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생물 사냥꾼 - 미생물 연구에 일생을 바친 13명의 위대한 영웅들, 정식한국어
폴 드 크루이프 지음, 이미리나 옮김 / 반니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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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1926년에 출판된 전설 같은 미생물학 연구자들의 이야기들을 다룬 전설 같은 책. 폴 드 크루이프의 《미생물 사냥꾼》에 대한 인상을 간단히 얘기하자면 이렇다. 그러니까 선구적인 작업, 지금보다는 당대에 가까운(당시에 살아있는 연구자도 있었으니까) 연구자들에 대한 이야기를 썼다는 의미도 있고, 하지만 그 후의 눈부시고 미생물학의 역사, 뛰어난 미생물학자의 이야기는 없다는 한계도 고스란히 가지고 있다.

미생물학의 역사를 어느 정도나 자세히 다룰 것인가에 따라 넣을 수도 있고, 뺄 수도 있고, 자세히 다룰 수도 있고, 간단히 이름만 언급하듯 다룰 수도 있지만, 누구라도 넣어야 하는 인물들이 있다. 레벤후크(레이우엔후크라고 해야 더 옳다), 파스퇴르, 코흐, 에를리히 같은 인물들이다. 미생물학의 역사에서 확실한 전환점을 이룬 인물들이라고 할 수 있다. 거기에 에밀 베링, 메치니코프와 같은 월터 리드 같은 인물들도 대중적인 연구자들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테오발드 스미스, 데이비드 브루스, 로널드 로스, 바티스타 그라시 같은 연구자들은, 지금은 대중들에게는 거의 오르내리지 않는, 해당 분야의 전문가들이나 기억하는 연구자들이다.

그런데 이 《미생물 사냥꾼》을 통해서 가장 인상 깊은 것은 바로 그런, 지금은 거의 잊혀진 미생물 연구자들을 만나는 것이다. 파스퇴르나 코흐에 대해서는 수준이 다양한 많은 책들이 있고, 메치니코프에 관한 평전도 나와 있고(《메치니코프와 면역》), 월터 리드와 같은 경우엔 그의 이름을 딴 병원이 미국 최고의 군 병원이 되었다(이 책을 쓸 당시에는 아직 그런 병원이 세워지기 전이었지만). 그래서 그들에 대해 찬사를 하는 것은 당연해 보이다. 하지만 미생물학의 역사에서 뚜렷한 업적을 남겼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그 자국이 옅어지고 있는 연구자들이 있다. 그렇게 잊혀져가는 연구자들이 어떤 업적을 남겼는지, 그런 업적을 남기기 위해서 어떤 위험을 무릅쓰고, 또 얼마나 고군분투했는지 등등에 대해서 여기서만큼 생생하게 접할 수 있는 기회는 없다고 본다. (거기에 덧붙여 나 자신이 역사에 이름을 남길 가능성이 아주 희박한 미생물학자라는 점도, 그런 인물들(물론 그들과 나의 차이는 너무 크지만)에 애정을 가지게 되는 이유라 할 수 있다.)

사실 폴 드 크루이프는 이 인물들의 업적 뿐만 아니라 그들의 인간적인 면모를 드러내고 있다. 연구라는 게 천재만이 하는 일도 아니고, 또 고상한 인격의 소유만이 하는 일도 아니다. 물론 여기의 연구자들이 평범한 재능의 소유자라고는 할 수 없지만, 그렇게 특출난 연구 업적을 낸 이들이 인간적인 면모를 들여다보는 것은 적잖이 위로가 되기도 한다.

