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 : 지구의 운동에 대하여 2
우오토 지음, 하성호 옮김 / 문학동네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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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와 신앙이 모든 사회 질서의 중심이었던 15세기 유럽. 우주의 중심에 지구가 있고, 나머지 천체가 그 주위를 돈다는 천동설이 주류를 지배하던 시대. 이 '절대불변의 진리'에 의심을 품는 자들이 하나둘씩 나타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단자들이 모조리 처형당하는 사회에서, 금기로 여겨지는 '지동설'을 주창하는 것은 목숨을 걸어야만 하는 일. 그럼에도 역사를 움직이기 위해, 지구를 움직이려는 자들의 여정은 시작된다.

천동설과 지동설, 과학과 종교가 충돌하고 대립했던 역사에 작가의 독자적인 상상을 더한 SF만화 『지.』. 작품의 일본어 원제인 『チ。』에는 대지의 '地', 지성의 '知', 그리고 피를 뜻하는 '血'의 의미가 모두 담겨 있다. 지구의 전부를 알기 위해 합리와 이성으로 설명되는 세계를 넘어, '광기'라 불리는 영역에 자신의 인생을 맡기는 걸 주저하지 않는 자들. 이들의 이야기를 그려낸 『지.』는 스펙터클한 가상 역사 판타지이자 지성과 신념을 둘러싼 뜨거운 인간드라마라 부르기에 손색없는 작품이다.

책 소개

모든 이들이 천동설을 믿고 있었던 15세기의 유럽은 모든 이단자들이 처형당하던 시대였다. 그 사이 많은 이들의 기대를 한몸에 받고 있던 수재 라파우는 열두 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대학에 진학하게 된다. 뛰어난 두뇌로 천문학에도 많은 관심을 기울였던 라파우였지만, 천체 관측 따위는 그만 두고 앞으로는 모든 시간을 신학 연구에 쏟아야 한다는 의부님에 이야기에 어쩔 수 없이 뜻을 접어야만 했다. 그러던 중, 금지된 연구를 하다가 이단자로 붙잡혔던 의부님의 후배, 후베르트 라는 인물을 만나게 된다. 다짜고자 자신을 위해 천문을 연구하라며 협박해오던 그는 라파우를 지금까지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멋진 관측지로 데려간다. 그곳에서 두 사람은 천문학에 대한 심도 깊은 대화를 나눈다.

우주가 어떤 모양을 하고 있는지 알고 있나?

네, 지구가 중심이고 모든 천체는 그 주위를 복잡하게 돌고 있죠.

그럼 그 진리는, 아름다운가?

이 우주는, 아름다운가?

아름답지 못한 우주에 살고 싶지 않다던 후베르트는 이곳에서 처음으로 태양이 떠오르는 게 아니라 우리가 가라앉고 있음을 주장한다. 지구를 중심으로 모든 행성이 돌고 있는 게 아니라, 지구가 자전과 공전이라는 두 가지 운동을 하고 있다고.

어디 보자 이걸… '지동설' 이라 불러볼까.


지동설의 아름다움에 매혹된 소년이 어떤 결단을 내린 뒤로 10년이 흘렀다. 살인으로 먹고사는 대리 결투사 ‘오크지’. 매사에 비관적인 그에게, 동료 ‘그라스’는 “절대적으로 신뢰할 수 있는 ‘희망’을 찾았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가 보여준 것은 ‘화성’의 관측기록이었다.

2권은 라파우가 '어떤 결단'을 내린 뒤 10년이 흐른 시점에서 시작된다. 숭고하고 장엄한 하늘은 하등한 지구따위와는 조화를 이루지 못한다며 더 이상 하늘을 올려다보지 못하는 대리 결투사 오크지와 가족을 모두 잃은 뒤에 화성을 과측하는 것에서 절대적인 희망을 찾으며 살아온 그리스. 하지만 그리스의 희망은 이동속도가 줄어들기 시작하던 화성이 완전히 멈추고 심지어는 엉뚱한 방향으로 휘어가면서 완벽한 원궤도를 완성시키지 못한 채 무너지고 말았다. 관측을 그만둔 두 사람은 다음 날 이단자 수송 경비 일을 맡게 된다. 이단자와 함께 마차 뒷칸에 몸을 싣고 이동하던 두 사람은 그에게서 의미심장한 말을 듣게 된다.

지금의 이 C교가 정말 자네들을 구원해줄까?

아니, 애초에 그들이 말하는 천국이란 정말로 존재할까?

그저 자신들의 불안을 부추기기 위해 헛소리를 하는 거라며 코웃음을 치던 그라스는 자신도 모르는 새에 이단자의 말에 현혹되어 가고 있었다. 그저 허무맹랑한 소리라 치부하며 무시해도 될 이야기를 귀기울여 들으면서 도가 지나칠 정도의 과한 반응을 보인다.

'이단'이라. 자네가 그렇게 부르는 자를 왜 두려워하는지 잘 알겠군. 나 같은 이단자를 이해할 수 없어서가 아니야. 오히려 반대지. 자네 자신이 내심, 천국을 완전히 믿지 않기 때문이지.

"이렇게 괴롭고 혼란스러운 곳에 태어났는데, 실은 천국 따위는 없고 죽으면 그걸로 그냥 끝이 아닐까."

자신의 마음을 뒤흔드는 이단자의 말 앞에서 그라스는 혼란스러워 한다. 이단자는 그라스에게 희망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을만큼 괴로웠던 이 별이 우리가 살아갈 값어치가 있는 그 무엇이라고 이야기하면서, 멀리 보이는 산 중턱에 있는 돌 상자 속에 그 근거가 담겨있다고 이야기한다. 인생 최초로 자신의 운명을 바꿀 수 있는 기회에 도전할 권리를 얻은 거라는 이단자. 마음 편히 믿을 수가 없는 그의 말에 휘둘리던 그라스는 결국 이단자의 손을 풀어주고 그와 함께 마차에서 뛰어내린다. 얼떨결에 그라스와 같이 도망자 신세가 되어버린 오크지 역시 필사적으로 도망치는데, 성직자에 공격에 결국 덜미를 붙잡힌다. 도망칠 새도 없이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칼날을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었던 오크지. 그는 온몸을 내던지며 자신을 구하러 온 이단자 덕분에 죽음을 면할 수 있었다. 대신 칼을 맞으면서 죽음을 맞이한 이단자는 이렇게 말한다.

부탁하네. 역사가 자네를 필요로 하기 때문이지.


내가 저 시대 사람이었다면, 지동설이 옳다는 것을 알면서도 계속해서 연구를 이어갈 수 있었을까? 2권의 마지막장을 덮는 순간까지 이 물음이 머리를 떠나질 않았다. 모두가 이단자라고 손가락질 하는 세상에서 소신있게 자신의 주장을 이어가던 용기를 가진 인물들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

만화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건 전체적인 내용과 잘 어우러지는 그림체와 연출이라고 생각하는데, 소재에 대한 고민이 엿보이는 대사와 장면연출까지 아쉬울 게 없는 작품이었다. 결단을 내리고 하늘을 바라보는 라파우의 눈빛과 이제야 하늘을 제대로 마주할 수 있게 된 오크지의 뒷모습을 각각 1,2권의 최고의 순간으로 꼽고 싶다.

라파우의 눈빛

아름다운 하늘을 바라보는 오크지의 뒷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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