행나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개인적인 감상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46
문진영 지음 / 현대문학 / 2023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문진영 – 딩

#서평단 #도서협찬 #도서제공


p.59

네가 그토록 떠나고 싶어 했던 이곳에서 나는 이렇게 잘 살아 있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행복하지는 않지만 불행에 겨워 뭍으로 내던져진 물고기처럼, 그때의 너처럼, 그렇게 힘겹게 헐떡거리지는 않아. 버티는 게 아니라 그냥 놓았고, 그래서 평온하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p.61

누군가에 대한 이해가 그토록 순식간에, 무방비하게 덮쳐올 수 있다는 것에 주미 자신도 놀랐다. 그리고 후회했다. 그때 그 애를 혼자 두지 말았어야 했는데.


p.72

남겨진 사람이 아니라 그냥 여기 있는 사람. 누군가 나 왔어, 하고 돌아왔을 때 거기 있는 사람. 아무 때나 연락해도 늘 있는 사람. 그런 사람은 세상에 드물고, 주미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어졌다. 


p.85-86

보드에 뭔가에 부딪혀 상처가 나면 그걸 ‘딩’이라고 부른다고 P가 말해주었다. 왜 하필 동아리 이름을 그렇게 지었느냐고 재인이 묻자 P는 대답했다. 

서핑을 하면 딩 나는 건 당연한 거니까.

그렇게 말하고 P는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덧붙였다.

그건…… 내가 오늘도 파도에 뛰어들었다는 증거니까.


p.144-145

   쑤언에게 운이 좋다는 건 그런 뜻이었다. 내가 아니라 너인 것. 불행의 화살이 내가 아닌 네게 날아가 꽂힌 것. 능력도, 성실함도, 나이도 아무 상관 없었다. 왜 내가 아니라 너인가.


p.151-152

이 녀석처럼 누군가를, 무언가를 한 점 의심도 없이 믿을 수 있다면, 파도 타듯 위태롭게 흔들릴 뿐인 이 생에서 아주 잠시라도 닻을 내린 기분일 거야.


p.152

문득 생각난 듯, 쑤언은 주머니에서 귤을 꺼내 계단참 위에 올려놓았다. 그리고 고래를 닮은 신을 향해 기도했다. 떠난 이들에게는 깊은 안식을, 남은 이들에게는 폭설을 견딜 힘을 주시길.


P.171 작가의 말

이 소설을 쓰면서, 얼굴도 이름도 모르지만 나와 이어진 존재들을 마음으로 발견하면서 살고 싶다고 생각했다. 오늘 내가 분명히 건네받은 이 온기는, 누군가로부터 누군가를 통해 기어이 내게 도착한 것이라고.


p.171 작가의 말

그렇다는 사실을 알지도 못한 채 서로가 서로를 조금씩 구원하는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 단번에 일어나는 구원은 신의 일이겠지만, 인간들은 서로를 시도 때도 없이, 볼품없이 구해줄 수 있다고 나는 믿고 있다.


[Comment]

딩이란, 작중 내용에 따르면 서핑보드가 무언가에 부딪혀 생긴 상처라고 한다. 소설 <딩>은 한군데씩 ‘딩’이 나버린 다섯 인물의 이야기이다. 작품은 5부로 이루어져 있으며, 작은 어촌 마을인 K를 배경으로 다섯 인물의 시점이 각각 진행된다. 두고 떠나온 아버지에 대한 죄책감을 가지고 있는 지원, 늘 남겨지는 사람으로서 소모되어버린 주미, 연인의 죽음에 메어있는 재인, 사고 이후 살아갈 의지를 잃은 영식과 딸을 위해 잔인한 현실에도 울지 않는 쑤언. 


