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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 더 메가처치 - 2026 일본 서점대상 1위
아사이 료 지음, 송태욱 옮김 / 은행나무 / 2026년 7월
평점 :
*가제본 서평이기 때문에 전체 내용에 대한 후기가 아닙니다.
#인더메가처치
#아사이료
#서점대상
#수상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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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사이 료의 신간 <인 더 메가처치>의 가제본을 받아 보았다.
17개의 목차 중 5번째까지 실려 있다.
아사이 료의 전작은 은행나무에서 출간된 <누구>를 두 번 읽었다. 출간 당시 읽었었는데 그때 나 역시 작품의 배경이 되는 취업준비생 시절이었어서 불편한 마음으로 공감하며 읽었던 기억이 난다. 그로부터 13년이 지나고, <생식기>의 붐이 식지 않은 때 다시 한번 <누구>를 읽었다.
<누구>에서부터 <인 더 메가처치>까지 트위터라는 SNS의 감각이 이어지고 있다. 두 작품만 비교하자면 친구 관계에서 가족 관계, 회사 동료까지 관계의 범위가 좀더 넓어졌다.
동시대 작가로서 비슷한 나이대이자 트위터 유저인 덕분에 그가 쓰는 이야기에는 금방 적응이 된다. 게다가 덕질 이야기라니! 나 포함 여러 사람들이 사찰당한 게 아닌가 싶을 정도… (네 그게 바로 작가가 하는 일입니다)
덕질의 시대. 아이돌/배우 팬덤, 유투버와 버츄버, 만화/게임 캐릭터는 물론이고 길에서 주워온 돌마저 덕질의 대상이 된 시대다.
(흐음.. 🙄그렇지만 옛날에도 할머니는 작은 수석을 모으셨는걸..)
<인 더 메가처치>에는 이 덕질의 시대에 팬덤 산업을 ‘설계하는 자’ 요시히코(40대 남성, 엔터사 직원), 덕질엔 관심 없었지만 우연한 계기로 덕후가 되는 ‘구원받는 자’ 스미카(20대 여성, 요시히코의 딸. 부모가 이혼한 후 엄마랑 산다), 아직 내막은 모르지만 한 배우의 덕후로 살다가 ‘무너진 자’ 아야코(30대 여성. 독신 직장인), 이 세 인물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굴러간다.
묘하게도 내 입장에서는 세 사람 모두 한발씩 걸쳐 이해하며 읽게 됐다. 과거의 나를 생각하면, 20대 인물들 중에서도 스미카에게 개인적으로 공감이 갔고, 현재의 나라면 30대 여성인 아야코에게(아직 제일 모르겠는 인물이다), 그리고 곧 다가올 미래일 수도 있는 요시히코의 감정에 모두 어느 정도 이입이 되고 있다.
스미카는 가챠를 모으고 서바이벌 프로그램 출신 아이돌을 응원하는 친구 유리에게 이렇게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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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어떤 부분에 그렇게 빠져들게 되는 건지 한번 물어보고 싶긴 했어.”
“음, 뭐랄까.”
비주얼이 좋아서. 최애는 마음의 오아시스이며 생활의 힐링이니까. 누군가를 응원하는 기쁨 때문에—덕질이 이러쿵저러쿵하던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자주 들었던 말들이 내 머릿속을 쌩쌩 날아다닌다.
유리는 마치 잃어버린 물건이라도 찾은 것처럼,
“서사일지도.”
하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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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내가 뉴진스를 좋아하듯이. 시간이 지날수록 더 좋아하고 응원하는 건 그들이 현재진행형으로 만들어가고 있는 그 ‘서사’ 때문이기도 하지.)
지금의 나는 뉴진스를 좋아합니다. 라고 말하지만 사실 누군가를 ‘진득하게’ 덕질해본 적은 없다. 유행에 따라 좋은 것은 좋아하고 별로인 것은 넘긴다. 좋아하는 가수의 노래를 전곡 반복해서 듣거나 앨범을 사거나 콘서트에 가보기도 했다. 그렇지만 한 대상을 오래도록 쭉 좋아하지는 않았기에 스스로 누구의 팬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지금 생각하면 팬이라고 해도 괜찮을 것 같은데.. 그땐 그랬다.
