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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기술 ㅣ 청목 스테디북스 58
에리히 프롬 지음, 설상태 옮김 / 청목(청목사) / 2001년 4월
평점 :
절판
사랑의 본질을 분석하는 것은 오늘날 진정한 사랑이 드물다는 것을 확인하는 일이다. 또한 그러한 사회적 조건을 비판하는 일이다. 개인적인 현상일 뿐만 아니라 보편적 현상인 사랑의 가능성에 대한 믿음은 인간의 본성에 대한 통찰에 근거하는 이성적인 믿음이라고 프롬은 강조하고 있다.사랑이란..라는 나름대로의 정의가 있을 것이다.프롬역시 사랑에 대한 정의를 내리는데에는 자신도 무리가 있다고 말한다.그러나 역시, 사랑에 대해 다루었던 심리학자들도 나름대로의 정의를 내렸다. 그 중, 에리히 프롬 에 의해 정의 내려진 사랑의 의미는 지금도 불변의 진리로 받아들여지고 있지 않은가? 프롬은 사랑에 대해 네 가지 구체적 정의를 내렸다.내가 일전에 읽은 스텐버그의 작품에서의 그이 사랑학과 일치 된다고 생각한다.스텐버그는 사랑을 이루고 있는 세 가지 요소가 있는데, 이 요소들이 모두 충족되어 서로 균형을 이룰 때, 하나의 사랑을 만든다고 보았다. 친밀감, 열정, 결정 및 책임감이 그것이다.
어떤 사람은 지나가는 이성을 볼 때마다 사랑을 느끼고 많은 사랑의 경험을 가지고 있다고 하는 사람도 있는 반면, 또 어떤 사람은 아직 한 번도 사랑을 해 본 적이 없다고 얘기할 지도 모른다. 이것은 그 사람의 운명이 그렇게 정해져 있어서, 아니면 전자의 경우가 후자보다 훨씬 매력적이어서 그러한가? 우리는 흔히 사랑은 운명이며, 내게 주어지는 것이란 생각을 하기 쉽다. 하지만, 사랑은 사랑을 해 본 사람이 더 잘하고, 여러 번의 실수를 통해 얻어지는 것이다. 즉, 사랑은 학습의 형태이다. 우리가 사랑을 하는 방법을 배워서 얻는 한 가지 능력인 것이다.사랑이란 배워서 얻어지는 능력이란 것이다.사랑 받는 것은 아름다운 부수적 결과일 뿐이며 조건은 아니다. 따라서 주시를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더 중요하고 의미있다. 엄밀히 말하자면 주는 것만이 사랑하는 능력이다.프롬 역시 그 점을 강조하고 있다.
나는 프롬의 사랑학을 읽으면서 요즘 우리 세태의 사랑은 정말 모호해지는게 아닌가 싶다.세상은 빠르게 발전하지만 우리의 성과 사랑에 대한 생각은 정체성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거 같다. 몸은 개방화되어 가는데 정신은 닫혀 있는 것이다.정말 아이러니칼 한 세상풍경이지 않을수 없다.다시 몸을 닫을 수 있을까? 없다. 몸은 개방화되어 있고, 정신은 방황하고 있다. 내 자신도 지금 방황하고 있다. 그러기에 개방화되어 있는 세상에 방황하지 않는 정신을 우리는 찾아야 한다. 그 정신을 어디에서 찾을까? 적어도 정신세계가 자리 잡아가는 사춘기 이전에 우린 배우지 못한 것들을 배워야 한다. 낙태가 불러일으키는 사회적 문제? 적어도 우리 세대(20대 중반)는 사춘기 때 그런 것은 배워 본적이 없다. 낙태가 그냥 애를 때는 것으로만 생각하고, 몰래 돌려보는 포르노 비디오 테잎엔 그저 즐겁게 소리 치는 남녀만이 우리의 정신세계를 지배 해 왔다.프롬이 만약 살아있다면 요즘 세태를 보고 무어라 이야기 했을까 나는 궁금증을 가져본다.
우리는 인간을 통해, 인간을 배우고 인간을 통해 사랑하고, 인간을 통해 살아간다.자신도 인간임에 타인도 인간이라는 것을, 그리고 남자도 여자도 똑같은 인간임에 다른 것은 신체 구조 일 뿐이지만, 사회적으로 역사적으로 많은 것들이 잘 못 분리되어 왔다. 현대에 와서는 이런 분리들이 많이 없어져 가고 있는 추세지만 아직도 많이 잔재해 남아 있다.숨겨서는 안 되는 이야기들을 우린 숨겨왔다. 이런 문제를 우린 회피해 온 것이다. 실제 우리에게 닥치는 문제를 교과서 적인 지식을 떠나 실제적인 문제로 다뤄야 할 것이다. 방송에서나 매체에서 보이는 이중 성 규범을 이제는 고쳐나가야 할 것이다. 조금씩 우리 다음 세대부터라도, 우리 세대부터라도 현실을 직시하고 올바른 길을 찾지 못한다 할 지라도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그게 바로 프롬의 사랑 아름다운 사랑이 이루어지는 세상이 되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