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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흔 즈음에 - 우리 시대 인문학자 김열규의 마지막 사색
김열규 지음 / 휴머니스트 / 2014년 1월
평점 :
품절
81세부터 망구라는 말을 아버지께로부터 들었다.
태어나자마자 한살을 주는 우리이니 80대를 아흔을 바라보는 나이, 망구라고 하는 것이 무리가 아니다. 아흔 즈음의 아버지를 위하여 이 책의 제목에 마음이 끌렸다. 아흔을 바라보는 나이에는 어떤 생각을 하시는 걸까? 같은 연배의 사람이 들려주는 이야기가 아버지를 위로해드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알라딘에서 인터넷배송으로 책을 받아 열고 저으기 실망이 되었다. 김열규 선생님의 유고집이란다. 저자가 1932년생이니 아버지보다 두 살 아래시다. 같이 아흔 즈음을 견뎌나가시는 분이었으면 좋았을텐데...
병약한 몸을 평생 이끌고 아흔 즈음에 접어들어 기뻐하고 감사하는 말씀으로 책은 시작되었다. 나 또한 아버지가 칠순, 팔순을 넘기시며 얼마나 감사하고 기뻐했는지 모른다. 아버지의 마음 또한 저자와 같으셨으리라. 책 속에는 병든 몸으로 병든 부인을 지극정성으로 간호하시는 모습도 쓰여있다. 아버지 또한 몸을 꼼작 못하게 되신 엄마를 요양병원에 모시고 옆에서 무한한 인내로 돌보고 계시다. 그리고 평생 글쓰기로 일관해온 저자의 일과 그 일을 접은 후 자연에 귀의하여 어린시절의 자유로움을 다시 누리고 있는 저자의 마무리 삶이 어린시절의 일화와 만년의 생활모습으로 그려져 아름답다.
돌이켜보니 내가 알고 있는 아버지의 일화가 많지 않다. 일출과 일몰을 너무 오래 보아 눈이 나빠졌다든가 하룻밤에 천자문을 떼었다든가 이런 이야기들은 다 어머니를 통해 들은 것이다. 이야기를 들려주시던 어머니는 이미 청력을 잃어 일상 대화를 할 수 없게 되었다. 책을 다 읽고나서 요양병원으로 아버지를 찾아갔다. 바닷가에서 자라며 물뱀과 함께 수영을 했다는 일화나 알을 낳으러 바닷가에 나와있는 자라들을 모두 바다로 던져넣어 지나가던 어부에게 자라씨를 말려버렸구나 하고 지청구를 들었던 이야기를 아버지께 읽어드리며 어린시절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청했다. 아버지는 내가 말솜씨가 없다고 그만 입을 닫으신다.
꼭 해아만 하는 일만 다 하려도 시간이 모자란다셨던 아버지는 요양병원에서 어머니 돌보기와 걷기연습에 매달려 있다. 자주 찾아뵙고 이야기를 더 청해야겠다. 아버지와 함께 아흔 즈음에를 완성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