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마음 바깥에 있었습니다 - <고통을 달래는 순서>의 김경미 시인이 차곡차곡 쌓아올린 일상의 풍경
김경미 지음 / 혜다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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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레는 손끝으로 책표지를 더듬어보았다. 익숙하고도 반가운 새 책 냄새가 콧속으로 밀려들고, 가만히 옷소매를 정돈하는 일러스트를 따라 제목이 눈에 들어온다. <너무 마음 바깥에 있었습니다> 주어는 없었다. 문득 궁금해졌다. 내 마음, 아니면 네 마음?


이 책은 KBS 클래식FM <김미숙의 가정음악>이라는 프로그램의 한 코너에 쓰인 방송 원고들을 모은 산문집이다. 길게도 짧게도 연속되는 그 또는 그녀의 이야기들은 김경미 시인 특유의 감수성과 따뜻한 시선을 타고 남실남실 흘러간다. 저자는 머리말에서: 시간을 넉넉히 두고 퇴고한 글이 아니라 어떻게든 매일 만들어 내야 했던 글임을 강조함으로써 뭔가를 변명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고 말하지만, 방송 원고이기 때문에 더 와 닿는 부분도 있으리라 생각했다. 이를테면 목소리를 입혀 읽을수록 살아나는 생생한 어투 같은 것들일까.


동화처럼 아름다운 이국땅 이야기와 달콤 쌉싸름한 현실 그리고 특별하지 않은 누군가가 매일 마주하는 하루의 소소한 행복까지 작가의 붓끝은 실로 구석구석 뻗어 나간다. 그중에서도 마음을 울린 몇 편이 있었다.


화가의 편지는 빈센트 반 고흐가 1885감자 먹는 사람들을 완성한 후 동생 테오에게 부친 편지의 내용을 다룬다. 거기에는 그림의 액자를 반드시 짙은 금색이나 구릿빛으로 해 달라는, 얼른 들어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부탁이 들어 있는데 알고 보니 그의 의도는 화폭에 미처 담지 못한 따뜻한 화덕의 불빛을 표현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한다.


어떤 사람이 내게 계란 삶는 방법을 묻거나 확실해? 라고 묻거나 혹은,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는 질문을 던진다면 뭐라고 답하게 될까. 나 역시 사람이기 때문에 묻는 이의 의도에 가장 부합하는 대답을 해줄 듯싶다. 그러나 인공지능은 심플하다. 인공지능은 그저 외로우신가 보네요.’ 라고 말한다.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사람이기에 평생을 외로워할 수밖에 없는데 인간의 고유한 영역이라고 생각했던 부분을 로봇에게 간파당하고 만 것이다. 정보통신기술이 발달하면 할수록 이런 놀라움도 서서히 퇴색되어 밋밋한 일상이 되어 가리라.


내가 사랑한 얼굴에서는 고단한 생을 움켜쥐느라 내 얼굴 한 번 들여다볼 여력도 없었던 너와 나를 잔잔하게 위로한다. 화려하지도 특별하지도 않지만 살아온 시간을 고스란히 새긴 나만의 얼굴인 것이다. 이 얼굴을 있는 그대로 보아주는 관심과 사랑만한 선물이 또 있을까.


네 개의 소제목 아래 구성된 일흔아홉 꼭지 원고들 속엔 지금 이 시간에도 담벼락 너머, 같은 도시, 바다 건너 저 멀리나 지구촌 한쪽에서 우리와 같은 사람들이 겪고 있을 크고 작은 삶의 편린이 가득하다. 거기선 매일 새로운 나날이 시작되며 웃음과 울음이 골고루 섞여든다. 부러 인식하지 않으면 식상하기만 할 것 같은 이런 정서적 유대감이 바로 내일과 모레를 살게 하는 것이다.


느릿느릿, 거북이 같은 독서를 마치고 책을 덮는다. 오늘 읽은 이 작품 말미에 내 이야기로 한 꼭지를 더 엮어 팔십 편을 만들어볼까 싶다. 그러면 너무 오래 마음 바깥에 머물렀던 나와 당신이 어느 행간에선가 만나 서로에게로 한 걸음 더 다가갈 수 있을지도 몰라서. 그냥 그런 느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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