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버스를 탄다
최승희 지음 / 뭉클스토리 / 2020년 1월
평점 :
품절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학생의 삶을 끝내고 사회인의 삶을 시작하면서 지금까지 늘 부유(浮游)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어딘가에서 일해도, 어딘가에 소속이 있어도 나는 정착하지 못하고 떠다니는 입자와 같다는 생각을 하였다. 아직도 이어지는 그 고민 가운데 <나는 버스를 탄다>를 읽게 되었다.


*


'스피아'는 마치 '나' 같았다. 작품 미생 속 '장그래'를 나와 동일시했듯 스피아에게도 같은 결이 느껴졌다.

'너도 부유하는 사람이구나.'



어찌 보면 스피아는 버스 기사의 사회 속에 아무런 문제 없이 녹아든, 모범 인턴(*작품에서는 인턴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는다.)이다. 유기사님의 지도 아래 많은 것들을 배우고, 자신과 동갑인 마스크가 이리저리 끌고 다니며 가르쳐주는 것들에도 불만이 없다. 누군가의 가르침대로 조용히 그 사회에 적응해나가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라이방에게는 다른 태도였다. 물론 라이방이 사람의 속을 삭삭 긁는 말도 하거니와 마스크에게 이미 들은 말도 있거니와, 여러 이유가 있지만 유난히 스피아는 라이방에게만 날이 서 있다. 그런데 나는 그 모습이 오히려 실제의 스피아와 닮아 있다고 생각했다. 누군가에게 화를 쏟아내고 싶지만, 그 화를 사실 나에게 쏟아야 하지만, 쏟아낼 수 없는 것들이 그런 식으로 표출되는 것이라고 느꼈다. 그 지점이 나와 닮았다고, 내 맘대로 생각해버렸다. 어딘가에 정착하지 못한 마음이 만들어낸 화를 마음속에 지닌 사람, 스피아.


*


스피아는 아직 그곳의 spare(스피아)였다. 나도 아직 이곳의 스피아이다. 그래서 나는 늘 화가 나 있었고, 스피아도 늘 화를 마음속에 담고 있었다.

언제 스피아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만 고민하다 보니 난 늘 조급했다. 조금이라도 빨리, 조금이라도 많이 인정받기를 바랐다. 그런데 그 마음이 나를 인턴의 마음에서 자라지 못하게 한 것 같았다.

사실 난, 우리는 어딘가에서 늘 스피아일 수밖에 없다. 처음 하는 일이 무언가든, 내가 처음 그 일을 잡을 때는 스피아다. 밥 짓는 일을 엄마에게 처음 배우던 순간, 엄마는 나의 지도 위원이고 나는 스피아다. 사수에게 일을 배우는 순간 내가 부사수고, 사수가 지도하는 입장이듯. 어떤 일이든 능숙해지기까지는 필요한 시간이 있다. 그런데 나는 늘 그 시간이 흘러가기 전에 스피아 졸업장부터 원했고, 그 조급함이 나를 스피아에서 졸업하지 못하게 한 것 같다.


*


그래서 스피아가 버스 기사라는 직업에 남고, 더 많은 시간을 버스 기사로 살기로 결정하였을 때 마음이 찡했다. 나는 결국 늘 포기하고 마는, 시간에 따른 익어감을 선택한 스피아가 대단해보였다.


사실 스피아는 720번 버스를 운전하는 잠시 동안에도(*다른 720번 기사들과 비교하여 잠시라고 표현하였다.) 조금씩 익어갔다. 보험비를 받아내려고 꾀병 부리는 손님과의 일을 겪으며, 마르지 않은 교복을 입은 아이를 위해 히터를 틀어주며, 아이가 느낄 정도로 부드러운 운전을 하며 스피아는 조금씩 익어가고 있었다. 그 시간을 조금 더 가지기로 결정한 스피아는 짐짓 어른 같았다. 스피아가 처음 720번 버스를 탔을 때 들었던 이야기를 직접 해주며, 제법 스피아 같지 않은 말들을 했다. 그걸 보며 스피아가 곧 나보다 먼저 스피아 졸업장을 따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의 안녕과 무사고 운전을 기원했다.


*

사람은 늘 어디론가 떠난다.

책 처음에 이런 문구가 나온다. 요즘 위로를 많이 받는다. 이렇게 부유하고 있는 나도, 이렇게 스피아 졸업장을 따고 싶은 나도 그저 늘 어디론가 떠날 수 있고, 떠나야만 해서 그렇다고 생각할 수 있게 해주는 말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어디론가 떠나다 보면, 720번 스피아처럼 조금 더 익어가고 싶은 마당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글을 맺는다.

나도 서울에서 살고 싶었다. 남들이 다 서울에만 사는 것 같아서 나도 그 안에서 남들처럼 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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