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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의 방 ㅣ 일본 추리소설 시리즈 3
다니자키 준이치로 외 지음, 김효순 옮김 / 이상미디어 / 2019년 2월
평점 :
[살인의 방] by 다니자키 준이치로 外

고려대학교 일본추리연구회가 역사적, 문학사적으로 의미있는 작품을 발굴하여 소개한다는 취지로 내놓은 "일본 추리소설 시리즈"의 3번째 책입니다. 첫 번째 책인 [세 가닥의 머리카락]과 [단발머리 소녀]가 출간되었지만 아직 접해 보지는 않았는데 3권 모두 단편을 엮은 책이라 조금 아쉬움이 있습니다.
추리소설이라는 장르문학이 이제 막 태동하는 가운데 순문학과의 경계가 불분명할 즈음의 작품이니만큼 정교한 트릭과 완성된 추리를 보여주는 오늘날의 작품과는 적잖은 차이가 있을 것입니다. 원조 추리소설로서의 가치는 엿볼 수 있지만 추리소설의 골자인 '사건의 해결' 면에서는 조금 느슨한 느낌이 드는 것입니다.

이 책에 실린 단편들 중에서 가장 많은 분량을 차지하고 있는 <살인의 방>은 순문학 작가에 의해 쓰여진 고전추리소설 치고는 상당한 임팩트를 안겨 주었습니다. 예정된 살인을 우연히 알게된 주인공 듀엣이 기괴한 살인현장을 엿보게 되면서 모종의 사건에 휘말리게 된다는 스토리인데요, 그 사건의 기괴함은 물론이거니와 살인이 일어나는 방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이 요즘의 스릴러소설 못지 않은 몰입감을 안겨줍니다.
대지진 와중에 아내를 잃은 사내의 갈등을 그린 <의혹>이나, 실험실에서 인간 아이를 만들어내는 과학자의 이야기 <인조인간>과 같은 단편들도 - 결말이 조금 아쉽지만 - 높은 수준의 심리묘사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유일하게 단 하나의 작품만이 수록된 기쿠치 간의 <어떤 항의서>는 묵직한 주제의식을 보여주는 사회파 소설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많은 사람의 목숨을 앗아간 연쇄살인마라도 수감중에 종교의 교화를 받아 모든 죄를 용서받고 내세를 약속받아 평안한 가운데 사형이 집행된다면, 그 처형의 과정이 온당한가 하는 것이지요.
극악무도한 사형수가 옥중에서 종교적 구원을 받아 행복한 감옥생활 끝에 혼연히 죽음을 맞게 된다면, 그것이야말로 현세의 처형제도가 가진 징벌의 기능이 종교에 의해서 훼손되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주장입니다.
각각의 단편들이 각각의 다른 맛으로 읽혀지므로 개인적으로는 즐겁게 읽었습니다.
다만 - 대부분의 단편집이 그렇듯이 - 이 책에 실린 단편들이 모두에게 고른 재미를 주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특히나 오늘날의 자극적인 소설들에 길들여져 있다면 조금 심심하거나 개연성에 아쉬움을 느끼겠지요.

반백년이 넘는 연식의 고전소설을 오늘날의 현대독자도 큰 위화감 없이 읽을 수 있는 깔끔한 번역은 장점인 것 같습니다. 뒷부분에 있는 작품해설이나 작가들의 연보 자료도 읽어보면 일본 추리문학의 태동기 작품들을 이해하는 데 좋은 자료가 될 것 같습니다.
앞서 나온 두권의 책과 더불어 '일본 추리소설 시리즈'가 계속 출간되어, 고전에서 근대에 이르기까지의 주옥같은 작품들이 발굴되어 소개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개인적인 평점은 75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