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수 사용 설명서
전석순 지음 / 민음사 / 2011년 7월
평점 :
품절


철수는 머리말에 이렇게 말하고 싶었을 것 같다. 나에 대해 오해하지 않았으면 한다. 그래서 나를 대변해 줄 수 있는 무언가가 필요했고 급기야는 사용설명서를 만들게 되었다. 나는 절대 불량하지 않으니까.

 

 

 

사람들은 철수의 결함을 발견할 때 마다 반품하기를 반복했고 그 덕분에 철수는 중고시장을 종횡무진 했다.

 

 

 

소비자들은 멍청하게도 콧대가 높다. 철수의 오류를 지적하기 전에 사용자의 변심이 포함된건 아닌지 생각해 볼 수는 없는 걸까. 당근과 채찍을 병행하지 않고 채찍만을 요구한다면 금방 철수는 망가지고 말 것이다. 먼지 청소 한번도 안한 청소기를 보고 빨아들이는 제 기능을 하지 못한다고 투덜대는 것처럼. 혹은 유행 따라 스마트폰을 자주 바꾸는 것처럼.

 

 

 

사용자들은 철수의 용도를 한 가지만 원하는 게 아니라 각각 다르게 원한다. 철수는 모든 걸 다 잘할 수 없었다. 하지만 평균의 철수들보다 적어도 뒤지지 않기 위해 업그레이드를 한다. 그러나 늘어나는 잡다한 옵션과 아쉬움이 여전히 남는다.

 

 

 

철수는 자신에게 의문을 가지게 된다. 난 열심히 하는 것 같은데 왜 뒤처지는 것 같지?

자신을 돌아보지 않고 뒤따라가기만 하니 내가 다른 철수들보다 무엇을 잘하는지 무엇을 좋아하는지 모르는 것 같았다.

 

 

 

p141 냉장고랍시고 사 온게 사실은 음식을 냉장 보관할 생각이 전혀 없는 제품이었다는 걸 비로소 알아챈 듯한 얼굴이었다. 그동안 언젠가는 제 기능을 다하겠지, 얼음을 얼릴 날도 올거야, 같은 막연한 기대를 해 왔지만 결국 이렇게 돼 버린 것이다.

 

 

 

어쩌면 철수는 이른바 ‘취급주의‘딱지가 붙어있는 깨지기 쉬운 유리병보다도 더 연약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 사실을 사람들이 모르는 것뿐이다. 덕분에 철수는 오늘도 눈치를 보고 있지않은가.

 

 

 

사실 이 설명서는 객관적이지 못하다. 지극히 주관적이다. 애초부터 지은이가 독자들을 우롱하는건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p218 사실 모두가 비정상이니 결국 모두가 정상인 셈이다.

 

 

 

그럴바엔 철수 안사고 만다. 우리 사람은 지나치게 평가하진 말자. 난 무섭다. 누군가가 내뒤에서 나를 별다섯개만점에 하나줄지 아예 안줄지 고민하고 있는 것 같아서 말이다.

 

 

 

이 책을 읽다보면 이런 생각이 든다. 철수는 사람일까? 물건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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