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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 적기독서 - 아이의 성장 속도게 맞는 학년별 독서법의 모든 것, 전면개정판 ㅣ 초등 적기 시리즈
장서영 지음 / 글담출판 / 2021년 1월
평점 :
"선생님, ㅇㅇ이가 만화책 읽어요!"
우리 반 아이들이 점심을 막 먹고 교실로 들어온 내게 고자질을 했다.
초등교사로 일하다 보면 아이들이 서로를 이르는데,
그날은 점심시간에 만화책을 읽는 학생 한 명이 고자질의 대상이었다.
중고등 학생이 읽는 '흑백만화'를 읽고 있는 것인지 서둘러 확인해보니
열 살짜리 아이답게 <흔한 남매> 만화책을 읽고 있는 것뿐이었다.
(내가 열 살 때는 비디오 가게 딸인 친구를 따라 19금 딱지가 붙은 이누야샤를 완독했었다.)
걱정하던 일이 일어나지 않아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고자질을 했던 아이에게
만화책을 읽는 것이 뭐가 문제냐고 묻자,
"학교에서 만화책 읽으면 안 되잖아요!"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학교에서는 만화책을 읽으면 안 된다.
아마 학교 안에서만큼은 '만화책이 아닌' 글밥이 많은 책을 읽기를 바라는 누군가가 단단히 교육한 것으로 생각하였다.
만화책 읽는 게 왜? 만화책 읽어도 돼요~ 라고 이야기하자
너도나도 앞다투어 만화책을 정말 읽어도 되는지 재차 물어본 뒤
다음 날 어떤 만화책을 들고 올 것인지 떠들기 시작했다.
얼마 남지 않은 점심시간 동안 반 아이들에게 내 경험과 함께
만화책을 통해서 배우는 것도 있으니 만화책을 읽어도 되지만,
만화책만 읽는 것은 안 된다는 이야기를 해주었다.
이미 들뜬 아이들에게 내 말 따위 들리지 않았겠지만, 그날 아이들을 하교시킨 뒤 많은 생각이 들었다.
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에 집에서 즐겨 읽었던 안데르센 동화 전집이 있었다.
인어공주의 비늘이 반짝이는 필름으로 마감이 되어 있는 것도 좋았지만,
가장 좋아한 것은 동화책 맨 뒷장에 부록처럼 있었던 "놀이 방법"이었다.
책의 내용과 관련이 있었는지 기억은 안 나지만,
엄마와 동화책을 재미있게 읽고 맨 뒷장을 펼쳐 감자/고구마 도장을 만들어 바닥에 종이를 깔아두고 온종일 물감을 찍으면서 놀거나, 찹쌀로 전을 부쳐 맛있게 먹었던 것이 생각난다.
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고는 내 생일 때마다 할아버지께서 책을 사주셨다.
나는 매번 '교육적이지 않은' 만화책을 골랐고,
'고지식한' 할아버지는 내 손으로 들기도 힘든 두꺼운 삼국지 만화책을 사주고 싶어 하셨다.
(그나마 만화책이어서 다행이었다.)
당시에는 삼국지 만화책을 펼치지도 않고 그대로 책장에 꽂아두었으나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쯤에는 삼국지를 너무 많이 읽어서 너덜너덜 닳아있었다.
내가 책을 읽었던 계기가 놀이를 하기 위해서든, 만화책을 읽고 싶어서였든,
결국 나는 책을 좋아하는 어른으로 자라났다.
편식하는 아이에게 억지로 음식을 먹이다 보면
그 음식에 대한 거부감만 더 커질 뿐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우리 반 아이들도 억지로 글밥 많은 책을 읽으면 책을 싫어할 것 같아
어떤 책이든 가까이 하다 자연스럽게 다른 책에도 관심을 가지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책에서 본 세상과 실제로 경험하는 세상이 합쳐져서 더 넓은 세상을 인식할 수 있도록
독서 교육 이외에도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게 이끌어주려고 노력했다.
책 <초등 적기독서>에서는 아이에게 스스로 어떤 책을 읽을지 선택할 기회가 필요하다고 이야기한다.
아이가 책 읽기에 매몰되지 않고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독서 교육 자체가 목적이 되면 안 된다고 이야기한다.
독서 교육은 아이가 인식하는 세상을 넓혀 주기 위한 수단이다.
내가 경험을 통해 어렴풋하게 느꼈던 것을 책을 통해 확인받는 것 같았다.
올해 가르칠 아홉 살 어린이들과도 보다 자신감을 가지고 독서 관련 수업을 할 수 있을 것만 같다.
교사인 나에게도 이렇게 나아가야 할 방향을 알려주고 자신감을 북돋아 주는 책인데,
가정에서 아이들을 훨씬 오래 보는 부모와 보호자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유익한 책이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