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즈와 왓슨이 더 그리워지는 책.

셜록 홈즈 : 모리어티의 죽음 ㅣ 앤터니 호로비츠 셜록 홈즈
앤터니 호로비츠 지음, 이은선 옮김 / 황금가지 / 2015년 6월

셜록 홈즈의 팬들이라면, 홈즈가 들어간 책만 봐도, 심장이 벌렁거릴 것이다.

나 또한 마찬가지다.

홈즈의 어지간한 책들을 모두 서가에 꽂혀있고,

다른 책은 빌려줘도 결코 홈즈 시리즈는 빌려주지 않는다. (못 돌려받은 적이 많으니까)

코난 도일이 백 년은 더 살았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우리의 욕구를 충족하기엔 셜록 홈즈 시리즈가 너무나 빈약하다. (그만큼 우리의 욕망이 무한대이겠지만,)

그런 욕구를 조금이나마 식혀줄 수 있는 책이 나왔다고 생각했다.

셜혹 홈즈의 오랜 숙적인 모리어티 교수의 죽음이라니,

당연히 손길이 갔다.

첫 시작부터 뭔가 의뭉스럽다. 왓슨 박사를 흉내낸 티가 좔좔 난달까. 그러면서도 뭔가 발을 뺀 듯한 느낌이 든다.

이 묘한 느낌, (의도된)이 거슬려 쉽게 책장이 넘어가지 않았다. 나 뿐만이 아니라, 셜록홈즈의 팬들이라면 분명 느꼈을 거라 믿는다.

왓슨이라는 인물이 주는 안락함이, (기록자로서 완벽한) 그리워지기 까지 했다.

이 책의 화자인 체이스는 허둥대는 심부름꾼처럼 독자의 혼을 쏙 빼어놓는다. 일단 매력적이다. 뭔가 모자라 보이는 인물에 우린 매력을 느끼기 마련이니까. 

뭐 좋다.

그리고 홈즈를 자처한 경감 존스는, 홈즈 만큼은 아니지만 나름 예리한 관찰력이 있어, 사건의 실마리를 잘 잡아낸다.

읽는 내내 새로운 홈즈와 새로운 왓슨을 떠올릴 것이 분명하다. 물론 완벽하지 않은 어설픈 흉내겠지만, (이 모든 것도 작가의 계산이라 생각하니 울화통이 터진다)

여하튼, 책장이 머뭇대던 초반을 제외하고는 술술 넘어간다. (셜록홈즈와 같은 치밀함을 요구하는 건 무리다. 그는 코난 도일 한 사람만 창조해 낼 수 있다.)

이야기는 너무나 유명한 모리어티와 홈즈의 폭포 추락사건에서 시작한다. 폭포에서 떨어져 떠내려온 시신을 두고, 모리어티 인지 아닌지를 의심하면서 체이스와 존스의 모험이 시작되는 것이다. 

모리어티로 추정되는, 인물의 옷 솔기 속에서 나온 쪽지, 홈즈의 평범한 일상을 그린 듯한 짧막한 구절이지만, 나름 예리한 존슨 경감이 암호를 해독한다.

그도 인해 모리어티와 새롭게 부상하고 있는 미국의 범죄조직이 결탁하려함을 알게 된다. 

과연 이들은 모리어티 대신 데버루(신흥조직수뇌)를 만나 그를, 처단할 수 있을까?

셜록 홈즈는 국가의 명예와 귀족의 명예, 그리고 수수께께를 위해 싸웠다면,

이들은 거대 범죄 조직을 소탕하기 위해 (딱히 자기들에게 손해를 준 것 같지도 않은, 추상적인 집단을 위해) 싸운다.

그런 면에서 조금은 설득력이 떨어지지만, 이 또한 눈 앞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에 묻혀 금세 잊혀지긴 한다.

고전적인 셜록 홈즈를 기대했다면, 다소 실망할 수도, 혹은 더 흥미진진하게 읽을 수도 있다.

그만큼 다르다는 뜻이다.

뭔가 더 스케일이 큰 액션 영화를 보는 기분이랄까. (근데 약간 헐리우드 식이다)

납득이 안되면서도 나도 모르게 쫓고 있다는 뜻이다. 자꾸만 뭔가에 걸려넘어지는 데, 그 이유는 역시나 뒷부분에 나와 계시다.

우리가 자꾸만 걸려넘어졌던 이유, 자꾸만 홈즈를 그리워했던 이유, 그리고 이 책의 존재 이유가 명확히 드러난다.

이 책은, 홈즈 포에버를 외치는 사람들을 위한 책이다.

홈즈는 죽지 않았다는 선언문이다.

문제는 그 선언을 홈즈가 하지 않는다는 것에 있다.