사실 이 책은 현대의 관점에 봤을 때 매우 불완전한 미생물학 지식을 전달해준다. 아직 바이러스의 정체도 모르는 시절이었으며(그러니 코흐의 공수병이나 월터 리드의 황열병도 그 정체가 분명하지 않았다), 파울 에를리히가 ‘마법의 탄환’을 발견했다고 환호성을 올렸지만, 이 책이 나오고 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알렉산더 플레밍이 페니실린을 발견했다는 것도 실릴 수가 없다. 아직 면역학이 미생물학과 분리가 되지 않은 시점이라 메치니코프가 ‘미생물 사냥꾼’의 목록에 들어가 있고, 체액성 면역과 세포성 면역이 서로 보완적인 관계라는 것도 알려지지 않은 상황이었다(그 어느 쪽의 손을 들어줄 수 없었던 노벨상 위원회는 메치니코프와 에를리히에게 공동으로 노벨생리의학상을 수여했다). 코흐를 절망에 빠뜨렸던 결핵약이 이후 투베르쿨린이라는 결핵검사에 쓰이게 되었다는 것도 이 책을 통해서는 알 수 없다(역자 후기를 통해서는 알 수 있다).

하지만 이 책을 통해서 미생물학의 ‘지금’을 알고자 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런 미생물 사냥꾼이 있었다는 것을 알고, 그 길을 따라가려는 이들이 줄을 이었다는 것이 중요하다. 그들이 없었더라도 어쨌든 세균이 병을 일으키는 것도 알 수 있었을 것이고, 그 세균을 제어하는 방법도 어떻게는 찾아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미생물 사냥꾼이 그때 밤을 세워가며, 모든 것을 던져가며(생명까지도) 알아낸 것들이 있었기에 조금이라도 일찍 우리는 안전해졌다. 그 결과가 바로 나, 우리일 수 있다. 그들에게 찬사를 보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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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습니까? 믿습니다! - 별자리부터 가짜 뉴스까지 인류와 함께해온 미신의 역사
오후 지음 / 동아시아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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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을 보자마자 생각난 장면어릴 적일요일 아침마다 TV에서는 여의도 순복음교회의 조용기 목사의 설교를 중계했다종교방송도 아니고이른바 공중파 채널(그런 표현도 없었다)이 2개 밖에 없던 시절이었는데 그런 방송이 가능했다는 게 지금 생각해보면 참 의아하긴 하지만(신자도 아니었는데 그 방송을 보게 된 것은 선택할 수 없어서 그랬을 거다), 설교가 끝나고 교회에서 나오는 인파를 보면서 대단하다는 생각을 했었다그 인파와 함께 가장 인상 깊은 것은 조용기 목사의 설교 도중에 믿쉽니까?”하고 내뱉는 말이었다아마 흉내도 내지 않았나 싶다그리고 이 책도 거기서 온 게 아닐까 생각도 한다(물론 신자들은 믿습니다!”라고 하지 않고, “아멘이라고 했지만).

 

 
 

믿음이라는 건 종교에 관한 얘기만이 아니다비록 나는 지금 종교가 없지만믿음이 없다고 할 수는 없다옷을 입거나길을 걸을 때 가지고 있는 징크스도 일종의 믿음이며내가 가지고 있는 사상(과연 그런 게 있다면)도 또 다른 믿음의 형태일 수 있다민족주의 또는 내셔널리즘이 그리 탐탁치 않게 생각은 하지만국가대표 축구 경기만 열리면 간절히 우리나라 팀이 이기길 응원한다온 나라의 사람들이 두 손 모아 비는 데 그게 종교가 아니라고 하기도 그렇다인류는 스스로 인간이라는 자각을 하기 전부터 무언가를 믿어왔다그 증거는 차고도 넘치고어딜 가나 이성적으로 본다면 어처구니 없는 신앙을 모시고 있는 모습을 수도 없이 본다그걸 보면 내가 어떤 믿음을 가지고 있다는 건 당연한 일로 여겨진다.

 

그렇게 무언가를 믿는 게 당연하다면 아무 거나 믿어도 다 인정해줘야 하는 걸까내 아내가 아주 가끔 점을 보러 가는데 그걸 믿지는 않지만 인정해주는 것과 이른바 사이비 종교라 불리는 것에 빠져 가정을 내팽채치는 것은 어떻게 다른 것이라 용납못한다고 할까그 기준은 무엇일까그 사이비 종교라고 불리는 것도 믿는 사람의 자유가 있는 것이고그렇게 믿음으로써 마음의 평화를 얻는다면 어떻게 되는 것일까?

