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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다라는 책을 읽기에 앞서 내용을 쉽게 이해하기 위해서 작가 아모스오즈와 책제목에 대해서 한번 알아둬야 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책의 맨 뒷장 옮긴이의 말을 통해 작품의 주요맥락과 그에 대해 쉽게 알아볼 수 있었다.

아모스오즈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이에서 평화공존을 위해 노력하던 사람이다. 이스라엘 건국이후 팔레스타인과의 분쟁이 계속되자평화활동가로서 활동해왔지만 두 집단간의 갈등이 봉합되지않고 점점더 심하게 보복전쟁이 발생하자 2000년이후부터는 정치적발언을 중지하고 작품활동에 전념하게된다. 그의 첫 활동은 29살에 쓴 나의미카엘을 시작으로 마지막소설은 이 책 유다이다. 아모스오즈는 2018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할 수도 있었지만 그 해 노벨문학상이 심사위원의 추문때문에 일정이 미뤄져 기회조차 사라져버리고 말았다.

유다라는 이름을 들으면 아마도 안다고하는 사람들은, 전체사정은 모르더라도 배신자라는 특징으로 기억하고 있을것이다. 나또한 그랬다.

유다가 누구인가?

예수가 손수 뽑은 12 사도 중 한 사람. 『신약성서』 「마태 복음 」26~27 장, 그외의 복음서에 따르면, 그는 예수를 적대시하는 제사장들에게 은화 30전으로 예수를 팔았다. 최후의 만찬 시, 그 기도가 폭로되어 체포되었을 때, 솔선해서 예수에게 입을 맞춰 병사로 하여금 그 사람이라는 것을 알려 주었다. 그러나 최후에 가서는 후회하여, 돈을 돌려주고 목매어 죽었다

아모스 오즈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분쟁에서 평화활동가로 활동했지만 이스라엘내에서는 그의 주장때문에 배신자라는 말도 들었다고 한다. 만약 그가 이스라엘건국의 정당성을 부정했다면 노벨문학상을 타기쉬웠을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그는 그렇게하지 않았다.

소설 유다의 시작은 슈무엘 아쉬라는 인물에서부터 시작한다. 슈무엘 아쉬는 <유대인인들의 눈에비친 예수>라는 논문으로 석사학위를 준비중이던 대학생이었지만, 자신의 논문에 열정이 식어버린것도있고, 야르데나라는 연인이 슈무엘을 버리고 다른남자와 결혼해 떠난상황, 친구들과의 불화, 집안형편이 어려워진것 등 복합적인이유로 대학을 떠나게된다. 모든걸 잊고 맘편히 쉴 요량이었지만 돈없는 학생신분이었던 그가 할 수있는 선택은 우연찮게 발견한 아르바이트공고였다.

게르슘발드 아탈리야아브라바넬의 집에 숙식하며 노인의 말동무정도만 하면된다는 좋은조건에 갈곳없는그가 하지않을 이유가없었다. 그렇게 그는 무화과나무가 있는 비밀스런집에 들어갈수있었다. 슈무엘에게 맡겨진 일은 오후5시부터 저녁10시까지 5시간정도 노인의 말동무가 되어주고 때에맞춰 식사를챙겨주는등 간단한 일이었다. 그에대한 보수로 다락방을 내어줫고, 적은금액이지만 보수도 받을 수 있었다. 혼자서 하고싶은말을 계속해서 내뱉는 노인 게르슘발드. 그리고 그를 돌봐주는 농염한 여주인 아탈리야. 부부도아니고 그들은 무슨사연을갖고 단둘이 이집에 살고있는걸까? 슈무엘의 호기심은 날이 갈수록 깊어만갔다.

