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뿌리 한국사 - 고조선부터 일제강점기까지
고성윤 지음 / 나는나다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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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시절 고등학교 2학년 담임선생님 과목이 국사였다.

친절한 담임선생님과는 별개로  

나에게 국사는 친해질 수 없는 교과였다.

너무나 많은 분량, 낯선 시대상황과 문화들

앞뒤 전후 좌우 연결 없이 뜬금없는 맥락들

이 모든것은 그저 영어 단어처럼 외워야 하는 것들이었다.


학력고사를 위해 열심히 공부했고

나름 좋은 점수를 얻었음에도 불구하고

고등학교 졸업이후 역사는 나의 관심사에서 멀어져갔다.


그 이후 살면서 

줄줄 외워야 하는 역사가 아니라서 그랬을까? 

가끔씩 손이 가는 역사책을 발견하게 되었는데

그 때마다 책 한권을 밤새 읽어낼 정도로 푹 빠져서 읽곤 했었다.


그 중 하나가  바로 [풀뿌리 한국사]이다.



풀뿌리 한국사 / 고성윤



시험준비를 하기 위해 사건 중심으로 역사를 바라보던 때가 있었다.

그때는 용어 하나하나가 그저 영어 단어와 다를바 없는 암기의 대상일뿐

그것은 나에게 감흥을 주지 못했다.



임금의 무능함.

하지만 백성들의 단합과 이순신 장군을 포함 몇몇 장수들, 의병들의 활약으로

일본을 물리친것에 중점을 두고 외웠었던 임진왜란 역시

오랜 기간의 전쟁이었지만 우리나라 국민들이 일본을 몰아낸 전쟁이라고 외웠는데


이 전쟁으로 우리나라 인구의 절반이 사망을 했다고 하니.....


임진왜란은 단순히 '1592년 임진년에 왜구가 쳐들어와 일어난 전쟁'이 아니라

그 안에서 고통받았을 우리 민족의 뼈아픈 '흔적'이었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되었었다.



[풀뿌리 한국사]는

역사는 그 순간순간만큼은 살아 숨쉬고 있는 현재라는 사실을

전반에 걸쳐 이야기 하고 있다.




첫장을 넘기니 고조선이 가장 먼저 나온다.

맨 앞에 고조선이 나온다는 사실만으로 벌써 친근감을 느끼는 나... ㅎㅎ


사실 고조선은 후대에 붙인 이름이고

우리나라 최초의 국가는 '조선'이다.


고려시대 승려 일연이 쓴 삼국유사에 따르면

단군왕검이 평양성에 도읍을 정해 '조선'이라고 이름을 붙였다고 하는데

이것을 고조선이라 부르는 이유는 많은 사람이 알고 있듯이

1392년 이성계가 세운 조선이라는 나라와 구분하기 위해서이다.


왜 우리나라 최초의 국가가 조선인지 의심해 본적이 있었을까?

무슨 근거로 조선을 최초의 청동기문명을 이끈 국가라는 생각을 했었을까?


[풀부리 한국사]에 따르면

일연이 삼국유사에서 단군을 언급하면서 [고기], [위서]의

옛 기록을 보고 적었다고 하는데

이런 책들이 지금은 전해지지 않다보니 어려움이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중국사서의 고조선에 대한 기록을 보면

기자가 조선으로 망명한 기록이 있어

기원전 11세기~12세기 이전부터 국가가 존재했다는 사실을 추정해볼 수 있고,

만주, 한번도 일대의 문화가

황허와는 별개의 문화가 발달되어 있다고 알려져있어

독자적인 청동기 문명 조선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고 한다.


역사책, 선사시대 다음으로 접할 수 있어 정말 많이 익숙하다고 생각한 '고조선'이었는데

이렇게 [풀뿌리 한국사]로 만나는 '조선'은 참 새롭고 흥미로웠다.


 

호동왕자와 낙랑공주로 유명한 일화는

두고두고 회자되는 이야기이다.


호동왕자와 낙랑공주는 어느 나라의 왕자와 공주였던가,

이것이 역사적 사실인가 아니면 설화인가 등등

참 궁금한 점이 많았던 부분이었는데

[풀부리 한국사]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부분을 명쾌하게 짚어 주었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호동왕자는 고구려 대무신왕의 아들이고

낙랑공주는 낙랑국 '왕' 인 최리의 딸이라고 한다.

