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옷을 입으렴
이도우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5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이도우 작가 특유의 문체가 있다.

[사서함 110호의 우편물]에서도 지나치게 담담하고 고요한 분위기가 있었는데 [잠옷을 입으렴]에서는 정점을 찍는거 같다.

아니 이 작품이 첫 작품이라고 했으니 사서함에서 많이 밝아진 것일지도 모른다.

내용도 내용인지라 우울한 기운까지 더해져 책을 읽는 내내 기분이 침체기를 맞았다.

분명 어린시절의 아옹다옹한 귀여운 모습들도 그려지고 풋풋한 첫사랑 이야기도 있고 그렇게 마냥 어두운 이야기는 아닌데 왜 이렇게 우울한 책이라는 인상이 드는지 모르겠다.

제목하고 표지그림을 보고 애틋한 로맨스소설을 상상했었는데 괜스레 먹먹해지는 가족소설이었다

 

 

 

이 책은 어쩌다 같이 살게 된 이종사촌 둘녕이와 수안이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서른 여덟살 둘녕이가 어려서 수안이를 처음 만났을 때 부터 다시 현재가 될 때까지 있었던 일들, 기억나는 일들을 담담히 말한다.

외할머니댁에 있던 가마솥, 부뚜막, 옥수수잎 가방이 나올 땐 배경이 조선시대인가 했는데 아마 내 부모님도 어렸을적에 딱 이런 모습으로 지내셨을 꺼라는걸 떠올리니 새삼 세상 변하는게 참 빠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부터 몸이 안좋고 어딘가 폐쇄적으로 보이던 수안이의 마지막을 어느정도 예상했기 때문에 무덤덤하게 넘겼는데 책의 마지막장을 넘긴 후 끊임없이 밀려드는 아련함에 여운이 오래 남았다.

읽을 당시엔 그냥 지나쳤던 앞에서부터 하나 하나 나오던 죽음들까지 한꺼번에 확 슬퍼치는 것 마냥 후폭풍이 거셌다.

아무리 어려서부터 몸과 정신이 약했다고는 해도 사실 평생 같이 살 수도 없는건데 둘녕이가 떠났다고 신경쇠약에 탈모까지 스스로를 망가뜨리는 수안을 완전히 이해할 순 없었다.

어느정도 외롭기야 하겠지만 어차피 인생은 홀로 걷는 길, 혼자서도 씩씩하게 살면 다 살아지는 것을 그렇게 나약한 정신으로 이 험난한 세상을 어떻게 헤쳐나가겠는가 하고 마음껏 타박하려고 했는데 그럴 시간을 주질 않았다.

괜히 미안한 마음까지 들었다.

 

38살의 나는 지금의 내 모습을 내 환경을 또 지금보다 훨씬 어렸을때의 나를 어떻게 기억하게 될지 궁금해진다.

둘녕에게 수안이가 있었듯이 나에겐 분신과도 같은 동생의 존재가 있다.

이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나와 동생의 이야기는 결코 이렇게 어두운 분위기는 아닐 거라는 거.

언젠가 이런 형식으로 소설이 아닌 진짜 내 이야기를 쓰고 싶다.

 

(이도우 작가님은 어떻게 이런 표현을 쓸 수가 있지 싶을 정도로 예쁜 문장을 쓰신다.

문장이 너무 고와서 책 속에 담겨있다는게 아까울 정도로.

내가 이렇게 고운 글을 쓰게 될 날이 과연 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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