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사적인 도시 - 뉴욕 걸어본다 3
박상미 지음 / 난다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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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에 말을 않던 사람이 말을 하면 귀기울이게 되는 것처럼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던 호퍼가 갑자기 이 그림에서 인상을 쓰고 있는 것 같아 마음이 쓰이나보다

궁극의 짝짓기를 위한 희생이라 할수도 있겠지만 사랑은 언제나 짝짓기 이상을 암시한다. 사랑이 위대한 건 그렇게도 잘난 자아가 지워지기 때문이다. 자기 자신을 지울 수 있는 상태. 이 세상에서 자기 자신을 삭제할 수 있는 불가능에 이르는 위력. 사랑하는 건 인간만이 가능하다.

내게 예술이란 와아- 했다 금새 사라지는 효과에 관한 것이 아니라 시간에 걸쳐 불가사의하게 그 몸을 드러내는, 존재 그 자체이다.

무의식은 시간 개념이 없다. 그래서 과거를 지난 일로 취급할 줄 모른다. 의식은 시간이 갈수록 지난 일을 잊기도 하지만 무의식은 그럴 줄을 모르고, 계속해서 그 일을 `살고 있는` 것이다. 무의식 속의 일들이 현재형으로 존재하는 방식은 아무래도 다양할 것이다. 아침을 괴롭히는 꿈일 수도 있고, 불면의 밤일 수도 있고, 엉뚱한 순간에 떨어지는 눈물일 수도 있고, 한쪽 입가에만 생긴 주름일 수도 있고, 뜻하지않게 종이 위에 모습을 드러내는 어떤 원더풀한 단어들일 수도 있다. 무의식에 대한 의식의 지식은 매우 제한적이어서 우리가 지금 어떤 과거를 살고 있는지 알지 못할 뿐이다.

벽에 걸린 게 부실한 이유는 돈이 없어 그렇다는 건 설득력이 별로 없다. 돈이 없다면 눈이 있으면 된다. 아이가 어쩌다 잘 그린 그림이나 잡지에서 본 사진을 오려 걸어놓을 수도 있고, 길거리에서 흥미롭게 찌그러진 타이어라도 골라다 놓을 수 있다. 구두 한 켤레 가격으로 살 수 있는 건 얼마든지 있다. 예술 취향은 한 사람의 궁극적인 미감을 대표하고, 인간이 만들어내는 아름다움에 관한 문제는 결국 예술에서 집약된다.

정말 자러 가기 싫은 밤이 있다. 계속 와인이나 홀짝이며, 음악이나 들으며, 쓸데없는 얘기나 하며, 또는 책이나 설렁설렁 읽으며 그냥 자러 가기 싨은 그런 밤이 있다. 곧 끝나버릴 방학 같고 시시해도 축제 같아서 계속 앉아있고 싶은 심정. 내일을 위해서 자야 하는데 자고 싶지 않다. 하루를 끝내기 싫을 때도 있지만, 책도 그럴 때가 있다. 읽다가 끝이 보이면 더이상 읽기싫은 거. 끝나는 게 싫어서. 그렇게 환상적인 세상도 아니었지만 그동안 정들었던 주인공들과 그 스토리와 헤어지는 것이 아쉬워서. 애인이 다리를 감아 놓아주지 않을 때처럼 그대로 그렇게. 별별 감정의 통로를 다 통과했는데 이렇게 벗어나기 싫어 벼랑에 서 있는 듯한 기분. 좀더 위에 서 있고 싶은 기분. 이렇게 바라보면서, 바람도 쐬고, 냄새도 맡으면서, 소리도 들으면서.
죽을때 기분이 이럴까. 별 볼일 없는 삶이었지만 조금만 더 머물고 싶을까. 자러 가기 싫은 이 기분처럼 조금만 더 있다가 눈을 감고 싶은, 이런 기분일까.

미스터리는 일종의 퀄리티다

예술이 지겨울 정도로 많아진 요즘, 미스터리는 상대적으로 사라져가고있는 느낌이다. 명백한 의도, 이러한 개념에 의해서 나는 이런 작품을 한다는 그 의도가 너무 뻔히 보이면 재미가 없어진다.

반면, 훌륭한 작품들은 의도와 결과물 사이에 깊고 넓고 알 수 없는 세상이 있는 듯하다. 그 세상에서 감히 이해가 불가능한 마법적 사건이 일어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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