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 - 개정판
알랭 드 보통 지음, 정영목 옮김 / 은행나무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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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위'. 알랭 드 보통은 '지위'를 정의하면서 이 책을 시작한다. 높은 지위를 통해 얻어지는 놀라운 결과물들... 작가는 '지위'라는 핵심 키워드를 전제로 '불안'에 대해 조목조목 이야기를 펼친다.

우리는 불안의 세대를 살고 있다. '잘 산다.'라는 말에 돈과 권력의 의미가 절대적인 부분을 차지하게 된 세대에서 우리들이 불안한 원인은 무엇인가?

대기업 회장이나 고위 관리가 되지 못할까봐 불안한 것이 아니다. 억만장자가 되지 못할까봐 불안한 것도 아니다. 그것은 그저 평범하다고 여겨지는 삶조차 가지지 못할 것이라는 마음에서 비롯된다. 내게 너무 먼 세상이 아닌, 내 주변 가까이 있는 삶들과 비교하는 가운데 생겨나는 것들이다.

가장 가깝게는 부모만큼 살 수 없을까봐, 가까운 친구와 다른 삶을 살게 될지도 모를까봐...

적어도 그들과 동등한 '지위'는 가져야 한다는 압박감. '지위'를 통해 얻어지는 '명예', '권력', '관심', '물질' 등의 다양한 부속물들에 대한 동경심.

이는 개인의 문제라기보다 사회구조적 문제에서 비롯된다고 여겨진다. 그러나 정작 사회는 개인의 불안이 지속되기를 바란다. 경제도 정치도...

개인의 불안을 이용하여 회사는 물건을 팔고, 정치는 정치가와 정당의 정치생명을 연장한다.

불안이라는 것에서 무조건 벗어나려고만 하는 것은 방법이 아니다. 우리는 우리의 불안의 원인을 직면하고, 불안의 실체를 파악하고, 정말 불안할 만한 것인지에 대해 이성적으로 판단해 볼 필요가 있다.

또한 세상을 바라보는 개인의 시선에 대해서도 생각해보아야 한다. '잘 산다.'라는 말에서 돈과 권력의 의미를 없애고 바라본 후, 그 말의 정의를 내려야 한다.

 

"죽마를 떼어내고 그의 키를 재보라. 부와 장식을 벗기고 벌거벗은 몸을 보라... 그에게는 어떤 종류의 영혼이 있는가? 그의 영혼은 아름다운가? 그 영혼은 능력이 있고, 행복하게 갖출 것을 다 갖추고 있는가? 그 영혼의 부는 자신의 것인가 아니면 빌려온 것인가? 운은 관계가 없는가?.... 이것이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이다. 이것이 우리 인간들 사이의 엄청난 거리를 판단하는 기준이 되어야 한다.(p.238-239)

 

작가는 불안의 해법을 다양한 분야에서 찾아보라고 권한다. 그러나 최고의 해법은 자신 안에 있다고 생각한다. 『개인주의자 선언』(문유석)에서의 한 문장이 떠오른다.

 

'남부럽지 않게' 살고 싶다는 집착때문에 인생을 낭비하는 이들을 접할 때마다 드는 생각이 있다. 그냥 남을 안 부러워하면 안 되나, 남들로부터 자유로워지면 안 되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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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해리 세트 - 전2권
공지영 지음 / 해냄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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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는 (hell)’이다.

해리는 그녀의 삶으로부터 벗어나기를 원했으나, 아무도 그녀의 절실함에 관심이 없었다. 해리는 그녀의 삶 속에 타인들을 가두기 시작했다. 철저하게, 그리고 잔인하게. 그녀를 추종하는 사람들이나 그녀에게 희생당한 사람들 모두 무간지옥 속을 헤매는 존재다. 안개가 삼켜버린 무진, 그곳은 해리의 (hell)’이다. 그녀조차도 삼켜버린 지옥.

인간은 상처주고 상처받는 존재다. 그러나 용서하고 용서받을 수 있는 존재라고 생각한다. 상처받기 전으로 완전히 돌아갈 수는 없지만, 이전의 자신과는 다르겠지만, 그 다름이 성장을 이룰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지옥에는 상처 준 사람들, 용서받지 못한 사람들이 존재하는 곳. 그래서 그곳엔 성장이 없다. ‘파멸만 있다.