(여기서부터는 사담이 기네요- 패스하셔도 좋아요)
나는 초등학교 때 S.E.S.와 god를 꽤 좋아했다. 춤과 노래를 따라하고 버디버디 아이디를 멤버 이름을 따서 지었으니까. (팬 맞다고 해줘...) 그러다 5학년때 짝꿍이 듣던 The Calling 덕분에 팝과 밴드음악에 빠지게 됐고, 중/고등학교 때는 아빠의 영향을 받은 스미카와 비슷하게 팝을 듣거나 (에이브릴 라빈, 미셸 브랜치, 켈리 클락슨, 크랜베리스, 킨, 뮤즈, 콜플, 그린 데이, 오아시스, 트래비스...), 국내 밴드에 빠지거나 (자우림, 롤러코스터, 캐스커, 체리필터, 델리스파이스, 마이앤트메리, 언니네 이발관, 넬, 페퍼톤스...) 밴드는 아니지만 윤상, 토이, 스윗소로우도 많이 들었다. 또 친척언니의 영향으로 일본음악이나 드라마를 종종 접하는 학창시절을 보냈다.
그 시절로 잠시 돌아가, 좋아했고 자주 들었던 것들을 적자니 줄줄이 참 많다. 기억나지 않는, 그 당시에도 마이너했던 노래들까지 생각하면 잡다하게도 좋아했다 싶은데... 사실 위에 적은 가수들 모두 너무나 유명하고 대중적인 아티스트들임에도 그때는 나만 알고 나만 좋아한다고 생각했다. 당시 누군가의 말로는 언니는 '오타쿠'에 야자 튀고 음방 가는 '빠순이'인데 넌 그냥 재수 없는 애라고 했다. 그래 보였나보다. 인정한다.
평범하다고 생각하면서 평범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스미카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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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45)
당시에는 유행하는 것들을 제 것인 양 손에 쥐고 휘두르는 그 아이들이 무서웠다. 주체성 없는 풍향계 같은 가벼움은, 언젠가 나를 혐오의 대상으로 겨냥할지 모른다는 공포와 표리일체였다.
그래. 풍향계 같은 거다.
최첨단 유행을 포착하는 심미안이 있는 게 아니라 시시각각 변하는 유행을 파악해서 그 시점의 다수파에 속해 있지 않으면 불안해할 뿐인 풍향계.
p.51)
그 풍향계들은 지금 무엇에 열중하고 있을까.
나는 단 한 순간이라도 그들처럼 체면도 염치도 없이 팝 음악이나 외국영화에 열광했던 적이 있었나.
그저 주변 어른들이 기뻐하니까, 다른 애들이랑 달라보일 수 있으니까. 그런 이유로 해외 지향적인 나를 연기해왔을 뿐인 게 아닐까.
“진심으로 좋아하고 몰입할 수 있어서 그것을 접할 때만큼은 불안한 마음이 들지 않는 무언가가 필요하다. / 하나라도 좋다. / 믿을 수 있는 것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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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쎄. 덕질해 본 아이들을 지금의 나는 부러워 한다고 말하면 스미카는 뭐라고 답하려나. 유행 따라 덕질하던 아이들이 설령 유행 때문이라고 할지라도 순수하게 좋아하는 마음과 열정을 솔직하게 발산했다는 점에서는 돌아가 부러워하게 될 점이라고. 그 아이들이 지금 네가 보기엔 ‘뭔가 하나를 진득하게 파고드는 것처럼은 보이지 않’겠지만 그건 모르는 거라고.
근본적인 문제는 스미카가(챕터 5까지의 스미카), 내가, 뭔가를 진득하게 좋아하지 못했다는 거다. 그래서 '넌 누구 좋아해? 누구 팬이야?' 라고 물으면 ‘딱히.. 그런거 없는데. 그냥 다 좋아해. 사실 잘 몰라’ 대답을 얼버무리던 모습만 남았으니까.
자존심이 셌던 나는 누구의 팬이라면 1부터 10까지 모두 꿰고 좋아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내가 좋아하는 밴드의 노래를 들어도 트랙 12개 가운데 마음에 안 드는 노래 2-3곡쯤은 꼭 있어서 그러면 그때부터는 자체적으로 ‘팬 탈락!’ 이렇게 생각했던 것 같다. 지금은 노래 2-3곡만 좋아도 팬이라고 말할 수 있을 만큼 많이 풀어진 것 같지만.
아, 근데 이거 책얘도 똑같은 거 아닌가?
가령 어떤 작품, <인 더 메가처치>가 너무 좋았다면 나는 아사이 료의 팬이라고 말할 수 있나? 전작인 <생식기>나 <정욕> 등을 읽지 않았는데 (번역되어 나와 있음에도) 팬이라고 할 수 있나? ~부터 시작해서 만약 팬이라고 말해버린다면 그 책들을 읽기도 전에 좋아하는 마음부터 들어야할 것 같은 이상한 마음은 학생 때의 마음과 별반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좋아한다고 말하는 마음이 왜 이리 어려운지!
