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로 읽는 미국 근현대사 - 투쟁은 노래를 낳고 노래는 역사가 된다
임상훈 지음 / 메멘토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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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시대의 다시 만난 세계’,

싸이의 챔피언

지드래곤의 삐딱하게

로제와 윤수일의 아파트리믹스 버전

GOD촛불하나

신해철의 그대에게

김수철의 젊은 그대

김연자의 아모르파티

에스파의 슈퍼노바

솔아솔아 푸르른 솔아

임을 위한 행진곡

아침이슬

펠리즈 나비다드Feliz Navidad’(크리스마스 캐롤)

......

한국인이 즐겨 듣는노래 목록이 아니다. 2024년 말 계엄정국과 2025년 초 탄핵정국, 대한민국을 뒤덮은 한겨울 계엄 반대 시위 현장에서 시민들이 다 함께 불러 제꼈던노래들이다. ‘이건 아니지...’라는 한 가지 생각으로 삼삼오오 모인 각계각층, 다양한 연령대, 다양한 성별의 시민들이 자신들의노래에 대한 추억을 호출했던 융합과 폭발의 현장, 50-60대 아저씨 아줌마들은 “K팝 만학도라며 다만세삐딱하게를 예습해 거리로 나왔고 청년들은 부모 세대가 불렀던 청춘 시절의 노래를 현장에서 배워 목이 터져라 신나게불러댔다. 부모님의 잔소리를 뒤로 한 채 응원봉을 들고 콘서트 현장을 누비던 십대 시절의 추억은, ‘좋아하는 노래를 듣고 따라 부르며 삶의 고단함을 위로받고 힘을 받아 다시 살아가는 작지만 소중한 일상을 파괴할 파시즘의 위험을 예리하게 감지한, 청년으로 성장한 세대에게 소환되어, 광장에서 함께 부르는 노래로 터져 나왔다. 학교 밴드, 친목 모임, 술자리, 가라오케, 노래방, 코인노래방까지, 노래라면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실력을 자기도 모르게 갈고 닦아온 대한민국 시민들은 몇 년 전 겨울과 봄 내내,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라는 슬픈 시구 대신 빼앗긴 내 일상을 내놔라 이것들아!” 분한 심정으로 거리를 쏘다니며 구호를 외치고 외치다 지치면 노래를 불렀다. 부르고 또 불렀다.

 

그 겨울 저항과 해방의 기억을 뒤로 한 채 일상을 되찾은 2026년 현재, 현장과 텔레비전을 통해 두 눈 시퍼렇게 뜨고 지켜본 내란 현장 범들에게 내란 혐의를 두니 마니, 어떤 혐의엔 무죄, 어떤 혐의엔 약간의 유죄 형량을 선고하니 마니...어후...‘답답하기 짝이 없는사법 제도권의 느려 터진 정의구현 실상에 숨이 막히던 차... <<노래로 읽는 미국 근현대사>>란 책을 읽었다. ‘노래라는 렌즈를 통해 저자는 21세기 현대인들이 당면해 있는 갖가지 문제와 모순과 비극의 실마리가, 유럽이 전 세계로 퍼뜨린 자본주의라는 체제와, 그 체제를 대표하는 미국의 못된인간들에게 있다는 사실, 그 세월을 살아낸 이름 없는 수많은 약하고 착한사람들이 체제에서 이득을 취하는 자들이 멋대로 일으킨 비극을 앉아서 당하고만 있지는 않았다는 생생한 현실, 그리고 그 현장에서 이들이 불렀던 노래야말로 지배자들이 홍보하는 역사에 묻혀 잊힌 그 시절의 풍경을 담고 있다는 진실을 전한다.