게르슘발드와의 대화를통해서 알게되는 부분, 아탈리야와 대화하면서 알게되는부분 , 자신이 조사하며 생각하는부분을 통해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이스라엘 건국준비가 한창이던떄 이스라엘이 세워질 땅에는 이미 아랍인들이 살고있었다. 그곳에살던 아랍인들을 내쫒고 유대국가를 만든다는것은 당연하지만 갈등을 초래할것이 자명했다.쉐알티엘 아브라바넬은 유대국가를 따로세우기보다 아랍인들과 같이 같은공간에서 살면서, 두민족이 더불어 살것을 주장했다. 이스라엘건국의 역사까지 거슬러올라가야 하는 이 논쟁은 당연하게도 답을 내리기 쉬운문제는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책이, 제목이, 내용이 독자들에게 던지는 물음은 상상이상이었다.

사실 여기에 두 공동체가 살아갈 충분한 공간이 있으며 그렇게 나란히 또는 하나 안에 다른 하나가 국가라는 틀 없이 공존하는 편이 낫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거죠. 혼합된 공동체로, 아니면 하나가 다른 하나의 미래를 위협하지 않는 두 공동체가 어우러져 공존하는 거예요. 그렇지만 물론 당신이 옳을지도 몰라요. 당신들 모두가 옳을 수도 있죠. 그가 정말 순진한사람이었을지도 모르고요. 당신들이 여기서 했던 모든 일이 결국 그대로 일어나게 되고, 수만 명이 학살을 당하고 수십만명이 추방을 당하게 되는 것이 나았을지도 모르죠. 결국, 여기에 유대인들이 사는 거대한 난민촌 하나와 아랍인들이 사는 거대한 난민촌 하나가 생겼을 뿐이에요. 이제부터 아랍인들은 날마다 패배자가 당하는 재앙을 살아야 하고 유대인들은 밤마다 보복을 당할까 봐 떨며 살아야 해요. 이렇게 사는 것이그들 모두에게 좋은가 보죠. 두 민족이 증오와 독에 잡아먹힌후 둘 다 복수와 정의라는 훈장을 달고 전쟁을 마쳤으니까요.

복수와 정의가 가득 차 흐르는 강물들이 됐죠. 그렇게 정의가넘쳐 나다 보니 온 땅이 묘지로 덮이고 가난한 마을들이 수백개씩 폐허가 되어 지워지고 있어요

아탈리야와 슈무엘의 대화중 278

떠돌이민족, 핍박받는 유대민족의 정착에대한 열망을, 그들의 바람이 이루어질 수 있는현실이 코앞에 다가왔을때 손에서놓을수 있는게 가능한 일이었을까? 그앞에서 건국을반대하고 다른길을 찾자고 목소리를 내는것이 쉬운일이었을까? 건국이후에 평화가 실질적으로 가능한일이었을까?

알다싶이 이스라엘은 건국되었고 주변아랍국들과의 계속되는 전쟁으로 이스라엘의 영토는 더욱 확장되어왔다. 작가는 갈등은 끝이없이 계속될것이며 언젠가는 아랍국에 밀리고 말것이라고 말하고있다.

(벤구리온)그 사람만큼은 세상을고치는 자가 아니라 오히려 위대한 현실주의자라네. 그는 역사 속에서 작은 빈틈을 발견한 유일한 사람이었고, 적절한 시점에 그 빈틈을 통해서 우리를 이주시키는 데 성공했지. 자기혼자 한 일은 아니었지. 물론 그건 아니야. 내 아들과 그 친구들이 아니었다면 우리는 다 죽었을 거야...

힘은 아무것도해결하거나 해소해 주지 않아요. 얼마간 재난을 막아 줄 뿐이지 게르솜 발드가 말했다.

“내가 외아들을 잃은 것이 자네 생각에 절대 막을 수 없는 재난을 얼마간 막기 위해서였다는 건가?

-벤구리온과 아브라바넬에대한 대화도중-159p

작중에서 게르슘발드의 아들이자, 아탈리야의 남편이었던 미카는, 이스라엘을위한 전쟁에 참여했다가 아랍인들에 의해 참혹한 죽음을 맞이하게 되고, 그로인해 그의가족들, 게르슘발드,아탈리야, 쉐알티엘 사이에서 국가에 대한 논쟁은 사라지게되었다. 가족과 행복한 미래를 꿈꿀수도, 편안하게 살수도없는 긴장된 삶을 살아가고 있는 이 집안을통해 민족국가를세우는 것이 과연 누구를위한 일이었는지에 대한 물음이 아닐까 생각되었다.

