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에이스 -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
홍민기 지음 / 규장(규장문화사)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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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민기:
“사울의 시작은 분명 괜찮았습니다. 그도 하나님이 택하여 세우신 왕이었지요. 그러나 그는 하나님이 부어주신 은혜를 놓치는 어리석음을 저지르고 말았습니다. 하나님 앞에 겸손하게 깨어 있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나 다윗처럼 하나님의 사람이자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을 받고 싶어 할 것입니다. 다윗은 성경 전체에서도 손꼽을 만큼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하나님의 아들이고 싶었던 다윗은 훗날 사울로, 가룟 유다로, 하나님의 말씀을 저버리고 심판의 역사 저편으로 사라진 영혼이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더욱이 부정과 불법이 가득한 오늘날을 사는 우리에게 있어 냉정하게 점검해봐야 할 귀중한 내용이 <하나님의 에이스>에 담겨있습니다.

 

 

홍민기:

“진정한 하나님의 사람은 하나님을 늘 경외함으로 두려워하고, 영적인 분별력으로 언제나 겸손하게 섬기는 사람입니다.”

 

 

우리가 명심해야 할 것은 하나님을 아는 것과 하나님을 믿는 것은 완전히 다르다는 것입니다. 단순히 교회에 다닌다고 해서 우리의 영혼이 천국행을 보장받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온전히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예수님을 구주로 삼아 어두운 이 세상에 밝은 빛을 비추는 자만이 성경이 말하는 천국에 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에 대한 심각성을 오늘날 많은 청년들이 알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20대 때 청년을 대표하는 대형교회들을 다니면서 리더로, 여러 일들을 섬기면서 복음이 무엇인지에 대해 온전히 대답하는 사람을 만나기가 힘들었습니다. 안타까웠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것이 과연 무엇인가요. 청년들을 향한 제 마음이 부디 제 착각이길 바랍니다.

 

 

홍민기:

“성실하고 정직한 사람은 편법과 거짓으로 가득한 이 세상에서 자칫 불이익을 당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불이익을 감수하고서라도, 고지식하다는 세상의 평가를 받을지라도 하나님의 말씀 그대로 붙잡고 살아가는 것, 이것이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역사를 일으키게 하는 믿음입니다.”

 

 

<정의란 무엇인가>와 같은 책들이 세상 사람들에게 인기입니다. 그만큼 우리 사회에 뭔가 이상이 있다는 것입니다. 청년인 우리의 앞길을 갈수록 힘들어지고, 한 참 꿈을 꿔야 하는 이 시기에 단지 ‘취직’이 꿈이 돼버린 비참한 현실입니다. 그러나 오히려 이때 참된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한 귀중한 시간, ‘광야’의 시간이 아닌지 감사함으로 하나님의 음성에 귀기울여보면 어떨까요.

 

 

홍민기:

“우리가 사는 이 시대는 어떻습니까? 이 시대는 빛을 잃어버린 암흑과 같은 시대입니다. 한국교회는 이미 사회에서 신뢰를 잃어버린 지 오래입니다. 슬픈 현실이지요. 그러나 아직 절망하기에는 이릅니다. 바로 이때, 이 어두운 때에 하나님께서는 새로운 사람, 새로운 교회를 일으키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마음에 맞는 한 사람, 하나님이 쓰시는 그 한 사람이 바로 우리 자신이 되어야 합니다. 바로 우리 교회가 하나님이 세우시는 그 한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해 이 땅에 새로운 부흥을 일으키실 것입니다! 그러나 새로운 부흥을 위해 우리가 쓰임을 받기 위해서는 먼저 철저한 회개가 선행되어야 합니다. 사실, 이 시대가 이토록 어두워진 데에는 우리 그리스도인의 책임이 큽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으로 온전히 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교회 안에서는 그럴듯한 신앙인으로 살아왔지만, 세상 속에서는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지 못한 탓에 오늘날 교회가 이토록 세상의 신뢰를 잃고 만 것입니다.”