글을 읽으며 가장 기억에 남는 문장

 

사람은 안 변하는 것 같아요. 만일 어떤 친구가 변했다고 느껴진다면 그건 우리가 어려서 사람을 잘못 본 걸 거예요.”(해리2. p. 75)

 

잘못 보다’, 정확히 알지 못하다. 내 마음대로 판단하고 내 마음대로 믿다. 그래서 우린 관계에서 상처받는지 모른다. 잘못 보았으므로. 내가 보고 싶은 것만 보았으므로. 그러나 결국은 말한다. 그건 내 탓이 아니라고. 상대가 모든 걸 보여주지 않았다고.

작가는 가장 순결해야 할 집단의 탐욕을 다루면서도 끝까지 작은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 안개 속에서도 해는 빛나고 있다. 눈 하나를 잃고도 절망하기보다 눈 하나가 남은 것에 행복해하는 미카엘 신부

 

결국은요, 자매님. 이 세상에 우리가 남기고 갈 것은 우리가 사랑했다는 사실이에요. 그것이 좋은 결과를 맺었든 그렇지 않았든……. 그것도 아니면 삶은 너무 비루하고, 우리는 그냥고급 먹이를 찾는 짐승에 가깝겠죠. 그러면 너무 비참하잖아요.”(해리2. p.267-268)

 

사랑했다는 사실예수의 첫 제자였지만 성경 속에서 사라진 안드레아도, 인간에 대한 사랑 때문에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예수도 그 사랑 때문에 괴로웠을 것이다. 그러나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사라져간 안드레아도, 모든 것을 이루었다며 숨을 거둔 예수도 사랑했다는 사실을 남겼다.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했다.

단숨에 1, 2권을 모두 읽었다. 공지영의 소설 중 가장 빠르게 읽힌 책이다. 한 줌의 허무함이 없잖아 있었다. 그럼에도 무진으로 떠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무진의 안개 속을 걷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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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여 마땅한 사람들
피터 스완슨 지음, 노진선 옮김 / 푸른숲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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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엔 죽여 마땅하다고 여겨지는 사람들이 많다. 그 사람들이 죽여 마땅하다고 판단하는 기준을 세운 사람은? 나. 나의 가치관과 나의 삶의 방식을 기준으로 나는 그들을 죽여 마땅하다고 판단한다. 책 속에서 죽어간 사람들이 죽여 마땅하다고 판단한 기준을 세운 사람은? 릴리. 그녀에게 위해를 가한 사람들은 그녀 뿐 아니라 다른 누구에게도 그런 짓을 저질렀을 것이고, 저지를 수 있다. 잠재적 위험요소... 자신의 욕구를 채우기 위해 다른 사람의 삶을 망가뜨리는 존재.

죽여 마땅한 사람들이라고 해서 죽여도 될까?

법은 멀리 있고, 죽여 마땅한 사람들은 곁에 있다. 법은 권위적인 태도로 복잡한 절차와 단계를 거쳐 조심스럽게 다가오라고 하지만, 죽여 마땅한 사람들은 부지불식 간에 내 삶으로 쳐들어와 온 힘을 다해 지켜온 것들을 한 번에 파괴시켜버린다.

영화 '타임 투 킬'이 떠오른다.

백인 건달들에게 무참히 강간당한  어린 딸의 아버지.

백인 건달들은 죽여 마땅했다. 건달들은 의기양양했다. 법도 그들편이다. 그들의 말만 들었다. 그날 가족들의 삶은 딸과 함께 강간당했다. 단지 그들이 흑인이라는 이유로.... 아버지의 선택은.... 직접 그들을 죽이는 것이었다. 피해자의 아버지에게 살인범이 된 흑인 남자....

그러나... 죽여 마땅한 사람들을 죽여야 하는가란 질문에 도달한다. 그들이 죽여 마땅하다고 판단하는 기준을 세우고, '죽여마땅하다 -땅땅땅' 판결을 내리는 것이 나 자신이라면, 세상 모든 사람이 그렇게 생각하고 이를 실행에 옮긴다면? 그건.... 지옥이다....

