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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어난 장미 인형들
수잔 영 지음, 이재경 옮김 / 꿈의지도 / 2020년 5월
평점 :
절판
대뇌반구의 앞에 있는 부분으로 기억력과 사고력을 주관하는 기관이 있다. 이마엽이라고도 부르는 전두엽이다. 19세기 말 의사들은 중증 정신병 환자를 치료할 목적으로, 혹은 단순히 사람을 얌전하게 만들기 위해 이 부분을 잘라냈다. 눈 위로 송곳을 집어넣어 뇌 조직을 파괴하는 무시무시한 시술이 당시에는 가장 안전한 방법이었다고 한다. 하긴 무작정 두개골을 여는 것보다야 안전했을 것이다.
<깨어난 장미 인형들>은 위와 같이 꽤나 오싹한 설정들로 이루어진 디스토피아 로맨스다. 아카데미란 이름을 달고 깊은 산중에 폐쇄된 학교에서 세뇌교육을 받는 십 대 소녀들을 주인공으로 삼아 페미니즘도 이야기한다. 초반 50여 페이지는 ‘이노베이션스(innovation! 전근대적 결혼제물 제조공장이라기에는 황송하리만치 “혁신적인” 이름) 아카데미’에서의 생활상을 그려낸다. 요즘 기준으로 뇌가 우동사리 수준인 남교수들의 발언과 죽은 듯이 순응하는 소녀들의 모습이 묘사되기 때문에 숨이 막혀 참아주기 힘들다. 실제로 책장이 매우 더디게 넘어갔다. 한밤중 한 친구의 방에 모두 모여 여성잡지를 보면서 음담패설 하기 전까지 그랬다.
작품에는 커다란 반전이 두 번 정도 등장한다. 가장 카타르시스를 주는 부분은 주인공 필로미나가 ‘깨어나는’ 장면이다. 오픈하우스 파티에서 여러 모로 정신적 충격을 받고 와인을 마신 필로미나는 그날 밤 배정된 ‘비타민’을 본의 아니게 토한다. 정신병원에서 시간 맞춰 투여되는 알약처럼 소녀들은 밤마다 비타민을 삼킨다. 그런데 다음날 자신은 또렷이 기억하는 사건을 (비타민을 먹은) 다른 친구들은 처음 듣는 얘기 취급한다. 필로미나는 생애 처음으로 의심하기 시작한다. 반으로 쪼갠 비타민 캡슐 속엔 정체 모를 은색 쇳가루가 들어 있었고, 이때부터 주인공은 사라진 친구의 행방을 찾아 본격적으로 행동을 개시한다. 정신없이 빨려들어갔다.
다만, 재미있게 읽는 와중에도 문어체 위주의 번역과 심심찮은 오탈자가 신경에 거슬렸다. 원문은 읽는 맛이 어땠을지 책을 덮을 때까지 궁금했다. 작품 소개에서 ‘철창 안에 갇힌 장미는 뿌리를 공유한’다는 말에 매우 설레었던 건 사실이다. 그런데 거기까지였다. 이노베이션스 아카데미에 8개월째 다닌 소녀들은 서로를 너무나 아끼고 사랑하지만, 작품 종장에서 다함께 탈출을 도모하고 감행하는 모습을 보면 좀 허술하다. 이는 캐릭터들이 힘이 없어서라기보다는 작가의 안배가 허술했던 듯싶다. 그 근거는 다음과 같다.
책을 펼치자마자 필로미나보다 임팩트 있게 다가오는 등장 인물이 있다. 그녀의 이름은 밸런타인이다. 최초의 ‘깨어난’ 소녀이며 이 사실을 아카데미 관계자들 모르게 지켜가는 선구자 역할이다. 필로미나의 각성을 도운 그녀는, 주인공이 금기 서적인 시집을 들킨 순간 자발적으로 손을 들고 실험실로 끌려간다. 그리고 어이없이 ‘해체’된다. 밸런타인의 역할은 다만 촉진제였을까? 고통받는 여성들의 연대를 상징하는 인물로서 더 깊은 사연을 기대한 내게는 다른 의미로 충격적인 퇴장이었다.