 

 

사회생활을 하고, 글을 쓰니 다양한 사람을 만나게 됩니다. 생각보다 심각하게 기독교를 향한 세상 사람들의 불만과 입에 담지 못할 하나님을 향한 저주가 심각하게 늘어나고 있습니다. 이걸 정녕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알고 있는지 걱정스럽습니다. 지금은 자유롭게 교회에 나갈 수 있지만, 나중엔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을 핍박하고, 때론 목숨을 내놓는 일이 발생할 수도 있습니다. 여론은 사회에 대한 불만을 기독교인들에게 전가시키고 있는 상황입니다. 당신은 목숨을 내놓고 예수님을 증언할 수 있겠습니까? 환난이 오기 전에 충분히 훈련을 받은 사람만이 하나님 편에 끝까지 서있을 수 있는 것 아닌가요. 무섭고 떨림으로 혼란에 빠지게 될 것인데, 온전히 주님과 동행했던 사람만이 담대히 견딜 수 있는 것입니다.

 

무엇이 세상 사람들을 그토록 화나게 했는지 생각해봐야 할 것입니다. 우리의 아집과 독선과 무책임한 행동들, 정의를 지키지 못할 뿐만 아니라, 예수님의 향기를 품지 못한 죄의 모습이 원인 아닐까요? 지금 한국 사회는 원칙과 정의가 사라진지 오랩니다. 돈이 정의의 기준이자, 권력이 예수님보다 앞에 있습니다. 문제는 그러한 사회 분위기를 비단 세상 사람들만 만들었을까요? 우리가 거기에 동참하고 있지 않나요? 우리는 옷을 찢는 마음으로 회개해야 하며, 우리나라와 온 열방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홍민기:

“회개에는 많은 말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그저 세리처럼 하나님 앞에 엎드려 ‘하나님 저는 죄인입니다. 저를 불쌍히 여겨주세요’라고 고백하는 것으로 충분하지요. 바리새인처럼 하나님 앞에 당당하게 서서 그럴 듯한 많은 말로 기도하는 것은 진정한 회개가 아닙니다. 가난한 심령으로 겸손히 엎드리는 회개를 하나님께서는 기뻐하십니다. 특별히 직분을 맡은 자일수록 바리새인과 같이 되지 않도록 항상 조심하고 경계해야 합니다.”

 

우리는 그토록 귀한 하나님의 아들,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구원받았는데, 그 피 값을 너무 가볍게 여기고 있는 것은 아닌가요. 칼날로 손끝만 베어도 통증이 시린데, 신이 먼지 같은 인간을 그토록 사랑하셔서 그 모든 살결이 찢어지는 아픔을 견디신 예수님을 생각해봅시다. 우리 과연 이렇게 살아도 되는 건가요! 예수님의 복음을 전하기 위해 순교한 믿음의 선배들의 생명을 우리가 과연 귀하게 여기고 살고 있을까요?

 

우리 정말 우리의 죄로 인해 더 이상 하나님의 이름에 먹칠하지 맙시다. 결단해야 합니다. 이것은 전쟁입니다. 천국과 지옥에 가는 것은 장난이 아닙니다. 당장 가스렌지에 손을 대보세요. 몇 초나 견딜 수 있나요. 지옥은 견딜 수 없는 고통도 있지만, 사랑하는 우리 주 예수님과 영원히 함께 할 수 없는 기나긴 외로움의 고통이 더 크지 않을까요. 끝까지 주님 편에 우리는 서야 합니다. 이것은 생명이 달린 문제입니다! 막장인 시대가 마지막 부흥의 시기가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 편에 서야 합니다. 자신이 지금 하나님 편에 있는지, 악마의 편에 있는지 늘 깨어 점검해야 합니다.

 

 

홍민기:

“하나님, 제가 주님 앞에서 늘 겸손하기를 원합니다. 도와주시옵소서!”, “이것이 복된 인생의 시작입니다. 이렇게 기도할 때 하나님이 우리를 주님의 길로 인도하시고 들어 쓰실 것입니다.”

 

지금 우리 사회는 평안해 보일 것입니다. 우리는 아무렇지 않게 자신의 의견을 표출하고, 좀 싫증나면 자기가 하던 일을 멈추고 도망가면 그만일 것이고, 의무보단 권리를 주장하며 감사보단 짜증을 내는 삶을 자유롭게 살 수 있지요. 그러나 성경은 분명히 말합니다. 이러한 삶은 생각보다 길지 않을 것입니다. 이미 세상은 하나님이 필요 없어지고 있습니다. 세상이 정의를 외쳐 정치, 경제가 회복된다 하더라도, 교회를 향한 불신은 더욱 늘어날 것입니다. 모든 것이 다 평등하다는 세상의 철학도, 지성도, 정의도 영혼을 다루진 않습니다. 그러나 무조건적인 다양성을 주장하는 저들에게 기독교는 하나의 종교로 인식되고, 그것조차 줄어드는 것입니다.