고구려 대무신왕이 낙랑국을 멸할 당시의 이야기가 바로

호동왕자와 낙랑공주의 이야기인데

37년에 망한 '낭랑국'은 44년에 재견되어 300년에 신라에 투항했다고 한다.


'낭랑국'과 '낭랑군' 얼핏 비슷해 보이는 두 나라(?)의 이야기를 짚어 보는것도

논란이 되고 있는 내용을 살펴 보는것도 꾀나 흥미로운 일이었다.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는 강화도

일년에 한번은 꼭 가게 되는 그곳에는

대몽항쟁의 흔적이 정말 많이 남아 있다.


해안선을 따라 쭈욱 이동하다 보면

OO진 하는 것들이 쭈욱 이어져 있는 끊임 없이 이어져 있는가 하면

몽골의 2차 침입에 대비해 강화도로 천도하면서 지어졌던 강화 고려궁지도 볼 수 있다.


그당시 엄청난 위력을 자랑하던 몽골에 30년 동안이나 대항했다니

내 나이와 견주어 볼 때 30년 이라는 숫자는

하루하루 버티기 버거운 힘든 고난의 연속이었을것이다. 


이런 고난의 시간들이 모였기에

고려는 고려 국왕이 통치하는 나라로 남아 있을 수 있었을 것이다.

비록, 수치스러운 내정간섭과 경제적 수탈에 직면했을지라도... 


연산군의 이야기는 두고두고 드라마나 영화에 자주 등장할 만큼

상상력을 자극하는 흥미로운 소재임에 틀림없다.


연산군을 폭군으로 만들게 된 계기 <조의제문>!

김종직이 세조의 정권 찬탈을 비판하며 쓴 <조의제문>이

연산군의 폭정과 무슨 연관이 있는지

이 과정에서 유자광의 역할은 무엇이며 유자광은 누구인지

나아가 유자광에게 모함을 당해 죽음을 맞이한 젊은 장수 남이와

우리 식구가 일년에 한번은 간다는 남이섬

남이섬과 관련된 오해와 친일의 흔적들을 하나하나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물고

상상력에 상상력이 더해져 흥미로운 이야기가 펼쳐진다.    


광명에 살면서 오리 이원익선생을 모르는 학생은 거의 없을 것이다.

초등학교 3학년이 되면 '우리고장 답사'를 하게 되는데

이때 꼭 들르는 곳이 바로 오리 이원익선생의 생가이기 때문이다.


영의정까지 지냈던 인물 치고 생가가 참 작고 아담한 곳으로

오리 이원익 선생의 청렴함과 강직함이 가득 담겨 있는 곳이라

광명사람이라면 참으로 자랑스럽게 여기는 곳이다.


나 역시 광명시민이라서 그럴까?

이원익 선생의 이야기가 나오니 좀더 자세히 보게 되고

관련 이야기들도 관심있게 보게 되는것 같다.


이 부분은 아이와 함께 읽어도 전혀 어려울 것이 없을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우리 역사 다음역은?


역사에는 단절이 없다.

어떤 일이든 원인과 결과가 있기 마련이며,

이를 찾아내는 노력이야말로 살아 있는 역사 공부의 첫걸음이다.



역사는 과거와 현재와 끊임없는 대화라고 했던가?

미래를 향해 빠른 속도로 달려가고자 노력하는 것이 요즘이라지만

과거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말처럼

과거와의 대화는 꼭 필요한 부분이겠다.


그것이 자랑스러운 역사이든,

아니면 부끄럽거나 억울한면이 없지 않은 역사이든

그것은 현재를 살아가고 미래를 살아야 할 우리들의 몫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우리가 우리의 길을 잘 찾기 위해서는

걸어온 길과 가야할 길을 바로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손에 잡은 순간 부터 술술 읽혔던 [풀뿌리 한국사]!

우리가 걸어왔던 길과 우리가 앞으로 걸어가야 할 길에 대해

바른 이정표가 되어 줄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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