빠르게 읽으면서도 긴장감이 있었고, 흥미롭게 읽으면서도 사람 사는 관계를 진지하게 생각할 수 있었다. 다소 허술한 살인 과정에서 힘이 빠지긴 하지만, 한 편의 드라마를 본다고 생각한다면 읽기 시작해서 끝까지 손을 놓을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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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여 마땅한 사람들
피터 스완슨 지음, 노진선 옮김 / 푸른숲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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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리 읽히고 궁금하고 재미있다. 단, 짜임새 있고 치밀한 범죄 스릴러는 기대하지 말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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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딴방 - 신경숙 장편소설 문학동네 한국문학 전집 9
신경숙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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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모두에겐 각자의 외딴방이 있다. 그 누구에게도 털어 놓을 수 없는 기억을 봉인시켜 놓은 곳. ‘숨김이 아닌 봉인’. 그 누구에게도 들키고 싶지 않은, 털어 놓고 싶지 않은 그것들은 살아가는 그 어느 순간 생각지도 못한 찰나에 찾아와 삶을 흔들어 놓고 다시 그 외딴방으로 스며든다. 누구의 외딴방에는 좋은 것들이 있을 수도 있다. ? 그러면 외딴방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

 

, 우리들하고 다른 삶을 사는 것 같더라.”( p.37)

 

다른 삶. 다르다. 무엇이? 다르다? 신문에 나고 유명해지면 다른 삶인가? ‘성공이라는 글자로 표현되는 삶이면 다른 것인가? 다른 삶에 대한 동경과 부러움, 그리고 질투. 사는 동안 쉽게 떨쳐버릴 수 없는 감정들이다.

 

오랜 후, 열입곱의 나와 친해진 미서가 헤겔에 대해서 말한다. 이 책을 읽고 있을 때만 내가 너희들하고 다른 것 같아. 나는 너희들이 싫어.(p. 192)

 

글이 아닌 글자를 읽으면서도 다른 삶을 살고 싶었던 미서. 벗어나고 싶은 세상에서 살고 싶지 않은 삶을 살아내야 하는 사람들. 그리고 여전히 다른 삶으로 건너가지 못하는 사람들이 그곳에 있었다.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의 이야기를 내가 살아온 이야기와 함께 읽었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산업체 고등학교에 입학한 아이들이 졸업도 하기 전 회사에서 제공한 버스를 타고 떠나던 날의 기억. 제법 성적이 좋아 인문계 고등학교 입학시험에 합격하고도 동생들을 위해 산업체에 지원했다는 친구의 전화를 받고는 뭐라 말 한 마디를 제대로 해 주지도 못하고, 배웅도 해 주지 못한 나의 이야기가 들려왔다.

모범생이던 오라비가 대학에 간 후로 정치이야기로 언성을 높이고, 데모 대열에 들어 이리저리 도망 다니던 날들의 이야기가 들려왔다.

내가 살던 동네 사람들의 이야기가 들려왔다. 그렇게 의 이야기는 나의 이야기와 함께였다.

희재 언니의 죽음, 그녀의 방 자물쇠를 잠근 ’. 그러나 에게 책임이 없다. ‘에게 가혹했던 것은 그녀다. 자신의 편안한, 그 누구에게도 간섭받지 않을 완전한 죽음을 위해 동의하지 않은 공범자로 그녀가 를 선택했을 뿐이다. 그러나 그것이 의 외딴방을 만들었다. 그러나 그녀의 선택이 로 하여금 다른 삶을 살게 했다. 그러나 다른 삶에서 행복하지 않았다. 삶의 어느 찰나 외딴방으로부터 밀려오는 그녀에 대한 기억이 삶을 흔들어 놓았으므로.

오래도록 의 외딴방에 봉인되었던 희재 언니 방 자물쇠가 열렸다. 마주하기 힘들지만 마주해야 하는 이야기. 제대로 대면해야 비로소 입 밖으로 낼 수 있고, 견딜 수 있게 된다.

 

, 망설이지 말고 날아가라, 저 숲속으로. 눈앞을 가로막는 능선을 넘어서 가라. 아득한 밤하늘 아래 별을 향해 높고 아름다이 잠들어라.(p.493)

잘가…… 나를 아껴주고 보살펴준 일 소중히 간직할게.(p.494)

 

이제 되었다. 희재 언니가 외딴방에서 구더기와 함께 누워있던 날이 찰나를 스쳐도 희재 언니와 함께 한 옥상의 포근한 햇살과 희재 언니의 뜨끈한 국수 가락이 의 삶에 더 가까이 다가와 어루만져 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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