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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길엔 니체, 퇴근길엔 장자 - 회사 앞 카페에서 철학자들을 만난다면?
필로소피 미디엄 지음, 박주은 옮김 / 한국경제신문 / 2022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철학 책의 선입견은 어렵다는 거다. 니체의 철학을 무척 좋아하지만 해설서가 아니었다면 아마도 아직도 니체 소리만 들어도 고개를 흔들었을 것이다. 철학이란 게 어찌 보면 모든 인간에게 가장 필요한 학문인데 왜 철학 책은 그리 어렵기만 한 걸까?
이 책은 철학을 어려워하는 대중들에게 철학을 이해하기 쉽고 쓸모 있는 학문으로 전달하기 위해 여러 철학자들이 모여서 만든 <필로소피 미디엄>에서 펴낸 책이라서인지 아주 쉽다. 이게 철학 책이 맞나 싶을 정도다. 그리고 직장인들이 처한 현실에 빗대어 풀어가고 있어 머릿속에도 쏙쏙 들어온다. 직장 생활을 하며 겪을 수밖에 없는 다양한 갈등들이 나 혼자만의 문제가 아님을 인식시키고 위로까지 건넨다.
이 책은 1부는 니체를 비롯한 서양철학을, 2부는 장자로 대표되는 동양철학을 다루고 있다.
서양철학에선 하이데거, 사르트르, 마르크스, 카뮈, 니체, 칸트, 들뢰즈를, 동양철학에선 손자, 순자, 한비자, 장자, 공자, 맹자, 왕양명을 다룬다. 철학자들의 이름만 들어도 경직되지만 저자는 그들의 철학을 정말 재미있게 풀어나간다.
퇴사 고민은 왜 끊임없이 계속되는지, 월요병은 왜 생기는 건지, 사내 부조리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극복해야 하는지, 메말라가는 회사 생활은 어찌해야 할지, 끝없는 업무 속에서 생기는 짜증은 어찌 이겨내야 할지, 나의 제안이 무시당하는 회사에선 어찌해야 할지 등 현실 속 고민들을 쉬운 철학으로 접근해 누구나 고개를 끄덕이며 철학 속에 빠지게 한다.
죽음은 인간에게 최대의 한계지만, 하이데거의 눈에는 빤한 일상을 깨우는 찰나의 경종이었다' -하이데거 중-
'우리는 생명이 다하는 시점에야 자아의 창조가 완성되고, 나 자신에 대한 정의를 내릴 수 있다. 그 전까지의 나는 끊임없는 선택으로 자아를 만들어 나가고 있기에 계속 미완성인 것이다.' -사르트르 중-
'병이 났다는 것은 쉬어야 할 때라는 신호이듯, 부조리감은 삶을 돌아봐야 할 때라는 것을 일깨워준다.' -카뮈 중-
'공자는 낙담에 대해 우리에게 이렇게 말한다. 당신의 가치는 남이 정의하는 것이 아니고, 당신이 당신 자신에게 긍정하는 것이며, 당신이 스스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공자 중-
내가 이 책 속에서 발견한 철학자는 부조리를 다룬 카뮈와 잔혹을 다룬 한비자다. 내 삶 속 부조리는 어찌 받아들이고 어찌 이겨내야 할지 그리고 그 부조리에서 역으로 삶에 대한 긍정을 불러일으키는 카뮈의 철학은 무척 인상적이었다. 또한 유가사상의 세상 속에서 지나치리만치 현실적이었던 한비자의 철학은 깊은 울림을 남겼다.
철학은 우리 사는 세상과 동떨어진 학문이 아니다. 오히려 지나치게 현실적이고 우리가 힘들 때 가장 도움을 받을 수 있는 현실적인 학문이다. 그럼에도 어렵게 써진 철학 책은 삶에 지친 이들이 다가갈 수 없는 먼 곳에 있다. 힘들 때 펼쳐보고 나만 그런 게 아니구나 하며 위로받을 수 있는 이런 책을 좀 더 많이 만날 수 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