 

홍민기:

“우리의 원수 사탄은 우리를 죽이고 넘어뜨리고 망가뜨리는 데 사활을 걸었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어찌 평탄하게 살아갈 수 있겠습니까? 어찌 기도 안 하고, 예배 안 드리고 살 수 있겠습니까? 성도는 하나님 앞에 무릎 꿇지 않고 살아갈 수 없습니다. 승리의 비결은 ‘무릎 꿇는 것’에 있습니다.”



 

모든 것이 혼란스러운 이때에 진정한 주님의 아들딸들은 이 시기가 고난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악한 이 세대에 바로 당신을 사용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상하게 최선을 다하고, 하나님 말씀에 순종해도 아직도 뭔가가 풀리지 않는다는 것은 하나님이 당신을 사용하시기 전에, 당신의 모든 죄악을 이겨낼 수 있는 힘과 그 어떠한 상황에도 하나님만을 신뢰할 수 있도록 광야에 보내신 것입니다. 그것은 연단이자, 바로 귀한 당신을 위한 하나님의 애틋한 사랑입니다. 우리는 그 사랑을 느낄 수 있어야 하고, 그 사랑에 늘 감사해야 합니다. 아직 우리 굶어죽진 않았잖아요!


 

홍민기:

“하나님이 우리에게 고난을 허락하시는 이유는, 그 고난을 통해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드시기 위함입니다. 진실한 하나님의 사람이 되게 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눈물을 머금고 성도들로 하여금 고난의 자리를 통과하게 하시는 것이지요. 고난의 자리에서 하나님을 찾게 하기 위해, 고난 중에라도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신다는 사실을 가르쳐주시기 위해 우리 삶에 고난을 허락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다윗의 삶을 막연하게만 생각하면 안 됩니다. 성경에 등장하는 다윗의 모습을 연구하고, 그의 모습에서 하나님의 섭리를 이해해야 합니다. 다윗이 고난과 좌절의 상태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비결은 의지적으로 예배를 드리고, 하나님이 다윗을 들어 사용하시겠다는 그분의 말씀을 기억하는 것이고, 그 끔찍한 고통 속에서도 전심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감사했기 때문입니다. 사탄은 감사하는 사람을 제일 무서워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감사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이 진행되지 않으니 늘 악순환인 것입니다.

결단하여 이 악순환을 끊어버리고, 온 우주 만물을 말씀하나로 창조하신 하나님을 믿는다면 우린 쫄면 안 됩니다. 세상이 정의를 외칠 때, 우리 참된 그리스도인들은 정의를 지키는 것은 물론이고, 더욱더 나라와 이웃을 위해 기도하고, 사랑으로 품어야 하며, 세상 사람들보다 더욱 지혜롭게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물론 단순히 스펙을 쌓으라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세상의 스펙에 관심이 없습니다. 그분의 섭리를 이해하고, 그분을 뜨겁게 사랑하고, 그분의 말씀에 철저히 순종하고, 그분의 약속에 무한한 신뢰를 보내는 사람, 바로 다윗을 에이스라 생각하십니다. 천국에 가는 이력서에 쓸 게 없다면, 아무리 세상의 이력서에 경력이 많다 한 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사우나에 들어가 생각해보세요. 내가 과연 이 뜨거운 곳에 영원히 견딜 수 있을지. 사우나와 지옥의 열기를 비교한다는 것이 너무 우습지만입니다.

 

우리 모두는 너무나 귀합니다. 먼지 같은 우리 인간을 그래도 기대하시고,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느껴봅시다. 그리고 그 분의 사랑을 시험하고, 착각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가 살아있을 때까지고, 그것의 연장은 무한한 천국 안에서나 가능합니다. 믿지 않는 귀한 영혼들에게 그리스도인들의 신뢰를 회복해야 만이 이 마지막 때라 하는 위급한 시기에 하나님께서 이 나라를 귀하게 사용하실 것입니다. 구약의 무수한 심판을 떠올려보세요. 하나님은 죄와 전혀 타협되지 않는 분이십니다. 죄에서 돌이키게 만드는 연단, 광야의 시기를 반드시 승리하시길 진심으로 기도합니다. 사랑합니다.