 

또는 내가 붉은 악마가 되어 축구 대표팀을 열광적으로 응원하는 것이랑국가민족 우선주의를 내세운 히틀러 같은 인물을 열광적으로 지지하는 것이랑 또 어떤 것이 다른 것일까하나는 다른 이들에게 해를 입히지 않고다른 하나는 해를 입혀서 다른 것일까가령 히틀러가 전쟁을 일으키지만 않았다면 괜찮았던 것일까조금만 생각해보면 참 어려운 문제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다.

 

오후 작가는 여전하다마약에 대해서 쓸 때도과학에 대해 쓸 때도 말투는 유머러스하지만내용은 매우 진지했다여기서도 그렇다여기저기서 푸흡하고 웃음이 새어나오지만 내용까지도 우스개는 아니다. FSM, 그러니까 날아다니는 스파게티 괴물교(Flying Spaghetti Monster)’에 대해서 진지한 듯 쓰고 있는 것은 다분히 기존의 종교를 비꼬기 위한 것이지만그것을 넘어서서도 종교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한다(주로는 디스하지만). 서양과 동양의 역사를 통해 미신에 대해서 논리적으로 비교하고 있고정치와 사상에서의 믿음나아가 종교내지는 미신과 같은 면모를 폭로하고미국을 호구의 나라라고 강도 높게 비아냥거린다(물론 그럴 수 있는 이유는 그렇다고 그 나라가 하나도 신경 쓰지 않을 걸 알기 때문이다).

 

 

 

좌충우돌 같지만믿음의 범위를 넓히고그 자락에 모든 것이 걸리도록 한 후 자신이 하고 싶은 얘기들을 털어놓고 있다그런데 묘한 것이 그 자락에 쓸리며 나의 공고한 믿음들이 결국은 체계도 잡히지 않은 어줍잖은 믿음과 별 다를 바 없다는 걸 깨닫게 한다다른 말로 하자면 똥고집이라고 해야 할까?

 

재미있게 읽었고또 많은 생각을 하게 됐다.

기다려지고 궁금하다오후 작가가 다음에는 무엇을 건드리게 될지분명 지금 내가 생각하는 그것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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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의 현관
요코야마 히데오 지음, 최고은 옮김 / 검은숲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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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어머니는 집을 지으셨다내 기억엔 그렇다셋방을 탈출하여 당신의 집을 갖는데이미 지어진 집을 사지 않고 직접 집을 짓는 고생을 택하셨다길 건너편에 집이 올라가는 것을 매일 지켜보시고 감독하고 지시하셨다지금 기준으로는 여전히 불편할 수도 있는 집이었겠지만최대한 당신이 살고 생활하기 좋은 집을 지으려 하셨다그렇게 완성된 집을 두고 어머니가 어떠셨는지는 모른다어렴풋한 기억으로는 다시는 직접 짓는 일은 하지 않겠다고 하셨던 것 같다아버지 직장을 옮기면서 그 집을 팔고 나와야 할 때 어떤 심정이었을까?

 

요코야마 히데오의 빛의 현관을 읽으며 수십 년 전의 빛바랜 감상이 떠올랐다.

아오세 씨가 살고 싶은 집을 지어줘요.”

건축가에게 이런 요구를 하는 경우가 흔할까어쩌면 그럴 요구가 가능할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자신이 살 집이라면 얼마나 정성들여 지을까하는 생각에하지만 그런 요구의 바닥 마음은 그렇게 하면 그래도 가 살기에 훌륭한 집이 될 거라는 계산이 있기 마련이지 않을까? TV에 나오는 아파트 광고가 사실 그런 식이다.

 

아내가 원했던 집이 있었다결국 짓지를 못하고 헤어졌다딸은 한 달에 한 번 만난다거품 경제가 꺼지면서 밑바닥까지 추락했던 아오세에게 삶은 그저 겨우겨우 살아가는 것일 뿐이었다가족에 대한 그리움마저 저 바닥에 감추고 드러내지 말아야 하는.

