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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마의 산 -상 ㅣ 을유세계문학전집 1
토마스 만 지음, 홍성광 옮김 / 을유문화사 / 2011년 5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겨우 20세기 초의 작품을 읽는데 많은 낯섦이 있는 책이었다. 고전이란 것에 손대어 본 일이 오래되어서 인지는 모르나 말과 행동으로 그 사람의 신분을 구분하는 것이나 세계를 이해하는 극 중 인물들 방식이 특히 그러했다. 한 인물의 대사가 무척 길어서 마치 설교를 하는 듯한 것도 그러했고 화자의 태도나 문체는 약간의 인내심이 필요할 정도였다.
어쨌든 나는 꼼짝없이 2주간 병원 침대에 잡혀있어야 했고 ,그래서 고른 책인데 상황에 맞았다. 물론 나는 알프스의 경치나 눈보라, 시간을 정해 반복되는 식사와 사교, 산책은 없지만 의사의 처리를 기다리며 침대를 벗어나기를 간절히 기다리는 것은 비슷했다.
책을 읽으며 흥미롭게 본 것은 1차세계대전 전의 세계였다. 신분이 엄연히 존재했고, X선으로 신체를 투영해 보는 것은 받아들였지만 정신분석은 아직 낯설었고 비과학으로 떨어지기도 했다. 인간의 신체, 물질, 우주에 관한 새로운 과학이 보급되고 지식에 대한 열정이 존중 받지만 그것으로 자신의 세계를 바꾸는 인물은 없었다. 공화국과 세계국가, 개인의 자유가 논의되고 공산주의는 변방의 유령처럼 취급되거나 어이없게 프로테스탄트의 자본주의에 반대하는 가톨릭의 교의를 입고 등장하기도 했다.
<마의 산>은 알프스 고산지대에 있는 요양병원이 있는 산을 말한다. 주인공 한스는 엔지니어로 취업을 하기 전에 사촌 요하힘이 결핵으로 요양하고 있는 요양병원에 3주간을 방문하러 와서 7년간 있다가 1 차 세계대전이 발생하자 참전하여 죽음을 맞이하기까지 이야기이다. 한스는 여기서 자신에게 배움을 주는 3명을 만나고 고전적이라 할 수밖에 없는 사랑을 하고 모험을 한다. 이 요양병원은 부자들이 요양하고 치료하는 곳이라 충분한 양의 식사와 즐길 거리와 지켜야 하는 생활 규칙이 있다. 군인이 되고 싶어 하는 충직한 요하임 같은 이는 간절히 내려가고 싶어 하다가가 내려가서 군이되지만 병이 악화하여 돌아와서 죽는다. 한스가 사랑하는 소샤부인처럼 병으로 자유를 얻어 여행하듯이 머물다가 갔다가 왔다가 하는 사람들도 있고 어린나이에 이곳에서 죽는 이들도 있다.
이곳의 시간은 분절되어 지나지 않고 통째로 지나간다. 7년을 있게 되는 한스는 나중에는 시계가 고장 나지만 고치지도 않고 담배가 타는 것으로 시간을 구분할 정도다.
병으로 이곳에 갇혀있지만, 세상을 위한 열정을 포기하지 않은 이들은 논쟁한다. 정신과 육체, 선과 악, 정치체제에 대해 각을 세워 자신의 편을 더 만들기 위해 싸운다. 세상과 격리되어 따로 돌아가는 것 같은 이곳도 세계대전을 앞서 예고하듯이 논쟁을 넘어서 결투를 하고 전쟁이 나자 모든 것이 끝난다.
작자는 육체를 욕망과 죽음이 함께 결합하여 있는 것으로 보고 있는 듯하다. 한스의 엑스선 사진에 나온 과거의 상처와 현재의 상처를 과거 사랑했던 그와 현재 사랑하고 있는 그녀(소샤부인)에 대한 욕망으로 보고 있다. 한스는 그와 그녀를 동일 인물로 본다. 한스는 소년 시절 학교에서 만난 그를 사랑했고 그 표현은 연필을 빌린 것이었는데 그와 똑같은 눈을 가진 소샤부인을 문을 쾅 닫고 상류 사회의 예절을 잘 모른다고 해도 사랑하고 그녀에게 연필을 빌린다. 그리고 떠난 그녀를 한스는 산을 내려갈 수 있음에도 가지 않고 기다린다. 결국 사랑은 병이며 그 결과는 죽음이다. 한스는 병은 나았지만 열은 떨어지지 않는데 원장은 혈액에 있는 균 때문이라 진단한다. 그리고 균은 죽은 요하임에 대한 사랑에 대응한다. 그는 요하임이 원했던 전장에서 안식을 찾는 것처럼 겨울 나그네의 보리수를 부르며 죽음으로 달려간다.
연대를 보면 토마스만은 프루스트의 20년쯤 뒤의 사람이다. 프루스트가 음악 하나를 표현할 때 만연체로 수 페이지를 넘길 때 기겁을 했었는데 토마스만도 만만하지는 않다. 프루스트는 섬세하게 묘사하고 비약이 없었지만 토마스만은 비약이 있고 높은 산을 급히 오르는 것처럼 호흡도 급하다.
나는 매일 의사의 선언을 기다린다. 여기에서 해방되면 괜찮은 삶이 있는 것처럼. 어제는 러시아 정찰기가 영공을 침범해서 우리 전투기가 출동을 했다고 하고 일본은 또 독도는 자기 땅이라고 했다. 나는 여전히 하던 일을 하고, 책을 읽고 가끔 글을 쓰고, 산책도 하고 미드도 볼 것이다. 나에게 격렬한 열병이란 없겠지만 이 모든 것을 멈추게 하는 세계대전은 없기를 바란다. 삶은 계속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