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시 9분 27초 - 행복한 책읽기 26
강민경 지음, 윤정주 그림 / 계림북스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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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워드 양의 영화 ‘하나 그리고 둘’의 양양은 사람들의 뒷모습만 찍는다. 낯익은 사람들의 뒷모습은 어딘가 낯설고 후줄근하고 쓸쓸한 이야기를 한다. 강민경의 「3시9분27초」는 뒷모습을 보여주는 동화다. 새벽부터 일을 나서는 엄마와 삶에 지친 아빠의 뒷모습, 방황하는 오빠와 친구를 거부하는 유진의 뒷모습. 후줄근한 뒷모습이 판타지와 만나자 뒷얘기가 궁금해 책을 놓을 수 없게 한다.

유진은 자신을 알기위해 가정환경조사서가 왜 필요한지 묻는 자의식 강한 초등학생이다. ‘나를 나로 보’아달라고 주장하며 삶을 바꿀 수 있는 기회를 갖기 위해 도전한다.

유진과 가족은 가난이란 폭력적 환경에서 외줄타기처럼 불안한 삶을 산다.「불을 가진 아이」나 「소나기밥 공주」의 주인공들처럼 유진 또한 자신이 바꿀 수 없는 환경에 적응하고 미래를 만들어야 한다. 초등학교 6학년인 아이가 자신의 두 다리로 당당히 설 수 있을까? 유진은 버틸 힘을 갖기 위해 ‘판타지’를 주문한다. ‘기회’가 없다고 속상해하고 친구 하나 없는 외톨이 유진의 판타지는 가족을 위기로부터 구하고 ‘자신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것이다. 유진과 「위저드 베이커리」의 소년은 주변 사람들과 소통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닮았다. 자신을 지키기 위해 다른 이와의 소통을 거부하고 스스로를 고립시킨 소년 소녀의 결론은, 스스로 소통의 손길을 내미는 것이다. 세상은 혹독하다. 아이들의 힘으로 바꿀 수 없는 환경에 놓아두었지만 지금과 다르게 살기를 원한다면 ‘스스로’ 알을 깨고 나와야 한다고 채근한다. 삶은 계속되고 자폐라는 처방전이 효력을 잃었음을 유진은 안다.

기회이자 미래는 어떻게 오는가? 유진이 말한다 “이젠 과거의 기회를 잡고 싶지 않아요. 현재의 기회를 잡고 싶어요. 과거의 기회를 잡으면 현재가 바뀌지만, 현재의 기회를 잡으면 미래가 바뀔 거 아니에요.” 현실이 변한 건 별로 없고 메고 가야할 짐이 있다는 것을 안다. 아이에게도 우리에게도 숨 쉴 곳이 필요하다. 물리적 공간일수도 있고 한 권의 책일 수 도 있다. 자신의 어깨에 진 짐을 잠시 놓아두고 한 발 내딛기 위해 큰 숨 한번 쉬는 기회, 「3시9분27초」가 그것일 수 있겠다. 동화 읽는 시간만큼의 휴식이며, 가쁜 현재를 열심히 살면 다른 모습의 미래가 올 수 있다는 ‘희망’이다.
판타지 세상으로 들어가는 계기나 시간의 의미가 이야기 전개에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부분이 아쉽지만, 유진의 변화를 회색, 분홍, 초록, 무지개빛 색깔로 표현한 것은 인상적이다. 표지의 유진은 달리고 있다. 현실 위기와 판타지 세상과 함께 힘껏 달린다. 유진의 판타지는 가족의 유일한 노동력인 엄마의 손을 지키고 오빠가 올바른 선택을 하도록 이끈다. 위기를 기회로 삼기위해 동분서주하는 유진, 그것들이 공짜로 오진 않는다. ‘남매는 용감했다’에서 어린 유진은 폭력에 맞선다. 남매가 용감했던 기억은 오빠가 다른 선택을 하도록 이끈다. ‘관계’는 공간을 공유한다고 저절로 생기지 않는다. 오해와 이해, 수많은 앞모습과 뒷모습을 보이는 고비를 넘긴 후 시작된다. 벼랑 끝에서 그 너머의 다른 삶을 꿈꾸도록 하는 힘이 ‘관계’이다. 외톨이 유진은 우선 가족과 든든한 관계를 만든다. 동화 끝까지 변하지 않은 아버지의 모습은 유진의 ‘현실’이다. 유진이 기꺼이 지고 가겠다는 짐은 버거워 보인다. 아이의 짐이 조금은 가벼워지도록 기회를 갖지 못한 사람들을 위한 판타지 주문 제도가 있길 바란다. 삶의 출발선이 다른 이들을 위해 사회가 준비한 기회의 문이 필요하다. 판타지를 통해 희망을 이야기하는 흥미진진한 동화 한 편도 그 중 하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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