척박한 땅과 혹독한 기후에서 살아온 영국인들이 싸고 따뜻한 옷을 갈망하다 동양의 면직물에 열광해 영국 제국주의 세력이 인도와 중국을 차지해 원자재를 확보했다는 이야기, 면직 공장을 세워 노동 집약적 산업을 키우고, 전 세계를 활용하는 식민지 분업 구조를 고착화한 산업혁명 자본가들이 증기기관의 발명과 석탄을 활용하다 석탄을 실어 나르는 기차와 철도를 건설하게 된 사연, 영국에서 못내 다 깔지 못한 철도가 미국으로 들어와 백인 이민자들과 중국인, 흑인들까지 착취하며 전국 곳곳에 철도를 깔아대는 사이 이 노동자들이 고된 노동의 애환과 질곡을 노래에 담아 불렀고 이 노래가 이후 많은 노동운동과 흑인 차별 저항 운동을 뒷받침하게 되었다는 이야기, 1930년대 대공황 시절 일거리를 찾아 66번 국도를 지나던 수많은 실향민 대열에 있던 우디 거스리가 흑인 영가와 미주리의 민요와 철도 노동자의 노래를 모으고 편곡하고 노래를 만든 역사, 1930년대-50년대 라디오의 대중화와 대중음반 산업의 발달로 함께 부르는 노래가 듣는 노래로 바뀐 변화를 비롯해, 1960년대 들어 포크가 어떻게 민권운동과 결합해 다시 타올랐는지, 히피와 포크는 어떻게 연결되었는지, 젊은 세대가 세상을 어떻게 바꿔보려 했는지, 그러다 어쩌다 패배하고 개인 속으로 침잠하게 되었는지, 청년문화의 흥망성쇠를 따르며 함께 부르는 노래가 어떻게 시대의 무기이자 위로가 되었는지, 그리고 어떻게 사라져 갔다가 인종차별에 반대하는 흑인 민권운동에서 새로운 형식으로 부활했는지 등등, 저자는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부르면서도 무심코 지나쳤던 수많은 노래의 가사와 형식에 어떤 사연이 깃들어 있는지, 어떤 역사적 배경이 이들을 떠받치고 있는지, 어떤 은폐된 진실이 숨어 있는지를, 노래와 문화와 역사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함께 올올이 펼쳐놓는다.

 

특히 기억에 남은 이야기는 1912빵과 장미 파업이라 불리는 로렌스 섬유 파업과 <빵과 장미>란 노래에 얽힌 역사였다. 로렌스 방직 공장에서 일했던 노동자들은 대부분 이민자 여성과 이들의 아이들로, 약자 중 약자다 보니 마땅히 의지할 노동운동 단체가 없는 상황에 처해 있었는데, 엘리자베스 걸리 플린이라는 노조활동가가 파업으로 임금을 받지 못해 굶주린 아이들을 위해 아동 해방 기차를 만들어 백인 남성, 성인, 숙련 노동자 중심이 아닌, 이민자 여성과 어린이를 포함한 가족단위 삶의 투쟁을 벌인 감동적인 항쟁의 드라마다.

1900년대 초, 미국 시카고에서 근로 감독관으로 일했던 헬렌 토드라는 여성은 여러 공장에서 일하는 아동들과 여성, 이민자들이 12시간에 가까운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면서 임금조차 제대로 받지 못하는 현실을 보게 된다. 토드는 노동운동가로 활동하면서 관련 법안의 법제화가 시급하다는 결론에 이르렀으나 여성에게 참정권이 없어 먼저 여성 참정권 운동을 했다고 한다. 1910년 여성 참정권 운동을 알리는 활동을 하며 여성과 아동들이 받는 부당한 급여와 비참한 환경과 초과 노동에 대해 연설하면서 모든 이에게 빵을, 그리고 장미도Bread for all, and roses too”라는 말로 운동의 대의를 요약했고, 이때부터 빵과 장미라는 구절은 노동운동의 슬로건으로 자리 잡았다.

