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정책은 악이다
고원 지음 / 북스토리 / 200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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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흔히 언론이라하면 신문, TV, 잡지등 각종 매체를 떠올린다. 우리는 그것을 통해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전해 듣는다. 그러나 국어사전상의 언론은 '말이나 글로 자기의 사상을 발표하는 일'이라고 하여 지극히 주관적인 용어로 묘사되어 있다. 세상 전반의 시류나 뉴스를 가지고 언론인들은 자신의 주관적인 의견을 피력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막중한 책임감과 세상을 보는 올곧은 시선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 그들의 말 한마디로 유행이 만들어 지고, 한 개인이 영웅이 되기도 하고, 국가 정책마저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주변의 언론인들....대표적인 이들이 기자일 것이다. 기자라는 직업이 전혀 낯설지는 않지만 사실상 신문이나 TV에서 매일 접하는 정치인들 보다도 그들의 실상은 많이 알려져 있지 않다.'언론개혁'이라는 용어가 신문지상에 매일같이 등장하는 요즘, 한번쯤 그들에게 눈을 돌려 보는 일도 재미있을 것 같다. 아니, 어쩌면 꼭 필요한 일일 것이다.'고원'님의 언론에 대한 지론과 가치관은 분명하였다.진정한 언론이 가야될 길을 이책을 통해 대중들에게 알리려고 노력하고 있었다.서구의 여러 언론기관들을 평하면서 우리나라의 언론이 나아가야될 길을 명백히 제시하고 심층분석하고 있는게 이책의 주요 요지들이다.

한국언론에 늘 따라붙는 말이 있다. ‘왜곡보도’와 ‘편파보도’라는 오명이 바로 그것이다. 언론의 왜곡 편파보도는 사실을 왜곡하고 곧 역사를 왜곡한다. 뿐만 아니라 왜곡 편파보도 속에서 인권유린은 은폐되거나 정당화된다. 겉으로는 정론직필과 불편부당을 내세우고도 실제로는 왜곡 편파보도를 일삼은 한국언론. 그 대열의 선봉에는 항상 조선일보가 있었다.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 신문모니터분과 “자유민주주의 수호는 외부에 대한 적대감을 고양해 내부의 단결을 꾀하려는 부정적 방식으로 결코 이뤄질 수 없다. 외부에 대한 적대감을 고양하기 위해서라면 내부의 일부가 인권침해를 당해도 상관없다는 식의 발상은 너무나 위험하다. 그런 내부의 분열과 갈등에서 필연적으로 빚어지는 감정의 폭발을 상업적으로 이용하려는 것은 더욱더 위험하다”우리가 지난호에서 조선일보의 국가안보상업주의를 비판하며 했던 말이다.이번호에는 조선일보의 ‘남한판 국가안보상업주의’에 해당되는 사례를 찾아보았다. 조선일보는 자신들의 이데올로기와 대치되는 현상이나 인물에 대해서는 주관적 잣대를 들이대고 주저없이 매도하였다. 이런 조선일보의 공세와 횡포에 대하여 적극적으로 대항한 목소리는 거의 모든 언론에서 묵살 당했다. 우리는 바로 이런 과정과 현상이 조선일보의 오만을 키워 온 배경이 되었다고 판단한다. 사실 우리는 그간의 모니터 경험을 통해 조선일보의 이념적 공세와 횡포가 상습적(?)이라는 점과 그 오만함이 이제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는 점을 확인한 바 있다.지금부터 기술하려는 내용은 그런 고민 속에서 진행된 작업의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2001년은 무엇보다 언론개혁운동이 지닌 역사적, 사회적 의미가 널리 퍼진 한해였다. 첫째, 신문의 문제점들이 사상 최초로 사회적 이슈로 등장하면서 현재만이 아니라 과거의 문제까지 불거져 나왔다. 특히 친일부역의 역사를 드러낸 것은 국민적 자각의 계기가 됐고, 그런 분위기 속에서 수지 김 사건, 최종길 교수 타살 사건 등 독재 정권이 반공의 이름으로 저지른 인권유린 사건이 오늘의 문제로 재등장했다. 둘째, 세무조사를 전후해 일부 신문이 저지른 자사이기주의적 왜곡보도가 탄로나면서 언론이 얼마나 자의적이고 주관적으로 기사를 만들어낼 수 있는지를 독자들이 인식하게 됐다.셋째, 김대중 정권 이후 개별화됐던 운동세력이 하나로 모였다는 데 큰 의미가 있다.시민단체, 사회단체, 노동단체가 언론개혁을 중심으로 모였고, 그 결과 수구와 개혁의 전선이 어느정도 확연하게 그어졌다. 그러나 이런 성과에도 불구하고 언론인들이 언론개혁의 주체로 나서지 못하고 책임의식 없는 모습을 보인 것은 깊이 자기반성해야할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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