 

이 비상식적인 시대에 안철수와 같은 정의를 외치는 사람이 인기를 끌고 있다면, 교회 안에서 홍민기 목사님과 같은 지극히 정상적인, 영혼을 울리는 그리스도인을 만난 것이 귀합니다. 호산나교회는 홍민기 목사님을 담임목사로 만난 것을 축복으로 여기시고, 이 목사님이 온전히 변치 않고, 끝까지 주의 도구로 사용받기 위해 함께 기도해야 합니다.

 

부디 이 책에 나오는 귀한 말씀들을 묵상하시고, 간직하셔서 당신의 영혼이 조금이나마 천국을 향해 담대히 전진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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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꿔라, 예수의 심장으로! - 예수님의 마음을 품은 사람이 세상을 살린다 KOSTA 시리즈 8
김진홍 외 지음 / 규장(규장문화사)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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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서적을 서평을 쓴다는 것은 심적으로 부담이 됩니다. 그래서 먼저 말씀드립니다. 저는 죄인입니다. 그리고 주님을 사모합니다.

오늘날 기독교를 향한 질타가 심각합니다. 입에 담지 못할 말들로 기독교인들을 욕하는 것도 이해는 가지만, 하나님을 향한 분노의 모습을 보며 슬프면서 심각한 걱정이 들기도 합니다. 어쩌다가 이 지경에 이르렀을까요.

우리가 분명히 알고 살아야 할 것은 교회 안에 알곡과 가라지가 함께 존재하고, 오늘날 주님께 알곡으로 기억되는 소수의 존재만이 주님과 함께 영원한 평안을 누릴 수 있습니다. 문제는 가라지의 죄로 인해 귀한 알곡까지 가라지로 세상에 비춰진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심각한 상황에서 주님께 귀하게 쓰임 받고 있는 분들을 소개해드립니다. 여기 계신 분들은 한국교회의 정화를 위해 분명 노력하고 계시고 있습니다. 이 분들의 말씀이 100% 정확하다는 것이 아닙니다. 이 분들은 주님 앞에 겸손한 분들인 것 같습니다. 악한 세력은 이분들을 더욱 힘들게 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분들을 위해 책을 읽는 순간이라도 기도를 해야 합니다. 지금처럼 끝까지 귀하게 변함없이 주의 도구로 쓰임 받을 수 있도록 말입니다. 한국교회의 절망적인 상황에서 이렇게 귀한 분들이 계시다는 것은 또한 희망입니다. 이 분들 중에 단 한분도 흔들리지 않고 끝까지 정진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우리가 진정한 그리스도인이라면 세상 사람들보다 더 사랑하고, 더 노력하고, 더 품어야 합니다. 그들보다 더 정직해야 하고, 더 겸손해야 하고, 더 베풀어야 합니다.
무엇보다 우리가 진정한 그리스도인이라면 내 안에 주님의 향기가 나타나야 합니다. 절대로 주님보다 앞에 서 있으면 안 됩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그 분 뒤에서 그 분의 영광을 위해 살아가야 합니다.

 

일본에서 지진구호활동을 하고, 일본 중부에 위치한 이나에서 일본코스타의 스텝으로 활동했습니다. 가진 달란트가 힘쓰는 것이라 나르고, 쌓는 일을 미친 듯이 했습니다. 그러나 돌이켜보니 세상에서 가장 행복했습니다. 가장 지저분한 것을 만지고, 가장 영광스러운 장면들을 목격했습니다.

 


 

 

 

 

 

 

중국, 일본, 미국, 한국 등 다른 민족이 하나의 주님을 찬양하고 경배하는 모습이 너무나 신기하고 영광스러웠습니다. 코스타의 중요성을 절실하게 느낀 자리였습니다.

지구촌은 갈수록 첨예한 대립으로 인한 갈등과 억압이 더욱 증가할 것입니다. 세상은 우리더러 평안하다 이야기 하지만 지금의 복잡하고 취할 것이 너무나 많은 혼란의 시기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서로를 내 이웃으로 품고,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굳건한 반석의 역할을 하는 것은 바로 청년들이고, 그 청년들이 주님께 헌신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주는 것이 바로 코스타라고 생각합니다. 그 뜨거운 열정을 사진으로 잠시 보여드리겠습니다.


