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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의 세계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곽복록 옮김 / 지식공작소 / 2014년 2월
평점 :
사실 20세기 유럽의 역사에 관심이 많은 본인은 이 책의 앞부분, 그러니까 슈테판 츠바이크의 어린 시절 이야기들에 대해서는 기억나는 것이 별로 없다. 기껏해야 성적으로 숨기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졌던 풍속,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 모두가 진보의 힘을 믿으며 힘차게 나아가던 긍정적인 `이성의 시대`의 모습을 서술해 놓은 것 정도가 기억에 남는다.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던 당시의 모습을 서술한 것이 인상깊었다 오스트리아 황태자 부부인 프란츠 페르디난트와 소피가 세르비아에서 암살었다는 소식을 공원에서 접하게 되지만 어느 누구도 이를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빈 시민들의 일상 생활은 여전했으며 슬퍼하는 사람조차도 찾기 힘들었음을 츠바이크는 증언한다. 그리고 1871년 프로이센-프랑스 전쟁 이후 이렇다할 전쟁이 없이 평화 속에 젖어 지냈던 유럽이 1차 세계대전의 대재앙 속으로 쓸려 들어가는 모습이 잘 서술되어 있다. 츠바이크는 1차 세계대전의 각국 동원령이 내려지던 무렵 벨기에에서 휴가를 보내다 뜻하지 않게 전시법을 어기며 중립국 벨기에 침공을 시작하는 독일군의 모습을 본다. 그는 병사로 징집되는 대신에 전쟁자료과에서 근무하였으며 이 대전쟁 중에 동맹국과 협상국 사이에 적대감이 불 붙듯이 커지고, 서로를 비난하며 모든 것을 초토화시킬 기세로 옮아간 전쟁의 참상을 기록한다. 그리고 전쟁 중에 스위스로 가게 된 그는 중립국이던 스위스에는 오스트리아-독일에서도 전쟁 이전까지는 당연한 일상이던 평온함이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을 보고 전쟁으로 인해 모든 물자가 부족해지고 초토화된 조국 오스트리아와 비교하며, `국경을 가르고 있는 강의 물고기들도 저 쪽에선 교전 중이고, 여기서는 중립인 것 같다`고 말한다. 츠바이크는 스위스에서 프랑스인 작가 로맹 롤랑과 전쟁의 참화에서 고통받는 많은 지성인들을 직접 목격하고 평화를 위한 활동을 한다. 결국 1918년에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오스트리아로 돌아가던 츠바이크는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제국의 마지막 황제인 카를이 기차를 타고 국외망명을 떠나는 것도 목격한다.
츠바이크가 어려서부터 자라오고 당연히 여겼던 오스트리아-헝가리 군주국은 이렇게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그리고 히틀러의 발호 이전까지 츠바이크는 다시 나름의 안정적인 삶을 되찾으며 잘츠부르크에 거주하였다. 그런데 이곳은 바로 아돌프 히틀러의 별장인 남독일 베르히테스가덴의 근처였고, 이 오스트리아의 실패한 화가 출신인 히틀러가 반유대주의를 공공연하게 부르짖으며 독일에서 정권을 공고히 해나가는 모습까지 목도하게 되었고 마침내 오스트리아가 위협에 처한 1934년에 유대인 혈통인 츠바이크는 위협을 피해 그의 조국을 떠나게 된다. 1938년 3월에 오스트리아가 독일에 완전히 합병됨에 따라, 그는 무국적자가 되어 영국에서 살아야 했고 코스모폴리탄적인 삶을 일찍부터 동경해왔으나 막상 조국을 잃게 된 후에는 국적이 없이 상대국의 `호의`에 의해 겨우 살아가며, 이 호의는 언제라도 철회할 수 있는 것이라 삶 자체가 가시방석처럼 된 무국적자의 설움 또한 잘 표현하였다.
결국 1939년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뒤 전보다 훨씬 비인간적인 전쟁까지 목도하게 된 슈테판 츠바이크의 삶은 결코 순탄치 못했음을 잘 살펴볼 수 있다. 1914년 이전 진보와 이성의 힘을 믿으며 끝없는 진보를 통해 전 유럽과 인류가 하나가 될 꿈을 꾸던 츠바이크는 순식간에 야만적인 광기로 얼룩진 세계사의 전환기를 겪게 된 것이다. 이러했던 `어제의 세계`를 넘어, 전 인류가 서로 평화롭게 공존할 세상은 과연 올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