 

그런 삶에 의욕을 가져다 준 것은 바로 아오세 씨가 살고 싶은 집을 지어워요.”라는 의뢰였다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를 깨닫는 것만큼 삶에 의욕을 북돋는 것이 있으랴하지만 그런 의뢰를 받고 혼신의 노력으로 지은 집에 가족이 입주를 하지 않았다그 집에는 오래전 일본으로 망명했던 건축가 타우트의 의자 하나가 덩그러니 놓여 있을 뿐이었다그 타우트의 의자를 실마리로 사라진 가족의 행방을 쫓는 게 이 소설의 줄거리다(브루노 타우트는 실제 인물이다소설의 뒤쪽에 실은 참고문헌을 보면 이 작가가 얼마나 타우트에 대해 연구했는지를 알 수 있다).

 

다른 이야기가 있다후지미야 하루코라는 화가의 기념관이다파리의 뒷골목에서 800 장이 넘는 그림을 그리면서도 한 편도 공개를 하지 않고 숨져간 화가후지미야 하루코(하지만 실제 인물은 아니다물론 그 비슷한 인물은 있다)의 기념관을 통해 자식에게 자신이 진짜 건축가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은 오카지마의 염원이 소설에서 또 하나의 축을 이룬다.

 

“North light”. 원제가 이렇다아오세가 자신이 살고 싶은 집으로 설계한 Y주택이 바로 북쪽에서 빛이 드는 집이었다무조건 남향을 선호하는 우리의 정서로는 잘 이해가 되지 않는 이 설정을 작가는 의식 아래의 행복에 대한 은유라고 했다남과의 비교를 통해 계산되는 상대적인 행복이 아니라 나의 기준에 의존한 행복이라는 얘기인데그게 북쪽에서 드는 빛과 어떤 관계인지는 잘 모르겠지만소설이 바로 그런 얘기라는 것은 알겠다소설 속 화가 후지미야 하루코의 글귀처럼 우리는 채워도 채워도 여전히 부족한’ 것을 채워간다.

 

머무르는 사람은 떠남을 원하고머물지 못하는 사람은 정주(定住)를 희구한다.

 

상실에 대한 이야기이고그리고 상실에 대한 극복에 대한 이야기다상실감을 극복한다는 게 말처럼이 소설처럼 간단한 얘기만은 아닐지 모른다하지만 그렇게 극복한 이야기를 읽는 것만으로도 조금의 희망이 생기는 건 분명하다그게 이런 이야기를 읽는 이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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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과 물에 대하여 - 2022 우수환경도서
안드리 스나이어 마그나손 지음, 노승영 옮김 / 북하우스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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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양생물학자는 해수 산성화와 바닷새 절멸에 대해 이야기했다빙하학자는 빙하 해빙에 대해생태학자는 지구 식생 감소와 지하수 수위 하강임박한 물 부족의 결과에 대해 이야기했다. ... 하지만 어떤 자극도 어떤 흥분도 없었다주위를 둘러보았더니 청중은 거의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었다. ... 발표가 끝나자 사람들은 삼삼오오 모여 이러저런 담소를 나누다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집으로 돌아갔다.” (79)

 

아이슬란드의 시인이자 소설가인 안드리 스나이르 마그나손은 기후 문제에 관한 과학자들의 회의에 관한 경험을 이와 같은 쓰고 있다.

 

지구 온난화기후 위기 등에 관한 뉴스가 나오지 않는 날은 없다그 뉴스들은 수치를 제시하기도 하고어떤 과학자의 말을 전하기도 하고북극 빙하가 무너져내리는 영상을 보여주기도 한다우리의 반응은 어떨까그렇지 않은 이도 있겠지만우리는 아주 차분하다지구의 위기가 우리에게서 왔다는 것을 잘 알지만그래서 문제라는 것도 인정하지만우리는 아주 차분하게 그 뉴스를 본다어떻게든 되겠지라는 마음일 수도 있고그다지 다급하지 않다는 생각에서 그럴 수도 있고혹은 그렇다고 어쩔 수 없지 않나 하는 생각 때문에 그럴 수도 있다어쨌든 우리는 지구의 위기에 매우 차분하다. - “어쩌면 우리는 개인 자격으로는 세상을 이해하지 않는지도 모르겠다.”

