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먼 고래
윤미경 지음, 이준선 그림 / 키큰도토리(어진교육)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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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와 사람들이 함께 사는 고래섬, 눈먼 고래와 걷지 못하는 고래아이도 그 안에서 행복하게 살고 있었다. 하지만 사람들의 욕심으로 고래섬의 평화는 깨지게 되고, 고래들은 하나 둘 고래섬을 떠나 눈먼 고래만이 남게 된다. 고래가 떠난 고래섬, 사람들의 욕심은 더 커지고 고래섬은 점점 더 황폐해진다. 사람도 동물도 살기 힘든 곳이 되자 바다는 고래섬 사람들에게 벌을 내리고. 섬을 뒤덮은 파도 속에서 만난 적 없지만 이미 친구였던 눈먼 고래와 고래아이는 처음으로 서로를 발견하게 된다. 거친 파도가 지나간 뒤, 고래섬 사람들은 그 동안의 잘못을 깨닫고 고래들도 돌아와 고래섬은 다시 예전같이 평화로운 곳이 되었지만 눈먼 고래와 고래아이는 돌아오지 않았다.

 처음 제목을 보고는 몸이 불편한 고래의 성장기인가 했었고, 앞표지를 보고는 행복한 표정의 분홍 고래가 저 아이의 상상 속 친구인가 생각했었다. 하지만 예상을 빗나가는 진지한 주제와 결말에 마음이 무거워졌다. 작가는 사람은 눈 앞의 욕심에 자연을 파괴하지만 파괴된 자연에서는 사람도 동물도 살 수 없고, 결국 자연의 벌을 받고 나서야 잘못을 깨닫는 모습과 서로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며 더 행복해진 눈먼 고래와 고래아이를 통해 자연과 사람은 함께 살아가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하려 한다고 생각한다 고래를 잡는 사람들의 모습을 살펴보면 처음에는 고래가 걸린 그물을 끌어 올리는 모습과 작살을 던지는 모습 등이 가까운 곳에서 본 모습으로 그려지다가 점점 멀리서 바라보는 모습이 되고 검은 형체만 그림자처럼 보이다가 자연의 응징을 받는 장면에서는 자세히 들여다봐야 할 정도로 작다. 그리고 마지막에 그물을 찢고 작살을 부러뜨리는 모습은 다시 가까이에서 본 모습이다. 자연을 파괴하는 것에 대한 못마땅함과 용서를 자연을 파괴하는 사람들의 존재감이 변하는 그림으로 말하려고 했던 게 아닌가 한다.

 책의 겉표지를 넘기고 속표지를 넘기면 첫 장에 고래섬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그리고 한 장 더 넘기면 눈먼 고래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고 한 장을 더 넘기면 고래아이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고래섬은 아름답고 평화롭다. 눈먼 고래는 앞이 보이지 않아도 행복해 보인다. 하지만 고래아이의 이야기가 나오는 다음 장면은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마음 아팠던 부분이기도 하고 두 페이지의 그림으로 정말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구나 싶어 무척 인상적이었다. 작가는 고래아이의 실제 모습은 오른쪽 위에 상대적으로 작은 비중으로 그리고 바닷가를 달리고 헤엄치고 고래와 친구가 되고 싶다는 고래아이의 소망을 그리는 데 좌우 양면의 대부분을 할애했다. 무표정한 현실의 고래아이에 비해 상상 속 고래아이의 표정은 너무나 밝고 환하다. 온몸으로 웃고 있다. 우울할 것만 같은 고래아이의 마음에 그래도 꿈과 희망이 있다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서 잠시 안도감이 들었다. 하지만 곧 마루에 맨발로 앉아 있는 고래아이네 집 댓돌에는 신발이 보이지 않는데 상상 속 고래아이는 빨간 운동화를 신고 있는 것을 보고 고래아이의 아픔이 현실적으로 훅 들어와 마음이 무거워졌다.

 이 책의 중심에는 분명히 눈먼 고래와 고래아이가 있는데 책을 다 읽고 난 나는 할머니 걱정을 하고 있었다. 나를 무척이나 귀하게 여기셨던 외할머니 생각도 났다. 고래아이는 할머니와 함께 살고 있었다. 바닷가 작은 집에서 할머니와 단둘이 사는 형편이 좋을 리 없겠지만 장독 뚜껑이 날아가지 않도록 돌로 눌러 놓은 모습, 집 한 켠에 보이는 꽃들, 지붕 위에 처마 밑에 마당에 메어 놓은 줄에 이런저런 생선을 말리는 할머니의 웃음 띤 얼굴을 보면 할머니는 없는 살림에도 살뜰하게 고래아이를 챙기셨을 것 같다. 그런데 파도가 집을 덮쳤을 때 고래아이는 혼자 집에 있었다. 막연하게 할머니는 일을 하러 가셨을 거라 생각했고 나중에 고래아이를 찾아 헤맬 할머니의 황망한 모습이 저절로 떠올랐다. 고래아이가 없는 것을 알게 되면 할머니는 어떡하나 가슴이 먹먹해지고 고래아이도 할머니가 보고싶을 거라는 생각이 들자 더 답답해졌다. 좀 유치하더라도 이렇게 저렇게 해서 행복하게 살았다는 결말을 좋아하는 나에게는 상당히 불편한 마무리다. 그래서, 사실 할머니는 얼마 전에 돌아가셔서 고래아이는 진짜 외톨이가 되었고 눈먼 고래와 함께 할머니에게 갔기 때문에 돌아오지 않는 것이라고 내 맘대로 결말을 덧붙이고 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환경을 보호해야 한다 거나 자연과 함께 살아야 한다고 일장 연설을 하지 않고 대화체 없이 차분하게 이야기하듯 말하는 문체는 무거울 수도 있는 주제를 불편하지 않게 전달한다. 눈먼 고래와 고래아이의 다른 세상 같은 모습에서 아이들도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자연스럽게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반쯤 열린 결말은 나처럼 행복한 결말을 추구하는 사람들도 마음 편히 마무리할 수 있는 여지가 있어 더 좋았다. 자연과 함께 사는 우리 모두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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