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지랄맞음이 쌓여 축제가 되겠지
조승리 지음 / 달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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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는 다른 장르의 책보다 훨씬 접근성이 좋다.

쉽고 간결한 문체도 한몫 하겠지만

누군가의 인생 이야기를 쉽게 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들의 에세이를 통해 우리가 겪을 수 없는

인생과 순간을 경험한다. 아마 그것이 에세이의 역할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 지랄맞음이 쌓여 축제가 되겠지 라는 제목은

아무런 배경 지식 없이도 독자의 손을 끌어당기기에 충분하다.

무슨무슨 상을 탄 누군가의 책, 팔로워 몇만을 달성한 누군가의 이야기 등등

거창한 타이틀이 없이 오로지 제목 하나만으로 사람들의 시선을 끌어당겼다.

나 역시 제목에 꽂혀 서평단을 신청했고, 운이 좋게 당첨되어 품에 안을 수 있었다.


이 지랄맞음이 쌓여 축제가 되겠지 의 작가는 시각장애인이다.

책을 펼치고 나서야 그가 시각장애인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그러나 작가는 자신이 장애인이란 사실에 좌절하지 않는다.

사실을 인정하며 더 나은 인생을 살아가기 위해 묵묵히 그러나

열심히 노력하고 있었다.

보이지 않아도 보고 싶은 욕망은 있다.

들리지 않아도 듣고 싶은 소망이 있다.

걸을 수 없어도 뛰고 싶은 마음은 들 수 있다.

모든 이들은 행복하고 싶은 욕구가 있다.

비록 제한적인 감각이라 해도 나는 들을 수 있고 냄새 맡을 수 있으며 낯선 바람을 느낄 수도 있다. 그것으로 행복하다면 여행의 의미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작가는 자신의 오랜 소망이었던 해외 여행까지 성공한다.

누군가에게는 그저 바람이나 쐬러 가는 쉬운 비행기 타기가

작가와 그의 친구들에게는 목숨을 건 엄청난 여행이 된다.

아무도 그들의 가이드를 해주려 하지 않았고, 어렵게 구한 가이드는

손발이 도통 맞지 않아 속을 썩인다.

그래도 시각장애인들끼리만 길을 나서 비행기를 타는 데 성공했고

타국의 땅을 밟았고, 낯선 음식을 먹으며 낯선 공기가 가득찬 대중교통을 타는 것까지

성공해낸다.

장애는 분명 편하진 않은 게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남아있는 인생 모두를 좌절하며 포기해야 할 이유도 될 수 없었다.

가족들은 그녀의 장애를 도무지 인정하기 어려워했다.

그 모습을 읽는데 참 마음이 아팠다.

장애학교에서 수석으로 졸업해 연설을 하는데도 부모님은 오지 않았다.

글을 써서 상패를 받으면 화장대의 다리로 썼다.

좋다는 약은 다 써보고 심지어는 화상까지 입게 만들었다.

눈 앞에서 딸이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말도 안되는 민간요법을 쓰기도 했다.

자식은 트로피가 아니다. 그러나 많은 부모들이 남 부끄럽지 않은 자식의 모습을

원하는 것 같다. 딸의 장애를 인정한다는 것도 죽는 것보다 더 싫은 일이었겠지.

하지만 그 과정에서 작가가 얼마나 상처를 받았을지 가늠이 안될 정도로 마음이 아팠다.

출근시간, 핸드폰을 보면 안전문자가 가끔 온다. 장애인 단체가 지하철 관련 시위를 하고 있어 해당 역을 무정차 할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혜화역은 이제 장애인 단체가 시위를 하는 상징적인 역이 되었다. 혜화역사 내 통로엔 이들을 언제라도 막아 가둘 수 있는 바리케이드가 곱게 정리되어 있다. 이런 걸 볼때마다 이제는 역한 마음이 든다.

얼마 전 버스를 탔는데, 아직 정차하지 않은 버스에서 어르신이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버스가 멈추기 전 미리 교통카드를 찍고 빨리 내리기 위해 대기하려는 것이다. 그러나 버스가 멈추자 중심을 잃은 어르신이 넘어졌다. 사람들이 얼른 도와주고 어르신은 후다닥 내렸다. 괜찮냐는 기사의 물음에도 다리를 절뚝이며 내리기에 바빴다. 어르신이 내리고 버스는 다시 출발했다. 조용해진 버스 안에 사람들의 걱정어린 목소리가 들렸다. 늙으면 그냥 집에 있어야 돼.

이동권은 누구나 누려야 할 권리다. 장애가 있다고 이동권을 박탈시키면 나중엔 늙었다고 집에 갇힐 게 뻔하다. 작가는 힘 없는 개인이므로 시스템의 잔인함에 어쩔 수 없이 적응하며 체념해야 했다. 이런 시스템의 문제는 혼자 해결할 수 없다. 우리는 그들의 시위에 기꺼이 동조의 응원을 보내줘야 한다. 지각한다고 짜증을 낼 게 아니라.

작가는 자신의 장래희망이 한떨기 꽃이라고 하며 에세이는 끝을 맺는다.

글을 읽으면서 정말로 이것이 픽션이 아니라는 사실에 놀랐고,

너무나 유려한 문체에 사진을 찍기도 했다.

그녀의 삶에선 아주 좋은 향기가 날 것이다.

누구보다 단단하게 뿌리 내려 아무도 쉽게 꺾을 수 없고 꺾이지 않는

한 떨기 꽃의 인생을 살아가길 바란다.



10분 거리를 3시간에 걸쳐 가야하는 것. 그것이 앞 못 보는 장애인의 삶이다. 하지만 나는 누구보다 빨리 체념한다. 그것이야말로 불행에서 빠져나오는 가장 빠른 길이다. - P1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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