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내 팔뚝을 톡,톡, 두드렸다. 노부인이 내 얼굴을 바짝 들여다보고 말했다.
자고 가.
밥 줄게.

...중략...

뭐라 대답해야 할지 몰라 서 있다가 다음에 와서 자고 갈게요, 라고 말했다. 몇 겹으로 왜곡된 안경 속에서 노부인의 눈이 슬프게 일그러졌다.
다음에 오냐.
네.
정말로 오냐.
네.
나 죽기 전에 정말로 올 테냐.
....
오긴 뭘 오냐 니가,라고 토라진 듯 중얼거리는 노부인 앞에서, 안하느니만 못한 말이자 약속도 아닌 약속을 해버린 나는 얼굴을 붉혔다.

맑은 날도 우중충한 날도 여섯 폭짜리 유리 너머에 있었다.

재오에게는 지렛대처럼 생긴 전용 커터로나 끊을 수 있는 두꺼운 밴딩끈을 얇은 커터로 수백번씩 긁어서 마침내는 끊고 마는 집요함이 있었고, 그 와중에 소중하거나 두려운 것이 없다는 듯 피복된 전선에 아무렇게나 손을 대는 둔감함, 어떤 마비 상태 같은 것이 있었다. 나는 그런 것을 매일 곁에서 지켜보고 접하는 게 섬뜩했다.

나는 여전하다. 여전히 직장에 다니고 사람들 틈에서 크게 염두에 두지 않을 정도의 수치스러운 일을 겪는다.

제희네 어머니와 제희까지 여섯 사람이 손을 잡고 둥글게 앉아서 이 고난을 잘 헤쳐나가자고 스스로에게 또 서로에게 다짐했다. 그건 분명한 기도였지만 일방적인 위탁은 아니었고 서로간의 다짐이자 격려였다. 제희나 제희네 누나들에게는 신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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