참 묘한 기분이 들게 했었습니다. 한국, 일본, 중국 이 세 나라의 지독한 악연은 기억하고 싶지 않는 역사입니다. 그런 그들이 주님 앞에 진정으로 서로 하나되어 눈물을 흘리며 죄를 고백하고 회개하는 모습이 너무 신기합니다. 주님의 임재가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각 나라의 다른 스타일로 하나의 거룩한 신을 찬양한다는 것이 세상에서 볼 수 없었던 최고의 영광이었습니다.

저는 정치적인 힘이나 경제적인 힘이 세계평화와 공존을 이루어나갈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기술이 발전할수록 인간의 심리는 더욱 건조해지고, 위축되고, 증오가 쌓여가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각각의 사람이, 각각의 민족이, 각각의 나라가 서로를 증오하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러한 시점에서 우리는 놀라운 사랑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사랑만이 서로가 하나됨을 느끼게 해줍니다. 서로를 용서하게 해줍니다. 서로를 진심으로 아껴주게 됩니다. 지구촌 곳곳에 있는 믿음의 자녀들이 서로 의지하고, 기도로 하나되는 놀라운 일들을 가능케하는 것은 바로 예수님의 권능입니다.

 

<세상을 바꿔라, 예수의 심장으로!>는 2011년 8월 명지대학교에서 열린 코스타 코리아 집회의 주요 강의를 모은 것입니다. 그리고 다음 내용은 그분들의 말씀 중에 귀한 말씀들을 추려봤습니다. 이 분들은 사례비도 받지 않고, 오히려 청년들에게 재정을 후원하는 분들입니다. 모두가 다 귀한 분들이고, 다 귀한 메시지를 담고 있으니 책을 소장하는 것이 좋다고 판단됩니다.


저는 일본코스타를 경험해보고 그곳에 10년 안에 강사로 가서 섬기고 싶다는 서원을 했습니다. 절망의 시기에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믿음의 선배들처럼 주님의 사랑과 온전한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이 글을 읽는 분들 중에서도 많은 분들이 도전을 받고, 주님과 함께 동행하는 삶을 살기를 결단하는 귀한 동기가 되길 진심으로 기도합니다. 사랑합니다.

 

 


김진홍 목사 (두레공동체운동본부 대표)

 

물은 세월이 흐르면 부패하고 벌레가 생겨서 버릴 수밖에 없게 됩니다. 하지만 포도주는 시간이 흐를수록 더 좋아지고 값이 나갑니다. 따라서 우리의 신앙은 물이 포도주로 변화되듯이 변화되는 신앙이어야 합니다. 크리스천의 삶은 물 같은 상태에서 포도주처럼 값진 상태로 날마다, 해마다 변화되는 삶이라야 하겠습니다.

 

한국교회는 지금 변화가 필요한 때입니다. 한국교회가 변화되어야 한다는 말은 한국교회에 속한 목사와 교인 한 사람 한 사람이 예수님의 피의 공로를 힘입어 복음의 능력으로 그 인격과 삶과 생각과 행동이 변화되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자신이 먼저 변화되어서, 조국과 역사와 세계를 변화시킬 수 있는 신앙으로 발돋움해야 합니다.

 

한국교회가 이렇게 성공적인 교회가 된 것은 당대의 우리가 잘했기 때문이 아닙니다. 선배들의 눈물의 기도와 헌신과 피와 희생의 밑거름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김구 선생이 귀국하여 사시던 집을 경교장이라고 하는데, 선생이 안두희에게 암살을 당하는 날 아침까지 하루도 빼놓지 않고 그 집에서 새벽기도를 했다고 합니다. 김구 선생이 1945년 11월 대중 앞에서 강연할 때 이런 말을 했습니다. “앞으로 세워질 신생 독립국가 대한민국은 기독교 진리 위에 세워져야 합니다. 우리 조국은 경찰서 10개 짓는 것보다 예배당 하나 세우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3.1 만세 운동이 일어난 지역을 표시한 지도가 있습니다. 그 지도는 만세운동이 일어난 지역의 75% 이상이 교회 중심이었음을 보여줍니다. 이런 것들은 무엇을 말해줍니까? 우리 믿음의 선배들이 하나님에 대한 뜨거운 사랑과 조국에 대한 사랑, 예수님에 대한 사랑과 겨레에 대한 헌신을 한 가슴, 한 인격, 한 신앙으로 품고 있었다는 말입니다.


