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악보 한국디카시 대표시선 22
김철순 지음 / 작가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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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이 머무는 곳, 사진으로 남고, 사진이 찍힌 곳, 마음으로 들어 와 글로 쓰여진 시집.
그리고 그 모든 곳에 시인의 그림자가 느껴집니다.

선명한 사진 속, 아련한 마음이 몽글몽글 피어납니다.
하루하루 조금씩 야금야금 나눠 먹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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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
스펜서 존슨 지음, 이영진 옮김 / 진명출판사 / 200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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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우리는 간혹 책 한 권을 통해 자신의 미래를 그려보는 사람들을 보게 된다. 약간의 과장이어도 이 책이 주는 의미는 그에 못지 않을 것이다.21세기를 흔히 우리는 정보화의 시대라고 한다. 하루에도 수 없이 쏟아지는 정보들 가운데 어떤 것을 취해야 하고 어떤 것을 버려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할 때가 있다. 그러다가 그마저 귀찮고 싫증나면 쉽게 그 모든 걸 외면해 버리기도 한다. 여기까지가 지금 나의 모습이라면 나는 이미 그 모든 정보에 뒤떨어져 있음을 인지해야 한다 .이미 나는 그 많은 변화의 중심에서 밀려나 변두리의 어디쯤에서 서성거리고 있음을 자각해야 한다. 그러나 포기는 아직 금물. 이 책에는 당연히 그러하리라는 작가의 밉지 않는 의도 속에 독자들을 실망시키지 않고 다시 일으켜 세워준다. 적어도, 지금이라도 그것을 깨달았다면 그리하여 행동에 옮긴다면, 늦었다고 생각했을 때가 가장 빠르다는 말처럼 우리에게 아직 늦지 않았음을 알려주고 격려해 준다.

이 책이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 던져주는 화두는 '변화'이다. 발간 당시 세계 언론의 끝없는 찬사와 국내 대기업들의 앞다툰 단체구매로 많은 독자층에 지대한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 책의 두께만큼이나 가볍게 읽으면 한없이 가벼운 글이지만 우리 인생의 무게만큼 깊은 성찰을 가지면 그 만큼의 깊이를 느낄 수 있는 책이다.여기 두 마리의 생쥐와 두 명의 꼬마인간이 있다. 그들은 미로 속에서 치즈가 있는 방을 찾아 치즈를 즐기는 나날을 보낸다. 그러던 어느 날 그들이 즐기던 치즈가 사라진다. 여기서 그들은 행동을 달리 한다. 가지고 있는 치즈가 언젠가는 사라질 거라고 예상하고 준비한 두 마리의 생쥐는 주저 없이 새로운 치즈를 찾아 길을 떠난다. 그러나 남아있는 두 명의 꼬마인간은 '누가 내 치즈를 옮겼어'라고 불평을 하며 그 새로운 사태에 대응할 그 어떤 것도 생각지 않는다. 그리고 문득, 뒤늦게 상황을 단순하고 명료하게 본 한 꼬마인간은 새 치즈를 찾아 나선다. 한번도 가지 않은 미로 속으로 첫 발을 내딛을 때 본능적인 두려움과 공포에 몸을 떨지만 이내 그 미로 속의 여정을 새로운 치즈에 대한 열망으로 극복하게 된다. 그리하여 이윽고 꼬마인간은 보다 더 신선하고 맛있는 치즈를 찾게 된다. 그리고 그를 맞은 것은 한발 먼저 떠난 두 마리의 생쥐였다.

이 글에서 치즈가 상징하는 것은 우리 인간이 얻고자 하는 무한한 희망이다. 그것은 좋은 가정, 훌륭한 직업, 넉넉한 재물, 건강한 육체 등을 말할 수 있으리라. 그리고 미로는 내가 속한 가정, 사회, 국가를 의미 할 것이다.누구나 아는 내용이라고 치부해 버리기에는 너무 많은 오류를 범하는 우리에게 따끔하게 다가오는 그 무엇이 있다사람들은 누구에게나 변하지 않았으면 하고 안주하고픈 나만의 치즈가 있다. 그러나 그것은 마음뿐, 그 치즈는 하루하루 조금씩 없어지거나 남아있는 건 이미 먹을 수 없는 썩은 치즈가 된다. 이미 변화는 시작된 것이다.

인간은 누구에게나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 설혹, 부득이 길을 선택하는 상황이 되더라도 이미 가 보았던 길, 눈에 익숙한 길을 가고자 할 것이다. 그러나 그 길은 이미 길이 아니라고 이 책은 말한다. 그리하여 더 이상 갈 수 없는 길에 연연하지 말고 내 등뒤에 있는 내가 외면하고 있는 길에 눈길을 주라고 말한다. 변화는 누구에게나 어디에서나 일어난다. 준비되지 못한 사람은 이미 준비된 사람에게 질 수밖에 없다. 자신의 주변을 간단하고 융통성 있게 준비할 것이며, 사태를 지나치게 분석, 두려움에 떨지 말 것이며, 작은 변화에 주의를 기울여 큰 변화에 신속히 대처하기를 이 책은 말한다.모름지기 '영원히'란 없다. 영원히 썩지 않는 치즈도,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 치즈도 없는 것이다. 다만 그 달콤한 치즈를 향해 우리가 움직여야 한다. 그것이 우리의 인생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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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라마조프가 형제 -하 혜원세계문학 46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 혜원출판사 / 199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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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을 읽는다는 것은 우선 그 책과의 만남 자체가 쉽지가 않다. 책의 두께에서 오는 중압감과 긴 호흡을 필요로 하는 문장은 여간 고역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속에 빠져들게 하는 것은 인류가 쌓아 온 많은 꿈의 파노라마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시대를 초월한 감동이 있기 때문이다. 러시아 문학은 특히 그 땅덩어리의 넓이만큼이나 양과 질적으로 방대함을 자랑한다.

