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리의 분실물센터
브룩 데이비스 지음, 정연희 옮김 / 문학수첩 / 2015년 4월
평점 :
절판


9살 때였나 동생이랑 같이 달팽이 장례식을 치뤄주던게 기억난다.

길 위에 돌아다니던 달팽이 하나를 가지고 놀다가 잘못해서 달팽이집을 박살냈었다.

어린 마음에 미안하기도 하고 달팽이가 저주하는건 아닐까 무섭기도 하고

넋을 위로하자며 작은 무덤을 만들어 주고 그 앞에서 노래도 불렀었다.

어렸던 내가 생각했던 죽음은 딱 그 정도 였었다. 미안함. 조금 두려움. 그리고 잊혀짐.


책 속 주인공들은 다 죽음과 깊은 인연을 갖고 있다.

이 때의 나보다 2살이 어린 주인공 밀리는 어쩌면 너무 빨리 성숙해졌다고 생각한다.

<죽은 것들의 기록장>같은 심오한 노트를 만든다는거 자체가 평범한 어린아이와는 다르지 않은가.

아무래도 어린 나이에 아빠의 죽음이 꽤나 충격으로 다가온거 같다.

또 다른 주인공 애거서는 남편의 죽음 뒤에 매일매일을 한치의 오차 없이 같은 삶을 반복해서 사는 할머니다.

나는 돈주고 저렇게 살으라고 해도 못살겠다 싶을 정도로 지극히 단조로운 생활을 이어가는 모습이 죽지 못해 사는 것처럼 보였다.

마지막 주인공 칼 할아버지도 인생의 동반자였던 아내를 잃은 뒤 무기력하게 지내다가 요양원으로 보내지게 된다.

그러다 요양원을 탈출해 백화점에서 숨어 생활하는데 저게 정말 현실적으로 가능한가 싶었다.


어떻게 보면 전혀 특별하지 않은 그런데 또 결코 평범하진 않은 이 세 사람이 밀리를 백화점에 버리고 간 밀리의 엄마를 찾기 위해 오묘한 여행을 하게 된다.

얼마 전에 읽은 조조 모예스의 <원 플러스 원>이 살짝 생각났는데 느낌이 확 다르다.

이 책은 세상에 섞이지 못한 오합지졸 떨거지(?)들이 모인 느낌이랄까.

그래서 더 짠하고 따뜻한 시선으로 이들의 행보를 끝까지 지켜볼 수 있었다.


칼 할아버지가 요양원을 탈출할 때 했던 생각이 마음에 많이 와닿았다.

할아버지가 하고 싶은게 많다는 이야기를 한다.

사람들 많은 데서 큰 소리로 욕도 해보고 싶고, 여자한테 실연도 당하고 싶고, 꽃도 따보고, 코도 파보고,

손이 닿지 않을 만큼 높이 있는 뭔가를 만져보려고 펄쩍 뛰어보고도 싶고,

아주 힘껏 뭔가를 때려보고도 싶고.

그러고 마지막에 생각한다.

"내가 언제부터 이런 걸 실제로 하지 않고 기억만 하게 됬지?" 라고.

꼭 나한테 던지는 질문으로 느껴졌다.

내가 언제부터 생각만 하면서 산거지?

나도 할아버지처럼 요양원을 박차고 나오는 그런 순간을 맞이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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