 

이동원 목사 (지구촌교회 원로목사)


 

“무리를 보시고”
예수님은 이웃들을 주목할 수 있는 집중력이 있으셨습니다. 늘 이웃을 바라보면서 사셨습니다. 그것이 그분이 세상을 바꾸고, 세상에 거룩한 영향력을 남길 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첫 번째 발걸음이었습니다. 상처 입은 세상, 상처 입은 이웃들을 치유하는 자로 살아가기 위해 우리도 이웃을 바라보는 눈이 열려야 합니다.

이웃들의 고통을 나의 고통처럼, 이웃들의 답답함을 나의 답답함처럼 함께 느끼는 가슴이 예수님에게는 있었습니다.

 

세상은 막연한 구호로 변화되지 않습니다. 세상의 변화가 우리의 궁극적인 비전이라면, 세상을 바꾸는 위대한 비전의 처음은 내 곁에 있는 아파하는 한 사람과 함께하는, 구체적인 행동을 통해서 시작할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과 바꾸겠느냐”(마 16:26)
한 영혼의 가치는 온 세상과 맞먹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이웃에 있는 한 사람을 보고 불쌍히 여기고 예수님의 제자가 되도록 할 때 세상은 변화됩니다. 우리 모두가 곁에 있는 한 사람, 한 사람을 섬기기 시작할 때, 그때부터 세상은 변화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이런 변화를 위해 하나님은 우리를 사용하기를 원하십니다.

 

당신에게 상처가 많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상처는 나보다 더 상처 받는 이웃들을 이해하기 위해 하나님이 주시는 시련일지도 모릅니다. 어떤 사람은 고통스럽고 아파하는 힘든 환경 속에서 자라왔을지도 모릅니다. 그것을 나보다 더 힘들어하고, 나보다 더 아파하는 이웃들을 치유하기 위해 하나님이 내게 주신 고통으로 바라볼 수 있다면, 그 사람의 인생은 이제부터입니다. 이웃을 치유하는, 또 그들을 통해 세상을 바꾸는 위대한 일에 도구로 쓰임받는 것입니다.

 

내가 예수님을 만났고 예수님의 제자로 살았다면 이제 그의 심장과 그의 복음을 가지고 어떤 영향을 남기고 가시겠습니까? 그것을 고민하십시오.

 

김동호 목사 (높은뜻연합교회 대표)

우리는 60년대에 비교해서 경제적으로 250배나 성공한 나라입니다. 세계에 이런 나라가 없습니다. 자기 회사를 위해 몇 조원씩을 투자하는 일이 그냥 이루어지고, 새로운 자동차 하나 개발하는데 몇 천억 원의 연구비가 투입된다는 건 많이 아실 겁니다. 세상 경제는 그렇게 해서 돌아갑니다. 그런데 50억 원이라면 구물리라 마을 하나를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한국교회도 엄청나게 부흥하고 커졌습니다. 부자인 기독교인도 많아졌습니다. 하지만 50억 원이 부담스럽고 그 돈을 마련하는 일이 쉬운 일이 아니라고 할 때, 하나님이 이 말씀 하시게 생겼다고 제가 생각했습니다. “야, 나 하나님인데, 돈 좀 줘. 쌀 좀 사게.”


저는 우리 크리스천들이 하나님을 잘 믿어서 부자 되는 사람들이 되기보다, 물론 부자가 되는 것도 나쁘진 않지만, 이왕이면 ‘예수를 잘 믿어서 하나님을 부요하게 해드리는 사람이 되면 어떨까’하는 생각을 합니다.

세상을 바꾸려면 주머니를 여는 것부터 훈련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니까 헌신은 나중에 하더라도 헌금부터 제대로 하라는 것입니다. 이건 철저히 훈련이 되어야 하는 일입니다.

 

유기성 목사 (선한목자교회 담임목사)

세상을 변화시키고 바꾸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입니까. 이미 잘 아실 것입니다. 자신도 쉽게 바뀌지 않는데 세상을 어떻게 변화시키겠습니까? 그러나 예수님의 심장으로 하면 됩니다. 내 심장을 예수님의 심장으로 바꾸면 세상도 바꿀 수 있습니다.