홈즈의 이름이 떡하니 붙어있긴 한데, 홈즈가 나오지 않는 책, (오 물론, 마지막에 짤막한 단편처럼 실려있긴 하지만)

홈즈보단 잔혹한 모리어티가 좀 더 친근하게 느껴지는 책이겠다.

실크하우스의 비밀에 이어 모리어티의 죽음까지 셜록 홈즈의 신화는 계속 될 모양이다.

다음 셜록 홈즈를 기대한다. 그 때는 모리어티와 홈즈가 치열하게 두뇌 싸움을 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분명 홈즈가 승리할테지만 (확신할 수 있는 건 홈즈가 주인공이라서가 아니라, 모리어티가 어설퍼서다. 이 책에 의하면 말이다. 뭐 다음 번에 더욱 악랄하고 정교한 방법을 생각해 낼 지는 모르지만, 무튼 모리어티의 헛점을 본 듯한 느낌은 지워지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느낌을 정리하자면,

홈즈가 그리운 사람은, 더 그리워질 것이고, 심지어 왓슨까지도 그리워질거라는 점이다.

오늘 밤은 서가에 꽂힌 낡은 홈즈 책을 꺼내야 겠다.

슬리퍼에 숨겨놓은 담배를 꺼내며 그도 날 반기겠지. 

[100자평] 내 생의 중력

내 생의 중력 ㅣ 문학과지성 시인선 400
홍정선.강계숙 엮음 / 문학과지성사 / 2011년 10월

말해 무엇하겠는가. 그간의 엑기스들이 다 들어가 있는 걸.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

자두나무 정류장 ㅣ 창비시선 338
박성우 지음 / 창비 / 2011년 11월

난 사투리를 잘 쓰는 시인이 제일 부럽다.

막 담근 장도 아니고 몇년 묵힌 장처럼 그리 구수할 수가 없다.

자두나무 정류장도 그렇다.

딱히 화려한 재료가 들어있진 않지만

멸치육수를 내고 쌉싸름한 된장을 푼 배추해장국처럼

시원하고 구수하다.

내겐 딱히 고향이랄 게 없지만

이 시를 읽으면 있지도 않은 고향이 생길 것만 같이 자꾸만 마음 한켠이 그리워 진다.

잔뜩 겉멋이 든 시나 복잡스런 산문시를 회피하는 나에겐

오랜만에 맛깔진 밥상을 받은 것처럼 반가웠다.

라바를 좋아하는 아이라면 몇 시간이고 들여다 볼

라바 만화 1 : 레드와 옐로우의 식탐일기 - 라바 시즌 1 ㅣ 라바 만화 1
미디어-S 구성, (주)투바엔터테인먼트 원작 / 형설아이 / 2012년 2월

이제 막 7세가 된 큰 아들이 하루종일 기다린 책이다.

오래 집중해서 읽는 게 힘들 법 한데도

더듬거리며 끝내 책을 다 읽었다.

라바가 주는 영향력이 대단한가보다.

우리집은 유선방송도 안나오고

텔레비전을 많이 보는 편도 아닌데도 라바에 푹 빠진다.

올칼라라서 선명하기도 하고

만화 칸이 좁지 않아서 저학력이나 미취학 아동도 읽을 수 있다.

아시다시피 라바가 딱히 글을 몰라도 되는 책이기 때문에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가능한 책이다

상상이 없는 삷 상상이 충만한 글

모자 - 2-029 ㅣ (구) 문지 스펙트럼 29
토마스 베른하르트 지음, 김현성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9년 3월

그의 글은 상상하게 만든다. 

모자라는 글이나 삼촌에 대한 증오가 이글거리는 조카가 등장하는 글이나 혹은 죽은 여자의 옷을 입고 다니는 사내의 이야기나 모두가 상상하게 만든다. 

물론 독특하고 강박증에 걸려있는 등장인물에 비해 글의 구조나 흐름은 좀 지루한 편이나  

읽는 이의 입장에서는 등장하는 독특한 인물만으로도 그의 행동이 주시되는게 사실이다. 

이 소설은 뭔가가 참 벌어지지 않는다. 독특한 등장인물에 비해서 파격적이 결말은 별로 없다. 

뭔가 일어날 듯 일어날 듯 일어나지 않는다. 

지루하고 멍청하고 강박증에 걸린 인물들이 독자를 먼저 지치게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한 편씩 읽고나면 머릿 속에 궁금증이 많이 남는다. 여운도 남는다. 

결국은 죽었다는 것인지 삼촌이 엄마를 겁탈했다는 것인지 주인공이 삼촌의 아들이라는 것인지  여자옷을 입은 남자는 주인공을 강물로 밀어처넣을 것인지가 모두 궁금하지만 

작가는 그 부분은 독자의 몫으로 남겨놓은 모양이다. 

그래, 문학작품에는 이런 수수께끼가 필요하긴 하다. ^^ 

무엇보다 재밌게 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