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정치철학의 네 가지 흐름
한국철학사상연구회 지음 / 에디투스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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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좀 더 알고 싶었던 사상가들을 다루고 있네요.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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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년생 김지영 오늘의 젊은 작가 13
조남주 지음 / 민음사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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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은 서사로 전환될 때 가장 큰 위력을 갖는다. 지난 2년 동안 페미니즘이 급속도로 확산될 수 있었던 이유는 누구나 자신의 이야기를 페미니즘적으로 해석하고 외칠 수 있는 분위기가 형성됐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여성혐오라는 개념은 수많은 여성들이 경험했던 억울하고 불쾌했던 경험들이 성차별적 구조에서 기인한 것임을 깨닫게 해주었다. 하지만 그것이 추상적, 개념적 차원에서만 머물러서는 충분한 파괴력을 지니지 못한다. 각 개인들이 구체적 경험담으로 다시 풀어서 이야기하면서 공감과 확산의 위력이 발휘되었다. 그 얘기들 각각은 조금씩 달랐지만(차이), 크게는 모두 같은 이야기들(반복)이었다. 켜켜이 쌓인 그 이야기들이 한국 사회의 여성혐오를 부정할 수 없게 만드는 귀납적 증거로 쌓여나갔다.

그 증거들의 전형적 사례들을 모아 한 사람의 이야기로 구성한 것이 이 소설이라 할 수 있다. 김지영 씨가 가정, 학교, 대학, 거리, 직장, 시댁에서 겪은 일들을 모두 똑같이 겪은 이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 중 일부, 그와 유사한 일들은 한국에서 동시대를 살아간 여성들이 피할 수 없는 경험이었다. 이 소설의 어떤 에피소드들은 과장돼있다고 지적할 수도 있겠으나, 어떤 에피소드들은 오히려 축소돼있으며, 전반적으로는 평균에서 멀지 않을 것이다.

여성 독자들은 절절한 공감 속에서 읽을지 모르겠지만 남성 독자로서는 솔직히 완전히 와닿지 않는 부분들도 있었다. 그래서 나는 소설의 후반부에선 김지영 씨 대신 남편 정씨에 주목하며 읽어보았다. 정씨는 그리 나쁜 남편이 아니다. 수입이나 아내에 대한 배려에 있어서 평균적인 한국 남성보다 나은 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김지영 씨를 절망으로부터 구원하지 못했다. 그의 공감과 도움은 핵심을 비켜갔으며, 지영 씨를 사랑했지만 지영 씨가 주체적 삶을 살아가는 데는 오히려 방해물이었다.

이것은 무얼 의미할까? 남성들이 좀 더 잘 해야 한다는 것일까? 남편들은 페미니스트가 되어 아내를 더욱 많이 배려해야 한다는 것일까? 아니다. 그런 생각조차도 남성우월적 생각이다. 좋은 남편을 만나야 여성이 행복해진다는 얘기와 페미니스트 남편을 만나야 한다는 얘기는 큰 차이가 없다. 남자가 여자의 삶을 좌우할 수 있는 구조 자체가 문제인 것이다.

남성 페미니스트는 자신이 사랑하는 어떤 여자를 구원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이 구조적 억압과 불평등을 분쇄하는 데 힘을 보태는 작은 돌멩이일 뿐이다. 남성 페미니스트가 어떤 개인들을 구원하는 데 있어서 남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하다면 오만한 생각일 것이다. 남성 페미니스트가 엄청난 부자가 아닌 한 한국 사회에서 남편 노릇을 하게 될 페미니스트는 김지영 씨의 남편 정씨보다 별로 나을 것도 없을 가능성이 90%이다. 감히 말한다면 한국 사회 자체가 변하지 않는 한 페미니스트 남성은 누구도 구원할 수 없다.

여성들이 페미니스트 남자를 찾아다니는 세상이 아니라 섹시스트 남자를 응징할 수 있는 세상, 그리고 어떤 남자를 만나느냐가 아니라 여성 자신의 의지와 행동에 의해 삶이 좌우될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페미니스트의 목표가 되어야 할 것이다. 따라서 남자 페미니스트의 증가는 여성들의 좋은 남자 선택의 가능성을 높이기 때문이 아니라 사회변혁의 동력이 높아진다는 데 의의가 있다. 남페미를 좋은 연애상대라는 관점에서 바라보거나 평가하는 것은 이성애중심, 결혼중심 사고에 얽매인 사고인 것이다.

한편 나는 <82년생 김지영>이 보편적 여성상을 그려냈듯이 보편적 남성상과 시대의 과제를 함께 말하는 서사 역시 나와야 한다고 생각한다. 일베류에서 표현되는 이 시대 남성의 서사는 IMF 시절의 서사 <아버지>(김정현, 96년작)에서 벗어나질 못하고 있다. 가정을 사랑하고 지키려 했지만 시대의 변화 속에서 무너져가는 가부장에 대한 애틋한 정서는 20년 전에나 유의미한 것이었다. 그것은 저묾에 대한 고별로서나 의미가 있었지 그 이후에도 그 정서와 서사를 반복하는 것은 추함에 다름아닌 것이다.

아니, 어쩌면 새로운 남성 서사가 아닌 남성성의 해체를 말하는 서사가 필요한 것일까? 답은 아직 모르겠지만 가부장으로의 회귀가 아님은 명백하다. 82년생 김지영과 같은 삶이 더 이상 반복되지 않게 하기 위한 남성의 역할은 거기에 있다. 누군가의 좋은 남편/남친이 되는 것이 아니라 가부장제의 억압을 타파하고 그 안에 갇힌 남성성과 여성성을 구원하는 것. 그 목표하에서 서로 다른 젠더들은 페미니즘이라는 하나의 깃발로 뭉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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