세상을 바꾸는 일은 이렇게 의외로 간단합니다. 나의 심장을 예수님의 심장으로 바꾸면 됩니다. 무슨 일이든 예수님의 심장으로 하면 가능합니다.

교회만 다니는 것은 절대로 예수를 믿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 믿는다는 고백을 하려면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고 내 안에 그리스도가 사시는 겁니다”라는 고백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당신은 주님의 임재를 경험하고 사십니까? 예수님이 당신과 함께 계시는 것이 분명히 느껴지십니까? 그러면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될 것입니다. 주님의 임재를 경험하면서 옛날처럼 살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주님, 저는 아무것도 더 구할 게 없습니다. 이제 더 안주셔도 돼요. 다른 사람에게 신경 쓰세요. 저는 예수님 한 분이면 정말 충분해요.”
그렇게 고백하게 되나요? 만약에 그렇지 않으면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심장으로 살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당신은 예수를 믿고 성질을 뽑아 바쳤습니까? 왜 안 되지요? 예수님이 당신과 함께 계심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임재를 느끼지 못하고 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나와 함께 계시다는 사실이 진짜로 믿어지지 않으면 삶의 진정한 변화는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나와 함께 계신 것을 믿고 느끼게 되면 모든 게 바뀌게 됩니다.

주님을 바라보는 시간 자체가 내 삶에서 정말 기가 막 힐 정도로 적습니다. 아침에 일어날 때부터 밤에 잘 때까지 내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 것에는 계속 반응하지만, 내 안에 계신 주님에게는 반응하지 않고 살아갑니다. 그러니까 어떤 결과가 오게 됩니까? 주님이 믿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주님의 임재가 전혀 믿어지지 않고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주님, 제가 주님을 계속 바라보는 삶을 시작하겠습니다. 아침에 일어날 때부터 밤에 잘 때까지, 저는 예수님이 저와 함께 계신 것을 정말 믿습니다. 지금은 너무 막연하고 아무것도 귀에 들리지 않고 눈에 보이지도 않지만, 주님은 저를 여기까지 인도하신 분이신 것을 제가 압니다. 제가 이제부터 주님을 계속해서 바라보겠습니다. 사람을 만날 때든지 혼자 있을 때든지, 무슨 일을 할 때이든지 저는 계속 주님과 함께 있음을 믿고 주님을 바라보겠습니다. 제 안의 믿음의 역사를 이루시옵소서. 주님이 임재하심을 제가 믿어지게 해주시옵소서.”

 


박성수 회장 (이랜드 회장)


교회 다니는 사람이라면 모두 예수님이 재림하신다는 사실은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더 재미있는 사실은 열 명 모두가 졸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말세가 되면 성령님을 모시고 있다는 사람도 졸 수 있습니다.

 

내가 받은 재능을 통해, 내가 얼마나 하나님 앞에 고귀한 것을 내어놓느냐가 내 인생에서 추구해야 할 일이지, 상대적으로 적은 한 달란트를 받았다고 해서 다섯 달란트 받은 사람을 시기하거나, 반대로 다섯 달란트 받았다고 해서 한 달란트를 받은 사람을 무시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또한 그렇게 비교할 겨를도 없습니다. 받은 달란트를 남기는 싸움을 각자가 열심히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한 달란트를 땅에 묻어둔 사람은 하나님을 잘 몰랐다는 평가를 받고 쫓겨나고 맙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영적 생활만을 강조하지 않습니다.
달란트를 활용해서 받은 만큼 남기는 직업 생활이 영적 생활 못지않게 중요하다고 강조합니다.

 

우리는 직장과 직업을 새로운 시각으로 보아야 합니다. 직장은 단순히 나의 생계유지 수단만이 아닙니다. 직업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 사람들을 섬기는 도구입니다.

 

나를 위해서 일하지 않고 회사와 고객을 위해 일하는 사람이라면 승진도 잘될 수 있습니다.

 

저는 제게 주어진 이 일이 생계수단(job)이 아니라 소명(calling)이라고 생각합니다. 리더인 제가 그렇게 생각하는 한 이랜드 전체는 잘될 거라고 저는 믿습니다.

 

직업을 소명이라고 생각하고, 직업을 통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가치를 세상에 만들어 내놓음으로써 이익을 냈느냐, 저는 이것이 달란트 비유의 중요한 핵심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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