그렇지만 나에게도 ‘팬’ 정체성에 대한 자기검열 없이 순수하게 좋아한 것이 하나 있다. 사람은 아니고, 연필이다. 2020년부터인데 지금까지 쭉 궁금해하고, 좋아하고, 모으고, 쓰고 있는 물건이다. 자칭 팬, 덕후라고 말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것.

전에 연필 커뮤니티에 이런 글을 쓴 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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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거 좋아해.”
나는 이 말이 참 어려운 애였다. 좋아하는 것을 감히 좋아한다 말하지 못하고..(아버지!)
대부분의 경우 오히려 관심이 더 없는 척을 하며 속으로는 ‘나 왜 반대로 말하고 있지? 진짜 이거 안 좋아한다고 생각하면 어쩌지?’ 조마조마하게 상대의 반응을 지켜보던 애. 어떤 걸 좋아한다고 말하는 게 상당히 부끄러운.
그 원인에 대한 이야기를 하자면 나도 모르겠고 복잡한 이야기가 될 테지만 어쨌든 지금의 나는, 누가 ‘우와, 연필 진짜 많다! 너 연필 좋아해?’ 라고 놀라 물으면 ‘응. 나 연필 좋아해.’ 라고 간단히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이 된 것 같다고. 어쩌면 그동안 좋아했던 많은 것들보다 훨씬 더 연필에 빠져 있기 때문에 주저 없는 대답이 가능해진 것 같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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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연필을 직구하며 해외 판매자에게 보낸 메시지도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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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 나는 매일 새로운 연필을 만나는 게 하루하루 삶의 기쁨이야.’
‘매일 새로운 발견을 할 수 있다는 점을 연필을 통해 발견했어. 그것만으로 아직은 하루 더 살 만하게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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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으. 대략 그런 의미의 더 오그라드는 메시지를 전할 뻔 했는데 영작 실력 부족으로 ‘삶의 기쁨’ 정도로 줄여 보냈었다. 왜냐면 그 미국인 판매자가 상세 설명에 ‘팔 마음을 먹기 어려웠지만 이 연필을 꼭 만나보고 싶었던 누군가에게 필요할 것 같다’는 글을 남겨둔 사람이라서. 혹시 나만큼 연필에 대한 관계와 애정을 이해하는 사람이지 않을까 싶어서.
그 메시지를 담아 보낸 연필은 재고 부족으로 얻지 못했지만 판매자는 이런 답장을 보내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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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친구. 연필을 정말 좋아하는구나. 그게 느껴져. 그리고 나 역시 너와 같아. 매일 다른 연필들은 내게 큰 즐거움이야. (…) 부디 그것을 오래 즐기길 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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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 마지막 문장이 그날따라 ‘부디 오래 살아주기를 바라’ 이렇게 들려서 연필을 받은 것 이상으로 좋았었다.
그런 마음. 연필을 매개로 주고 받는 마음이 좋았던 것이 덕질을 더 기쁘게 만들어준다. 연필을 쓰면서 나 자신과도 연결될 수 있어 좋았고, 그런 점에서 아사이 료가 쓴 것처럼 덕질이라는 건 고립을 벗어나고자 하는, 연결되고자 하는 행위가 맞다. 지금도 새로운 누군가와 연결되고자 할 때 연필은 좋은 연결고리가 되어 준다.
쓰다 보니 개인적인 덕후사를 써 버려서 '뭐라는 거지..?' 싶은 후기가 되었지만...
여하튼, 좋았던 그 6년간의 덕질.
슬프게도 지금 나에게는 ‘진심으로 좋아하고 몰입할 수 있’는 것이 없다!

지금의 나는 오직 돈 생각(걱정)뿐이어서 그렇게 좋아하는 연필을 잡아도 불안한 마음이 든다. 연필을 손에 쥐면 '하아- 이 덕질에 쏟은 중고차 한 대 값의 돈과... 연필 냄새로 가득찬 창고 칸...' 그런 생각들이 스멀스멀 핀다.
손에 돈이 들어와야 당장의 불안한 마음이 가시는 날들. 단 하나의 믿음은커녕 불안함이 수시로 찾아드는 지금 이 책을 읽게 되어서 나는 아사이 료식 서사에 작은 구원을 바라고 있다. (정말로요) 나머지 분량아 어서 와서 나를 구해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