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두대와 욕조
조나탕 베르베르 지음, 이상해 옮김 / 열린책들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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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너에게 머리에 총알을 박아 넣는 것보다 훨씬 더 잔인한 복수를 제안한다면 어쩔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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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
정말 빛나는 단어다.

지배층의 권력에 맞서 싸운 피지배층이 떠오른다.

마치 옳게 된 정의 같다.

그런데 혁명은 이긴 자에 의해 쓰인 역사이다.

‘전쟁에서 죄 없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

혁명이라는 이름으로 덧칠된 전쟁의 색깔 또한 빛날까.

ー

프랑스 혁명기, 공화군으로 전쟁에 참전했던 시몽은 전투에서 승리하고 자신의 고향인 낭트로 돌아오게 된다. 하지만 그를 맞이해줄 가족은 없었다. 아버지가 사랑했던 시계 공방은 난장판이 되어 있었고, 아버지는 총살 당하고, 어머니는 투옥되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죄 없는 이들인데도.

시몽의 머릿속을 채운 것은 복수였다. 이 모든 일에 얽혀 있는 권력자 카리에르에게 복수하기 위해 그에게 총을 겨누지만, 누군가 막아선다.

“내가 너에게 머리에 총알을 박아 넣는 것보다 훨씬 더 잔인한 복수를 제안한다면 어쩔래?”

시몽은 자신을 창녀라고 소개한 샤를로트, 그리고 혁명 재판소 소장 펠립스와 함께 카리에르를 끌어내리기 위해 손을 잡는다.

그들의 ‘혁명’은 생각만큼 잘 풀리지 않는다.

차라리 카리에르가 용변을 볼 때 머리에 총을 쏘는 게 훨씬 깔끔했을 거다. 그랬더라면 시몽이 혁명이라는 이름 아래 끔찍한 참상을 그저 바라만 보고 있지만은 않았을 텐데 말이다.

시몽은 전쟁터에서 남의 생명줄을 끊고 다니며 제 생명줄을 이어간 사람이었다. 그렇게 살아남았다.

전쟁의 참혹함은, 그야말로 ‘전쟁’이라는 단어 하나로 이해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시몽은 혁명이라는 잘 포장된 전쟁을 마주하게 된다.

살아남기 위해, 승리를 거머쥐기 위해 해야 할 일을 하면 됐다. 그때까지 시몽은 전쟁의 법칙을 들어 자신의 개인적인 책임을 희석하며 만사를 대하는 그런 세계관에 만족했다.

이 전쟁터 위에는 살육을 즐기는 사람은 없다.
그저 사랑하는 것들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신념을 따라 전쟁터를 밟은 사람이 있을 뿐이다.

하지만 그 신념이 모든 것을 정당화하며 면죄부가 되어주지는 않는다.

그러나 혁명은 이긴 자에 의해 쓰인 역사이므로,
그들의 신념은 정당화되고 면죄부를 받아 기록될 뿐이다.

많은 이들이 흘린 피를 가차 없이 밟고서 이루어낸 혁명은 결국 옳은 일이 되고야 마는가.

우리나라에도 역사에 기록된 ‘혁명’이 있다.

나는 혁명으로 얻은 자유를 거머쥔 채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그 자유를 거머쥐기 위해 과거 많은 사람들이 피를 흘려야 했음을 알고 있다.

나에게는 자유가 있는 현재가 ‘옳은’ 세상이지만,
그들의 죽음이 ‘옳은’ 희생이라고 할 수는 없지 않은가.

그래서 부끄럽다.

우리는 과거의 참상이 기록되어 있는 이곳에서, 결코 자유로워질 수 없다.

『단두대와 욕조』는 나에게 혁명이라는 정당한 명분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그리고 그 질문 앞에서 쉽게 대답할 수 없는 나를 마주하게 한다.

마음이 참 착잡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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