 

아이슬란드라면 빙하의 나라화산의 나라다그곳의 시인이 섬세한 필치로 써내려간 시간과 물에 관한 이야기는 지구의 위기에 관한 고통스런 토로다할아버지와 할머니로부터 내려오는 아이슬란드의 빙하와 화산바다 이야기에서 시작된 마그나손의 글은 지구가 지난 100년 간 인간으로 인해 얼마나 큰 위기에 처했는지를 집중적으로 파헤친다숫자가 등장하지만그 숫자는 우리의 정서를 심하게 자극하지 않는다대신 숫자만으로는 자극되지 않는 우리의 감성을 시에서 비롯한 언어로 자극한다.

 

죽어가는 빙하는 봄만큼 조용하다얼음은 열기와 햇볕에 녹아 개울이 되어 졸졸 흐른다사실 죽어가는 빙하는 슬프고 연약한 광경이다.” (214)

쓰레기는 무엇보다 지구에 대한 우리의 무례를우리가 순환과 얼마나 동떨어져 있는가를 보여주는 상징이다. ... 우리는 유독하고 쓸모없고 자연에 해를 끼치는 쓰레기를 만들어내는 최초의 종이 되었다.” (255)

 

숫자가 등장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지난 100년간 우리가 뿜어낸 이산화탄소와 플라스틱과 같은 쓰레기들그것으로 인한 지구 대기 온도의 상승과 해양 산성도의 증가에 관한 수치들은 마그나손의 이야기들이 단순한 감정의 토로만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해준다우리가 그 수치마저 달리 받아들인다는 사실에는 또한 절망스럽다는 표현을 한다(이를테면 pH 0.3 감소하는 것은 실제로는 산성도가 2배 증가하는 것인데우리는 그것을 그렇게 인식하지 못한다). 그런 이성적인 판단에 이르지 못하는 상황이 또한 감정을 흩뜨려 놓는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감수성 짙은 언어로 지구의 위기에 대해서 쓰고 있는 마그나손이 그 해결 방법으로 생각하는 것은 매우 인상적이다그는 제임스 와트의 증기기관의 발명에 대해 찬사를 보내고 있으며우리의 편리한 생활을 하루아침에 끝장내자고 하지 않는다인도의 가난한 삶을 찬양하지도 않는다그들에게도 경제적 발전의 혜택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그렇다면 무엇으로 이 심각한 지구의 위기를 해결할 것인가이 소설가이자 시인은 바로 과학을 이야기한다이를테면 이와 같은 것이다.

“21세기의 가장 큰 도약은 대기 중에서 CO2를 직접 추출하여 가치를 끌어내는 방법을 개발하는 CO2 포집 및 처리가 되어야 한다.” (347)

 

우리가 달에 가기 위해서 쏟아 부었던 돈과 정력을혹은 핵무기를 개발하기 위해서 집중적으로 과학자들을 동원했던 역사를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쓰면 된다는 것이다그러기 위해서는 우선은 정치가들특히 선진국의 정치가들의 각성이 필요하며그것을 용인하는 국민의 자각이 필요하다는 것이다발전소를 짓고공장을 짓고소비를 올리겠다는 정치인들만이 당선되는 세상이 아니라정부 예산의 2%를 지구 위기를 해결하는 과학과 기술에 쓰겠다는 공약으로 당선되는 정치인이 나와야그것도 많은 국가에서 나와야 한다는 것이다선언이 아니라 실제 투자와 결집이 이루어지는 과학적 활동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인간이 자초한 지구의 위기는 우리가 풀어야 한다이 지구의 가치와 아름다움에 관한 감수성과 이성적인 판단에 기초한 과학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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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알고 싶었던 두려움
안젤로 모소 지음, 권혁 옮김 / 돋을새김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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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젤로 모소. 이탈리아의 생리학자라는 이분의 약력을 보니 1846년에 태어나서 1910년에 죽었다. 책 안쪽의 일러두기를 보면 1896년판을 원전으로 해서 번역했다 그러니까 약 120년 전에 나온 책이다.