<빵과 장미>라는 노래는 1970년대 포크 가수 미미 파라냐가 같은 제목으로 시를 쓴 오펜하임의 시에 멜로디를 붙여 탄생했고, 이후 주디 콜린스, 존 바에즈 등이 불렀다고 한다. 탄광 노동자들과 성소수자들의 감동적인 연대를 보여준 <<프라이드>>란 영화에서도 어김없이 등장해 힘없는 사람들을 착취하는 지배자들에게 저항하는 방식은 약자들 전체의 연대라는 영원한 진실을 힘차게 알린다. 특정 정체성을 상징하는 고립된 운동이라는 오해와 독설에 시달리는 요즘의 특정 페미니즘 조류와 소수자 운동을 생각하면, 노동운동과 여성운동이 아름다운 삶과 귀한 아이들이란 공통의 의제로 뭉쳐 뭉클한 성과를 냈던 과거의 빵과 장미파업과 노래에 얽힌 서사는 오늘날 소위 강자들의 착취와 지배 논리 앞에서 흩어져 속수무책인 우리에게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

1970년 켄트 주립대 학생운동 진압 사건은 가슴 아픈 이야기다. 반자본주의와 반전의 기치를 걸고 기성세대의 착취와 위선을 향해 돌진하던 청년 세대의 폭발적인 저항운동이 꺾인 계기가 된 사건으로 소개된다. “전쟁 확전은 없다는 약속을 깨고 캄보디아 파병을 발표한 닉슨 정부에 대항하는 반전 시위를 향한 보복으로 주 방위군은 오하이오 주립대 켄트 캠퍼스에 장갑차를 들여보냈고 시위하는 학생들을 총으로 살해했다.(단번에 80년 광주가 떠올랐다.) 목숨을 걸고 세상을 바꾸려 해도 현실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는 무력감과 체념이 운동에 대한 대중의 지지를 약화시켰고, 운동과 조직은 철 지난 타령이나 일삼는 한심한 조소의 대상이 되었으며 청년들은 어느 순간부터 더는 함께 부르는 노래를 부르지 않았다.” 저항의 포크는 청년다운삶의 막막함을 토로하는 사이먼 앤 가펑클의 포크, 이상과 현실 사이의 괴리를 성찰한 조니 미첼의 노래들로 대체되었다. 책의 저자는 미국의 꼰대들이 미국의 꿈을 대표하는 미국의 젊음을 쏘아 죽였고 미국의 청춘은 막을 내렸다고 진단한다.

미국 청년들이 폭발시킨 저항의 노래라는 초신성21세기 대한민국에서 타올랐다는 것이 저자의 희망 섞인 평가다. 가수의 콘서트가 열렸다 하면 선창과 후창 중 후창을 부르는 노래 구조 따위 아랑곳 않고 가사 전체를 외워 하나도 놓치지 않고 처음부터 끝까지 다 외워 부르고 유명하지 않은 곡조차 싹 외워 부르는 전곡 암기 합창을 시전하는 우리는 가수 혼자 놀게 내버려두지 않는다. 우리가 놀아야 한다. 우리가 주체다라는 철학을 툭 실현하는 신인류다. 이런 폭발적 가능성이 있는 청년들에게 저자는 나지막이 아줌마처럼 한마디 한다며 ( )안에 조용히 읊조린다.(꼰대 남자 어른이고 싶지 않다는 조심스러움이 귀여웠다.^^) “얘들아, 젊고 재능 있는 아이들아. 힙합 하면 디스가 전부인 줄 알고, 남들 비하하고 욕하고 자기 가진 거 자랑하는 건 줄 아는 아이들아. 디스는 해야 할 때, 해야 할 대상에게 하는 거란다. 또 자기 자랑은 자기라는 인간에 대한 자부심이지, 자기 재산에 대한 자랑은 아니라는 것, 그건 정말 어리석은 짓이라는 거. 그건 힙합의 먼 선조쯤 되는 말컴 엑스라는 분께서 하신 말씀이야. 너희들이 디스해야 할 대상은, 너희들에게 누가 누가 더 디스를 잘하나 경쟁하게 만든 세상, 이렇게 살아야 한다고, 여기서 이겨야 잘 사는 삶이라고 강요하는, 너희들보다 나이 많고 돈 많은 인간들이 만든 세상이란다. 그러니 제발 너희들끼리 디스하지 마라. 너희들끼리 싸우지 마라. 그러다가 가족들 얘기만 나오면 눈물 찔찔 짜지 마라. 그게 바로 하지 말아야 하는 것들이란다.”

