찔러본다 - 제10회 최계락문학상 수상작 문학과지성 시인선 380
최영철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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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하다 라고 하기엔 너무 아깝다.  

최근 읽은 시 중에서 가장 좋았다면 될까. 

계절이 추워지는 데 언제까지 감각적이고 알아들을 수 없는 시만 읽을텐가. 

읽기 쉬우면서도 마음이 울렸다.  

인간에 대한 따뚯하면서도 안타까운 시선이 살아있다.  

 

그의 시 <사촌들>을 읽어보자.   

사촌들 

큰 조카 결혼식에서 오랜만에 본다 

서로 늙어 보여 고소하다고 돌아서서 키득키득 웃는다 

사촌이 논 사면 배 아프다 

아직 깜장머리 그대로인 동생의 뒤통수나 한 대 갈긴다 

오십 넘어 무럭무럭 솟는 용심이라도 있어 

빛나게 잘 닦아놓은 차에 발길질을 한다 

새로 이사 간 집에 가 고스톱이라고 치자고 

반질반질 원목 마루에 담배 구멍이라도 내자고 

얼추 합의를 보다가 

부엌에 올려놓고 온 냄비가 생각이 난듯 

달달달달 급히 시동 걸어 내뺀다 

번갯불처럼 만나 헤어지고도 서운하지 않게 된 

아버지 어머니의 형제들이 사이좋게 낳아주고 간 사촌들 

수십 년 전 그 모습도 아슴한 할아버지 할머니 골격이 

얼굴 위로 희미하게 떠오르고 있는 사촌들 

다시 만나면 또 그 이름이 아리송해질 사촌들 

 

이 시를 읽으면 씁쓸하면서도 어쩐지 입꼬리가 올라가고 만다.  

나는 책 속지에 이런 말을 끄적여 놓았다. 

좋다, 참. 

이런 시를 쓰고 싶다.  

어렵지 않으면서도 가슴을 울리는 시 

그러면서도 가볍지 않는 시 

글썽거리는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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