박동하는 심장, 따뜻한 피와 살을 가진 사람인 줄 알았던 소녀들이 잘 만들어진 인조인간 즉 기계였다는 것도 신선한 설정이기는 했지만 뭐랄까, 전반적으로 이것저것 집어넣은 설정을 잘 버무리지 못했다는 느낌이 들었다. 두 번째로 큰 반전은 부모들의 존재다. 아카데미에 입학한 소녀들은 부모를 만나지 못한다. 전해 듣고 통화할 수 있을 뿐이다. 작중 필로미나는 악몽 속에서 환상인지 실제인지 구분하기 어려운 과거의 자신을 본다. 그리고 부모의 존재를 궁금해하는 모습이 꾸준히 묘사된다. ‘부모들’이란 실은 교내 통신실에 위치한 교신장치를 구성하는 AI였다는 설정이 장엄하게 뒤통수를 때린다. 그러나 역시 거기까지다. 아카데미를 탈출하고 책장을 덮는 순간까지 소녀들의 부모에 대한 진실은 속시원히 밝혀지지 않는다.
부유한 후원자와 교장을 비롯한 교수진 이하 사감은 실험실에서 키워낸 인조인간 소녀들을 가지고 무엇을 하려고 한 걸까. 그들은 충실한 악역이었지만 아카데미 배후에 관해서는 필로미나의 남자친구인 잭슨의 입을 빌려 단 한 줄로 요약된다: “걔네들은 (여성인권 억압을 조장한) 정부와 결탁한 로비스트였어!” 책 한 권에 모든 것을 담을 수 없음을 알고 있다. 하지만 마음껏 두근거린 독자를 적어도 책임져야 하지 않겠는가. 기대한 만큼 아쉬웠던 점은 더 있다. 작품 중후반, 필로미나의 진두지휘 하에 결탁한 소녀들이 반항하자 남교수들은 거침없이 폭언과 폭행을 행사한다. 소녀들은 모욕당하고 얻어맞으며 입에 담지 못할 비하발언에 상처를 입는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잔혹하게 학대당한 피해자를 관객이 가슴 아파하면서도 참아주는 이유는 나중에 가해자들이 합당한 처벌을 받기 때문이다. <깨어난 장미 인형들>은 어떠한가?
소녀들을 오랫동안 학대한 남자들은 대부분 살아남았다. 복수와 살인이 중심인 소설은 아니겠지만, 교육 일선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세뇌를 반복하며 소유욕을 드러내던 교수들이 고작 수면제 쿠키에 취해 ‘잠이 들었고’, 심지어 반드시 깨어나 아카데미를 재건할 거라는 얘기가 등장인물의 입을 통해 나온다면……. 이건 너무 말랑한 보복이다. 무엇보다 안타까운 부분은 드라마 <송곳>같이 눈을 돌리고 싶을 만큼 날것의 현실을 들이댄 소설도 아니고, 그렇다고 영화 <내부자들>처럼 현실에 없는 통쾌한 카타르시스를 선사하지도 못한다는 점이다.
온몸이 너덜거릴 만큼 극한의 전투를 겪고 남자친구의 친구 차를 빌려 타고 아카데미를 탈출하면서 치는 주인공의 대사가 “우린 이노베이션스 기업을 파괴할 거야.” 이다. 그럼 지금까진 무얼 했단 말인가? 여기에는 지금껏 스스로를 사람이라고 믿어 왔던 인조인간의 고뇌마저 찾아볼 수 없다. 사람인 줄 알았던 내가 기실 사람이 아니라 기계라니, 살아온 인생 궤적이 송두리째 흔들릴 만한 진실이 아닌가. 한데 소녀들은 의외로 차분하다. 눈물은 금방 마른다.
주인공의 저 대사를 읽고 책등을 다시 살폈다. <깨어난 장미 인형들 1>이 아니다. 속편이 출간될 것 같지 않으니 이 작품은 열린 결말을 추구한 모양이다. 신선한 소재와 무시무시한 설정이 어우러져 맥아리 없는 마무리를 맺었다. 소녀들이 고통당한 분량에 비해 뒤로 갈수록 모든 것이 성급한 작품이었다. 나는 수잔 영이 어떻게 ‘함께 싸울’ 것인지 잘 모르겠다. 일단 한국에 번역 출간된 이 작품만 읽고서는 그런 상태다.
하고픈 말이 많아 리뷰가 지나치게 길어졌다. 페미니즘은 예나 지금이나 말도 많고 탈도 많지만 한 가지는 당부하고 싶다. 페미니즘이라는 용어가 마케팅을 위해 가볍게 소모되어서는 곤란하다. 밸런타인을 그렇게 퇴장시켰다면 적어도 레논로즈 스칼라에게라도 주도권을 줬어야 옳았다. 면도날 심장을 가진 소녀는 스스로 되는 것이다. 든든한 남성 후원자인 윈스턴 위크스가 손잡고 약속해준 자유를 받아먹는 것이 아니라! 에필로그를 읽은 독자들은 고개를 끄덕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