19세기를 접어들면서 러시아는 밖으로는 프랑스 혁명의 자유평등사상의 여파로 많은 인텔리겐차들이 개혁을 부르짖었고 안으로는 러시아의 근대화를 막고 있는 두 가지 제도 즉, 농노제와 관료제의 병폐가 날로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다. 이러한 사회상을 톨스토이는 개방적이고 역동적으로 민중들에게 호소하고 설득하는 글을 썼는가 하면 도스토예프스키는 보다 더 개인적이고 인간 본질에 대한 사색으로 글을 쓴 작가였다. 특히 그의 많은 작품 중 인생의 말로에 쓴 카라마조프가 형제는 그의 사상과 철학이 총체적으로 녹아든 작품이라 할 것이다.

우선 이야기를 진행시키는 인물을 살펴보자. 물욕과 음탕의 상징인 아버지 표도르와 러시아 적인 야성적 정열과 순수함을 지닌 장남 드미트리, 무신론자에다 허무주의적 지식인 차남 이반, 신의 존재를 의심하지 않으며 그 속에서 사랑을 실천하고자 하는 3남 알료사, 거기에 아버지와 백치의 여자 거지에게서 태어난 막내아들 스메르자코프가 바로 그들이다. 그리고 그들 모두는 각각의 객체로 동등한 자격을 갖고 서로 다른 사상을 끝없는 대화와 행동으로 줄거리를 엮어 나간다. 사건이 중심이 아니고 대화가 중요시 된다는 것은 그러한 대화나 행동을 가능케 한 행위가 이루어지는 세계 즉, 내면의 세계에 촛점을 맞춘 작가의 시선에 있으리라. 그러므로 이 작품에서는 사건의 중요성 보다 각 인물들이 나누는 대화를 글읽기에 무게중심을 두어야할 것이다.

소설의 외형적 줄거리의 핵심은 친부 살해에 있다. 큰아들 드미트리는 아버지 표도르와 그루센카라는 고급 창녀를 놓고 서로 차지하려고 다툼을 벌이다 아버지를 살해하여 재판에 회부, 유죄선고를 받는다. 그러나 정작 범인은 간질병의 특성을 알리바이로 이용한 스메르자코프의 범행이었다. 그러나 그는 평소에 존경하는 이반의 사상적 감화를 받고 그 사상적 의미의 실천적 행위에 지나지 않는다고 역설한다. 정작 소설의 주된 주제는 신이 없다면 모든 것이 허용된다라는 이반의 철학과 신의 믿음 아래서 인간에게 고결한 사랑을 실천하는 알료사를 중심으로 하는 사상적 대립에 있다.작가의 공감은 러시아의 미래를 상징하는 알료사의 깨끗한 영혼에 기울지만 신이 창조한 세계의 불합리와 모순에 관하여 역설하고 이 모순이 있는 한 미래에 다가올 지상의 천국도 인정할 수 없다는 이반의 반론이 훨씬 박력 있게 다가온다.

도스토예프스키는 이 작품을 통해 우리에게 어떠한 결정을 내리라고 설명하지 않는다. 오히려 신의 존재 유무와 선과 악에 대한 끝없는 성찰과 고민을 요구 해 온다. 섣부른 결론이 갖는 인간의 행동이 얼마나 편협함과 어리석음을 갖는지 작품의 많은 인물들을 통해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오늘날 많은 인간들은 선을 추구하면서도 악의 유혹을 받으며, 신을 믿으면서도 존재의 의혹을 갖고, 신을 부정하면서도 자기도 모르게 신의 이름을 부르며 의지하는 나약함을 갖고 있다. 어쩌면 신이 만들어낸 이 세상이 불합리한 것이 아니고 그 속에 사는 인간의 불완전함이 태초의 완전한 세상을 병들게 하는 것이 아닐까? 신이 인간에게 내려준 '자유의지'를 방종과 타락으로 실천하지 못한 채 현실의 고통을 신에게 돌리는 건 아닌지. 그러나 여기서 도스토예프스키는 이 현실의 고통을 기꺼이 안아야 한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이 현실의 고통이 바로 우리 인간의 실존의 이유이기 때문이다. 인간에게 부여된 '자유의지'에 대한 신의 대가이기 때문이다.결국 이러한 철학적 사고의 문제는 신에게 있지 않고 인간 내면에 도사리고 있는 또 다른 자아와의 고통 있는 싸움이 될 것이다. 그것이 선이든, 악이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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