그래. 하임 바이츠만이 언젠가 말했지, 절망스럽게, 유대 국가는 영원히 세워질 수 없으니 그 개념 안에 모순이 있기 때문이라고, 만약 국가를 세운다면 그 나라는 유대적이지 않을 것이며, 그것이 유대적이라면 분명히 국가가 아닐 것이라고 말일세. 우리 전통에, 이것은 당나귀를 닮은 백성이라고 기록된바와 같지" p63

유대인과 아랍인 두민족사이에서 평화를 위해 활동하던 것 때문에 배신자 라는 말을 들은 아모스오즈는 그 때문에 배신이이라는 것이 무엇인가에대해 더욱 강하게 따져 묻고있는듯했다. 유대민족의 배신의 아이콘 유다를 엮으면서까지 말이다.

십자가형상을 볼때면 고개를돌리는것이 상례였다...우리의 원수들이 그 사람의 이름으로 얼마나 많은 칙령, 얼마나 많은 박해,얼마나 많은 학대로 우리를 괴롭히고, 얼마나 많은 억울한 피를 쏟았는데! 그런데, 슈무엘, 네가 갑자기 일어나 선을 넘어 무슨 이유에선지 장벽 건너편에, 바로 그 사람 편에 서다니...

슈무엘의 아버지가 슈무엘에게쓴편지중149p

슈무엘은 종이 한 장을 따로 꺼내서, 이런 유대인들이 예수

의 부모와 탄생, 그의 삶과 죽음을 둘러싼 초자연적인 이야기들을 대체로 인정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복음에 대해서 정신적이거나 윤리적인 모든 논쟁을 회피하려고 노력하고 있다는 점이 매우 이상하다고, 적어 놓았다. 마치 그 이적들을 부인하고 그 기적들에 반대하기만 하면 그의 복음 자체가 완전히 사라질 것으로 생각했던 듯싶었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이런 기록 중에서 가룟 유다를 언급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그나마 유다가 아니었다면 십자가도 없었을 테고 십자가가 없었다면 기독교가 없었을 텐데 말이다. 125p

예언자 예레미야도 예루살렘 군중의 눈과 왕가의 눈에 배신자로 보였어요. 탈무드의 현인들도 엘리샤 벤 아부야를 파문하며 그를 '다른 이'라고 불렀고요. 그렇지만 적어도 그 책에서 그의 가르침과 그의 이름을 지우지는 않았죠.노예 해방자, 에이브러햄 링컨도 그의 반대자들에게 배신자라고 불린 적이 있어요. 히틀러를 암살하려고 했던 독일 장교들은 배신이라는 죄목으로 총살을 당했고요. 역사 속에는 때때로 자기 시대보다 너무 앞서 태어난 용감한 사람들에게 배신자나 광인이라는 낙인을 찍은 예가 많이 있어요. 헤르츨도 오토만이 다스리는 이스라엘 땅에 유대 민족이 들어가기 어렵다는 사실을 알고 이스라엘 땅이 아닌 곳에 국가를 세울까 고려했다는 이유로 배신자라고 불렸었죠. 심지어 다비드 벤구리온도, 12년 전에 이 땅을 두 나라, 유대 국가와 아랍 국가로 나누는 데 동의했다는 이유로 많은 사람이 배신자라고 불렀었고요. P373

평화가 무엇인지 배신이 무엇인지 생각하게만드는 이책은 우리에게도 같은 질문을 던지고있다.

언젠가 이 세상에서 모든 종교와 모든 혁명이 사라지기만 한다면, 내가 장담하건대 마지막 하나까지, 예외 없이 - 이 세상에 전쟁들이 훨씬 적게 일어날 걸세. 104p

나세르, 이집트 지도자는, 위협을 계속하고 있었지만 벤구리온도 그에게 경고를 했다. 왜 나세르가 경고하는것은 항상 위협이라고 부르고 벤구리온이 위협하는 것은 경고라고 부르는 것일까? 166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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