 

2026년 혹한의 겨울, 미국 미니애폴리스 시민들은 이민세관단속국ICE을 앞세워 이민자들뿐 아니라 시민들의 생명을 위협하고 인권을 마구 유린하는 대통령을 봐야 하는 끔찍한 시절을 보내고 있다. 영하 30도에 육박하는 추위 속에서 시민들은 날마다 모여 흑인 전통 가스펠이자 1960년대 대표적 민권 운동가가 된 <더 리틀 라이트 오브 마인>을 다시 부르고, <위 셸 낫 비 무브드>를 부르고 <어메이징 그레이스>를 부른다. 미국 노동 계급의 꿈과 상처를 음악으로 만들어온 브루스 스프링스틴은 <스트리트 오브 미니애폴리스>라는 노래를 시민들의 저항에 선사했다.

우리는 텔레비전을 통해 미국 시민들의 인권 유린을 목격하고 미국 같은 선진국에서 저런 일이 일어나다니!” 하며 놀라지만, <<노래로 읽는 미국 근현대사>>를 읽다 보면 사실 지금 미국이 겪고 있는 갈등과 비극은 이들이 세운 체제가 불가피하게 맞이하는 파국이라는 느낌을 강하게 받게 된다. 우크라이나에서, 팔레스타인에서 수많은 민간인들이 아름다운 삶은 고사하고 살 권리 자체를 위협받고 있은 지 이미 오랜 시간이 흘렀고, 멀리 떨어진 타국에서 벌어지는 전쟁뿐 아니라 이젠 자국 내에서까지 벌이는 폭력은 대개 미국 자본주의가 표방하는 힘의 논리가 자국과 나머지 세계에 초래한 위기의 단면들이다.

저자는 이 책에 등장한 모든 노래는 저항의 노래인 동시에 희망의 노래다. 이 노래들이 필자의 삶에 위로가 되었듯, 이 책을 읽는 모든 이들에게도 희망의 불빛이 되길 바란다.”라며 글을 마친다.

 

책을 읽고 나서 <다만세>를 다시 들었다.

 

“....사랑해 널 이 느낌 이대로

그려왔던 헤매임의 끝

이 세상 속에서 반복되는

슬픔 이젠 안녕

수많은 알 수 없는 길 속에

희미한 빛을 난 쫓아가

언제까지라도 함께하는 거야

다시 만난 나의 세계!”

 

뭉클했다.

 

아주 오랜만에 재치 넘치면서도 묵직한 울림을 주는 좋은 어른의 책을 읽었다.

강추!!

 

시카고로 이주한 흑인들이 마주한 가장 큰 문제는 역시 주거였다. <토박이>라는 미국 소설에도 나오듯 흑인 구역은 거의 백인 소유 부동산이었고, 흑인 일자리는 백인이 베푸는 자비에 ᄄᆞ라 언제든 사라잘 수 있는 한시적 자리였다. 하루에 남부의 네 배, 2달러를 번들 부슨 소용인가? 거지 같은 아파트 월세를 내고 나면 남는 돈이 없었다. 한국의 청년들도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돈 벌어서 뭐 하나? 이번 생에 내 집 마련이 불가능하다면? 헛된 노력만 하다 끝내 삶은 나아지지 않는다. 청년의 좌절은 국경과 시대를 초월한다. <토박이>에서 청년 비거를 고용한 백인 지주 달턴은 말한다."열심히 일해라. 잘하면 학교도 보내주마. 공부 열심히 하면 착한 사람이 될 거다. 착한 사람이 되면 사회의 인정도 받고, 돈도 많이 벌 수 있다." ...그건 네 생각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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