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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소리가 들린다 ㅣ 소설Y
최정원 지음 / 창비 / 2026년 8월
평점 :
본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 제공을 받아 솔직하게 작성되었습니다.
나무병.
감연된 사람을 나무 같은 형태로 변형시키는 바이러스.
세상을 끔찍하게 만든 바이러스가 퍼진 이곳은, 정이세가 알고 있는 세계로부터 몇십 년이나 떨어진 미래였다. 분명 병원에 있어야 할 자신이 왜 물속에 빠져 있던 건지, 어째서 이런 세상과 마주하게 된 건지. 기억에 공백이 있는 그는 자신을 구해준 서지헌과 함께 셸터 ‘세종’으로 향하게 된다.
그곳에서 정이세는 자신이 인간의 몸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인간의 기억을 가지고 있는 자신이 인형이라는 것도 충격적인데, 그 인형의 몸에 배터리가 없단다.
게다가 자신을 구해 주었던 서지헌은 나무병이 진행되고 있다고 한다. 서지헌은 사람들 몰래 셸터를 떠나 약을 보급하기 위해 도시로 향하고, 정이세는 그의 여정에 함께하게 된다.
하지만 그들의 여정은 순탄하지만은 않다.
인간과 괴물의 대치, 그리고 인간과 인간의 대치.
인간은 나름의 일상을 지키기 위해 움직인다. 살아남기 위해 움직일 뿐, 누군가의 잘못이라고 콕 짚어 말하기에는 안타까운 상황의 연속이다. 하지만 그런 선택의 순간에도, 가장 인간다운 선택을 하는 이들이 있다.
“선의, 사랑, 믿음 같은 것들. 세상이 이 꼴이 나기 전부터 인간이 가치 있다고 여겼던 것들. 역사와 전통이 있는 미덕들 말이다.”
소설을 읽다 보면 다소 유치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도 그럴 게 믿음이라니, 너무 낭만적이지 않은가.
모든 것이 망해버린 세상에서 낭만을 찾는 것은 정말 힘든 일이다. 믿음은 배신으로, 선의는 악의로 돌아오는 어둡고 캄캄한 곳에서 누군가를 믿는다는 것은 어쩌면 가장 어리석은 선택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인간은 가끔, 말도 안 되게 어리석은 선택을 한다.
“그럼 난 믿음, 믿음을 고르련다.”
망가진 세상에서 우리 모두가 사실은 그것에 기대고 싶었을 테니까.
희망은 희미하다. 주변을 둘러보면 나무병으로 나무가 된 인간들이 있다. 누군가의 가족이고, 누군가의 연인이고, 누군가의 친구겠지. 소중한 이들을 떠나보내고, 믿었던 이들에게 배신당하며 마음이 베여나간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재난은 그들을 멈추지 못하게 만들고, 지치게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한 선택을 하는 이들은 대체 어떤 찬란한 빛을 가지고 있는 걸까.
이 어둡고 캄캄한 세계를 밝게 비추는 그 빛은, 그들이 주인공이라는 이유로 그냥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다. 두려워하고 의심하면서도 결국 누군가를 믿고, 누군가를 위해 자신을 기꺼이 내놓는 선택은, 그들을 주인공으로 만들었다.
『목소리가 들린다』는 최정원 작가님의 전작 『허밍』과 같은 세계관을 가지고 있다. 전작을 읽고 이 소설을 읽는다면 보다 큰 감동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소설에 흩뿌려져있는 『허밍』의 흔적들을 찾는 재미는 덤이다.
이 소설은 세상이 인간에게 다정하지 않을 때에도 서로를 끌어안는 이들의 이야기다.
지금 우리의 세상에, 가장 필요한 소설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