다섯 이야기를 관통하는 주제는 이해와 회복이다. 이해는 자신에 대한 이해이기도, 타인에 대한 이해이기도 하지만 본질적으로 상처에 대한 이해이다. 작품에서 보여주는 ‘이해’는 작품 속 문장과 닿아있다. ‘서핑을 하면 딩 나는 건 당연한 거니까.’, ‘그건…… 내가 오늘도 파도에 뛰어들었다는 증거니까.’ 작품을 읽으면서, 상처를 이해한다는 것은, 그 상처가 생긴 이유가 단지 생 그 자체에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를 만났기 때문에, 마음을 주었기 때문에, 결국 살아있기 때문에. 그리고 비로소 회복이 시작된다. 회복이 시작되는 계기가, 다름이 아니라 딩이 난 서로가 서로에게 건넨 사소하고 일상적인 것들이라는 점이 좋았다. 기도가 담긴 귤 하나, 오랜만의 전화 한 통, 울음을 받아주는 포옹 한 번, 함께 먹는 식사 한 끼 같은 것.


최근 읽었던 현대문학 핀시리즈의 <내가 되는 꿈>처럼 <딩> 또한 체험에 가까운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서사 그 자체보다는 인물들의 상처와 그 잔잔한 회복을 함께 겪어가는 기분으로 읽었다. 작가의 말처럼, 단번에 일어나는 구원이나 해피엔딩은 아니지만 불완전한 서로가 서로의 사소한 구원이 되어주는 일은 현실적이면서도 따뜻했다.


*출판사(@hdmhbook)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읽은 후 기록한 개인적인 감상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떠도는 별의 유령들
리버스 솔로몬 지음, 이나경 옮김 / 황금가지 / 2022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60. 리버스 솔로몬 (옮긴이: 이나경) - 떠도는 별의 유령들

#서평단 #도서협찬 #도서제공

 

p.71

중요한 건 자세한 내용이 없을 때 어떻게 하느냐지. 심문을 하는가? 진찰을 하는가? 아니면 명백한 해답에 안주하는가?”

역사, 기억, 개작에 있어서 사람들은 종종 명백한 해답에 안주했다. 애스터는 어머니의 일지에 대해서도 자기가 그러지 않았나 싶었다. 빤히 보이는 실마리를 조사하는 대신, 어머니가 미쳤다고 치부한 것은 아닌지.

 

p.196

모든 것이 흔적을 남기지만 흔적으로 충분치 않을 때가 있었다.

 

p.304

모든 것을 의미할 수 있는 단어도, 아무것도 의미하지 못하는 단어도 있었다. 사랑 아기 신 어둠.

 

p.382

애스터에겐 많은 것이 필요하지 않았다. 애지중지하거나 사랑해 주거나 좋은 말을 해줄 필요가 없었다. 그저 바라는 건, 애스터가 살아 있다는 사실을 형식적으로 존중해 주기만 하는 것뿐이었다. 자신이 실재하고, 숨쉬고, 생각하고, 움직이는 존재라는 점을.

 

p.453

내 언어에는 에 해당하는 단어가 없다. 그나마 비슷하게 말하려면 이티시렘 베레미 프릴러스라고 해야 하는데, ‘여기 모두와 동떨어진 존재라는 뜻이다. 우리는 그렇게 외롭다혼자를 말한다. 그건 이방인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 ‘약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Comment]

<떠도는 별의 유령들>'약속의 땅'을 향해 가고 있는 마틸다호를 배경으로 주인공인 애스터가 자살한 자신의 어머니의 흔적을 좇으며 벌어지는 일들에 대한 작품이다. 3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마틸다 호에는 군주제 하에 엄격한 계급 사회가 자리 잡았다.

 

이 작품은 현실이 아닌 세계를 그리면서도, 처절할 정도의 고통이 사실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하층 데크의 사람들은 대부분 여성 혹은 질병으로 인해 무성이며, 계급 사회의 최약자로 인간 이하의 취급을 받는다. 에너지와 식량 부족에 시달리며, 경비원의 감시와 폭력에 노출된다. 이는 폐쇄된 우주선이라는 배경을 통해 더욱 강하게 드러난다. 도망칠 곳이 없는 공간에서 가장 약자인 이들이 겪은 폭력과 모욕, 그로부터 느끼는 공포와 같은 감정이 굉장히 사실적으로 묘사되어 있어 괴로워하며 읽었다. 다만 우주선의 구조 등에 대한 설명은 친절하지는 않아 독자는 애스터가 그렇듯 책 전체를 읽으며 조금씩 언급되는 단서들로 천천히 마틸다 호에 닿을 수 있다.

 

*황금가지 출판사(@goldenbough_books)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읽은 후 기록한 개인적인 감상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