 

이 책은 두려움에 관해 다양한 관점으로 접근하고 있는데,(꼭 두려움에 관한 내용만 있는 건 아니다) 여기의 내용이 얼마나 현대 과학에서 설명하는 것과 부합하는지는 잘 알지 못한다. 하루가 다르게 발달하고 있는 현대 과학의 속도를 생각해보면, 한 세기도 더 전에 나온 과학교양도서에서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솔직히 궁금하기도 하다. 그때는 유전의 본질에 대해서도 모르던 때다. 왓슨과 크릭의 발견은 물론, 멘델의 유전법칙이 재발견되기도 전이다. 심지어 과학사적으로, 과학철학의 면에서 중요한 책도 아니다. 그래서 안젤로 모소가 쓰고 있는 내용을 통해 두려움에 대해 어떤 지식을 늘리기 위한다기보다 과거의 과학자가 어떤 방식으로 과학을 수행하고, 또 어떻게 서술하고 있는지에 더 관심이 깊었다.

 

그렇다고 현대의 기준으로 봤을 때 전혀 과학적이지 않은 황당한 내용들로 가득할까?

아니다. 절대 아니다. 저자 소개에 따르면 안젤로 모소는 세계 최초로 거짓말 탐지기와 뇌 영상(MRI) 기술을 발명했다고 했을 정도로 뛰어난 과학자, 그중에서도 생리학자였다. 또한 의사였다. 지금과 똑같은 형태의 거짓말 탐지기는 아니고, MRI 역시 그가 발명한 것을 지금 쓰고 있는 것은 아닐 테지만, 그 원리만큼은 그대로 통용될 정도일 정도로 그는 아이디어가 뛰어난 과학자였다. 그런 과학자의 모습은 책 내용에서 갖가지 기구를 직접 개발해서 생리적 현상을 측정하는 데서 분명하게 드러난다. 현대의 전문 과학자에게서는 쉽게 찾아보기 힘든 모습이기도 하다.

 

더 중요한 것은 그가 과학적 설명으로 나아가는 과정이다. 제한된 경험과 실험 데이터를 통해서, 그리고 다른 과학자들의 실험과 저서를 참고하며 최대한 일반적인 설명을 시도하고 있는 모습은 현대 과학자들의 것과 다르지 않다. 이를 통해서 19세기 후반에는 이미 과학이라는 활동이 어느 정도 정립되어 있다는 것도 알 수 있는데, 그러면서도 이 안젤로 모소라는 과학자가 상당히 전형적이면서도 뛰어나다는 것도 짐작할 수 있다.

 

또 하나 이 책을 이야기한다면 상당히 문학적이라는 점을 꼽을 수 있다. 유전과 진화에 대해서 (지금의 기준으로 보자면) 잘못된 생각을 가지고 있던 저자이지만(다윈을 자주 언급하지만 자연선택에 대해서 분명한 인식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지 않고, 용불용설에 해당되는 개념을 받아들이기도 하고 있었다. 물론 유전의 본질에 대해서는 아직 모르고 있었고), 다음과 같은 구절을 보면 직관적인 개념을 가지고 상당히 문학적으로 표현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희끄무레한 생식세포의 작은 잎사귀 위에는 과거의 세대들과 현재의 우리들을 연결시켜주는 유전과 관련된 해독할 수 없는 문자들이 씌어져 있다.” (260)

 

이때로부터 현재까지 얼마나 과학이 줄기차고도 빠른 발전을 했는지 다시 한번 실감하는데, 사실은 이와 같은 성실하고도 꼼꼼한 과학자가 있었기에 그것을 바탕으로 현대 과학이 그렇게 위대한 발걸음을 내딛을 수 있었다. ‘두려움에 관한 책을 읽었는데,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이겨내며 끊임없이 전진해온 과학에 대해서 더 많이 생각하게 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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