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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센디어리스
권오경 지음, 김지현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23년 1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내가 받아 온 최고상들은 내가 실패한 지점들을 가리키는 표시였죠. 리비흐를 칠 때는 덜 실패했어요. 그의 에튀드는 내게 너무나 많은 것을 요구해서 때로는 '내'가 있다는 것조차 잊어버렸어요. 그때 배웠어야 했어요. 연주라는 것은 자아가 없는 곳에서 탄생해야 한다는 것을, 내가 리비흐의 곡을 전달하는 수단으로서만, 살아 있는 도관으로만 존재해야 한다는 것을.
녹스허스트의 한 건물 옥상. 카운트 다운, 3, 2, 1. 건물이 무너졌다. 옥상에서 지켜보는 이들은 환희에 차있다. 사람들이 죽었다.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했다.
광신도, 테러리스트... 내가 평생이 지나도 이해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지 않은 단어들. 이생에서 아무리 나쁜 죄를 지은 사람이어도 회개하고 믿으면 천국갈 수 있다는, 그저 믿음만이 중요한 것이라고 환희에 찬 눈으로 전도의 기쁨을 누리는 사람들이 있다. 나는 그들을 보며 생각한다. 어떻게, 어떻게 각자의 인생을 그렇게 무의미하게 만들 수 있지.
이야기의 중심이 되는 피비는 부유한 한인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나 피아노 영재로 자랐다. 완벽한 연주는 자아가 없이 도구로서만 그 곡을 표현해내야 한다는 피비의 깨달음의 대목은 어쩐지 종교의 그것과 닮아있다. 오로지 하나님의 일꾼으로서만 존재해야 한다는 그 믿음과.
피비는 부유하고 있었다. 윌을 만나기 전까지. 자신의 슬픔을 감당할 수 없어 다른 사람의 슬픔으로 그 속을 채웠던 지난 날과 달리 윌을 통해 땅에 매어진다. 붙들려있는 그 느낌이 싫지 않아, 오히려 삶에 대한 안정감을 얻게 된다.
그리고 목사인 아빠의 친구라는 존 릴이 피비에게 다가온다.
피비는 존 릴과 만나 '제자'라는 종교모임에 들어 삶의 기쁨을 구한다. 한때는 열렬한 신도였지만 믿음을 잃어 종교를 등진 윌은 이 종교모임을 경계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종교에서 구원을 얻는 피비를 질투한다.
사랑과 종교는 어떻게 닮아있을까
그리고 어떻게 삶을 구원하는 동시에 파멸시킬 수 있을까?
책 <인센디어리스>는 피비, 윌, 존 릴의 시점을 끊임없이 오가며 테러를 일으킨 광신도 중 한 명인 피비라는 인물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에게 그들을 내던진다. 아니 우리를 그들 사이로 내던진다. 단편적인 사실로 한 사람 한 명조차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는 무력감과 희망 사이의 덫에 빠트리는 것이다.
페이지 터너로 책장이 휙휙 넘어가면서 결국 나는 그들과 크게 다르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이 불편함이 어쩌면 작가가 우리에게 남기고 싶었던 자국일지도 모른다. 다시 한 번 천천히 읽으며 내가 놓친 단서들을 찾고 싶다. 어떻게든 좇아보고 싶다.
*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지만 솔직한 감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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