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종의 7번째 아들이며, 후사가 없던 순종으로 인해 황태자로 책봉된 이은. 우리는 그를 영친왕이라는 이름으로 알고 있다. 이 책은 1907년 강제로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 일본 황족과 결혼을 하고 일본 군인으로 살아야 했던 마지막 황족인 이은의 삶을 통해 우리의 슬픈 역사를 반추하게 한다.세상의 모든 일은 어쩜 이미 정해진 순서대로 진행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인간의 인연까지도. 수많은 사람 중에 꼭 만나야 하는 사람은 운명의 궤軌에 의해 엮이게 되는 것일 테니까. p19일본의 황족이었던 마사코와 조선의 마지막 황태자인 이은은 정략결혼을 한다. 일본의 황태자비가 될지도 모른다는 말이 돌고 있던 때였기에 마사코에겐 결코 행복한 미래가 아니었다. 그럼에도 마사코는 이은과의 첫 만남에 설레었고 운명처럼 그를 받아들인다. 하지만 첫 아들 '진'을 데리고 떠난 조선여행에서 부부는 '진'을 잃고 만다. 슬픔을 가슴에 묻고 살던 부부는 아들 '구'를 얻으며 위안을 받는다. 1943년 이은은 일본의 제1항공군 사령관이 되었지만 자신이 황태자라는 사실을 새기며 조국을 위해 어떻게든 도움이 되려 애쓴다. 일본이 패망하고 이승만 정권이 들어서면서 '구황실재산처리법'을 만들면서 왕실의 동산 부동산은 국가 소유가 되어버렸고 국가로부터 생활비만 지급받는 처지가 되면서 이은은 그동안 살았던 아카사카 저택을 지키지 못하고 팔고 만다. 조선의 마지막 황태자로서의 위엄도 희망도 그렇게 '잃어버린 집'과 함께 떠나버리고 말았다. 아들 '구'를 미국으로 유학 보내고 며느리까지 우크라이나 사람으로 맞고 마지막 황족의 삶은 3개국 사람이 가족이 되는 슬픈 인연을 만들어낸다. 하지만 그 인연마저도 결국 지켜내지 못 한 채 병든 몸으로 이승만 정권이 마련해 준 낙선재에서 그는 생을 마감하고 만다....사는 일이 너무도 허망하게 느껴지오. 꿈같소이다. 이러다 바람처럼 스러질 수도 있으니. 죽기 전에 내 나라로 돌아갈 수 있을까.... p247조선의 마지막 황태자이지만, 일본인 아내를 맞이하고 일본군을 위해 평생 일해야 했던 이율배반적인 삶을 감내해야 했을 이은의 삶은 얼마나 비참하고 힘들었을까. 한편 일본인임에도 조선의 마지막 황태자비가 되어 일본 편도 조선 편도 들지 못한 채 조선에서도 일본에서도 욕을 먹어야 했던 마사코의 삶은 또 얼마나 힘들었을까. 허울뿐인 그들의 삶은 얼마나 많은 굴레를 짊어졌던가. '황족이라는 허명' 속에서 자신들을 곧추세우고 또 그 허명으로 인해 평생을 고통받으며 살았던 그들의 삶은 우리 역사가 만들어낸 비극이었다.<덕혜옹주>로 비참한 역사가 만들어 낸 한 인간의 삶을 들여다보게 했던 권비영 작가는 이번엔 덕혜옹주의 이복형제인 <이은>과 그 가족의 삶을 조명하며 다시금 우리에게 비참한 역사에 희생된 황족의 비사를 들려준다. 이 책을 읽으며 잠시나마 역사 속에서 그들과 호흡하며 함께 아픔을 나누며 공감할 수 있었던 좋은 시간을 가졌다. 이런 역사소설을 많이 접할 수 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