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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지의 제왕 1~3 + 호빗 세트 - 전4권 톨킨 문학선
존 로날드 로웰 톨킨 지음, 김보원 외 옮김 / arte(아르테)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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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0p에 달하는 책이 가벼운 시집에 쓰는 다찌판 규격으로 나오다니.. 제본이라도 정통 사철 방식인가요? 가격에 비해 내구도가 불안할 것 같은 예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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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틀랜드 -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에서 뼈 빠지게 일하고 쫄딱 망하는 삶에 관하여
세라 스마시 지음, 홍한별 옮김 / 반비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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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특한 책이다. <하틀랜드>를 시작하면서 생각했다. ‘오거스트라는 가상 청자를 상정하고 써 내려간 이 이야기는 세라 스마시 가족의 일대기다동시에 저자의 자서전이며 미국 사회가 내포한 구조적 폐단을 다각도로 해부한 사상서이기도 하다작가의 말에 이 책을 쓰기 위해 자료를 모으는 데만 15년이 걸렸다고 나와 있다삶은 사람이 살아온 기록이고 태어나서 삶을 영위하는 동안에는 무슨 기록이든 쌓이게 마련이지만그런 걸 일일이 소중하게 보관하는 사람은 드물 거다어렴풋이 기억에만 남아 있을 뿐그래서 가족 구성원 하나하나의 삶의 궤적을 되짚으며 장면 재생하듯 펼쳐지는 이야기가 신기해 어안이 벙벙하게 책장을 넘겼다.




할머니어머니딸로 이어지는 모계 가족이 중심축이다세라 스마시는 작품 초반부터 한 가지 목표를 이야기한다모계로 유전된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것내 목소리를 내고 살 것책을 읽다 보면 볼드 처리된 구절이 종종 등장하는데 이는 스마시 내면에서 들려오는 물음이다. ‘내 딸이라면 어떻게 할까’, ‘내 딸한테라면 어떻게 하라고 말하면 좋을까?’. 이 물음은 자아가 흔들리는 순간에도중대한 선택의 길목에서도 어김없이 등장한다저자는 오거스트에게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고 독자는 그 이야기를 따라가고 있으므로 자연스럽게ㅡ 나도 물음에 답하려고 고민을 하게 됐다여성인 나 자신에게 물어봐야만 하는 순간들이 많았다.


작가는 농부의 딸로 태어나 흙과 벌레와 노동이 있는 어린 시절을 보냈다가장 가까운 친구는 가난이었다고 서술한다. (세라 스마시의 할아버지인) ‘아니가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산 농장을 소개하면서 이야기는 거침없이 흘러간다그들의 삶은 지구 반대편 캔자스에서 일구어지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역시 사람 사는 풍경이 거기에 있다바쁘게 뚝딱거리는 삶의 모습에 빠져들 무렵 예고 없이 가족이 처한 현실이 들이닥친다.




말을 건네는 방식이기 때문에 쉽게 읽히지만 문장에 스민 진실조차 말랑하지는 않다. <하틀랜드>는 총 일곱 개의 장으로 나뉘어 가족가난여성주거부의 불평등을 이야기한다노동 계급으로 태어난 사람들의 삶은 쉴 틈이 없다살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몸을 움직여야 한다그런데도 현실이 녹록지 않다매우 공감되는 부분이 여럿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주택 문제다. “자기 집이 온전히 자기 것이 아닐 때 진정한 승자는 은행이라는 걸 모를 수가 없었겠지.(p. 293)” 우리가 살아가는 2020년 오늘의 현주소를 이만치 정확하게 저격할 수 있을까예전에는 소를 팔아 자식 대학 보내면 자녀는 반드시 취업을 했다안정적인 수입을 바탕으로 성실하게 저축하면 내집 마련의 꿈도 마냥 꿈은 아니었다요즘은 어떤가?


가난한 사람들이 거처를 계속 옮기는 걸 안정감이 부족하다는 뜻이라고 해석하지만사실 그건 가난하다는 뜻일 뿐이야.(p. 284)” 아야야뼈마디 부서진다전치 37주다주민등록초본의 주소 변동사항을 포함해 출력하면 네 장이 넘어간다말하자면 나도 가난한 집안의 딸인 셈이지집값 폭등의 황금열차를 놓쳤다이젠 정말로 꿈이 되어간다남이사가 아니다이거. 2년짜리 전세를 누가 고정된 주소라고 얘기할 수 있느냔 말이다안정적인 가정을 희망하지 않는 사람은 없지만 사회가 주문하는 조건은 너무나 편협하다세상에는 다양한 가족의 형태가 있고 누구든 안전하고 행복하게 살아갈 권리를 갖는다그러나 취약계층 복지 시스템에 대한 뿌리 깊은 편견 때문에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혜택 받기를 주저한다좀더 정확히 말하면 가난을 증명하고 전시하라는 요구가 부당함에도 불구하고 다른 방법이 없기 때문일 거다.




주거 문제 다음으로는 도러시-베티-지니에서 작가 세라로 이어지는 노동계급 여성의 삶이 마음 아팠다가난이 1차 굴레여성이라는 사실이 2차 굴레다현대에는 여권 신장이 이전보다 많이 진보했다고 하나 여전히 여성은 옷차림에 신중해야 하고귀가 시간을 신경써야 하며 무례한 성희롱 발언에 정면 대응하지 못해 화내는 대신 웃으며 넘기는 법을 배운다무엇보다 대한민국의 성범죄 처벌 법령은 있으나마나한 수준이다같은 범죄행위에 대해 피의자가 남성일 경우와 여성일 경우 양형이 판이하다작가의 어머니와 할머니는 남자가 주도하는 가정에서 폭력에 노출되고 죽음의 위협을 맞닥뜨린다그러나 현실에서 독립을 쟁취할 힘이 없었던 가난한 여성들은 문이 열려 있어도 탈출하지 못했다현대에도 가장이 주는 생활비에 목숨이 걸려 이혼하지 못하는 전업 주부들이 많다마음에 가시처럼 걸리는 아이들과유독 이혼한 여성에게만 주홍글씨처럼 나붙는 이혼녀’ 낙인은 2차 3차 가해라고 하겠다.




세라 스마시는 10대 임신과 출산을 포함하는 이러한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내기 위해 스스로 성공하는 길을 택했다마지막 장에서 자신의 삶과 출생지를 돌아보며 성공 대신 희생한 것들을 회상하는데 까닭 없이 먹먹해졌다. <하틀랜드>는 작가가 어머니에게 헌정한 작품이자 태어나지 않았지만 삶을 지탱하는 데 무엇보다 힘이 되었던 딸내면의 작가 자신, ‘오거스트에게 진심을 담아 보낸 긴 편지다.


살아가는 일은 갈수록 팍팍해지고 세상에는 위선과 거짓이 가득하지만 <하틀랜드>는 그것들을 면밀하게 파헤치면서도 결코 증오로 끝맺지는 않는다이 책은 뻔한 자수성가형 자기 계발서도 아니고 통렬한 사회비판 문학도 아니다백인 노동계급으로 힘겨운 시대를 살아낸 한 가족의 일대기이자 작가의 솔직한 내면 고백이며땀흘리는 삶에 대한 고요한 존중이다주변 누구에게나 추천해주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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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어난 장미 인형들
수잔 영 지음, 이재경 옮김 / 꿈의지도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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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대뇌반구의 앞에 있는 부분으로 기억력과 사고력을 주관하는 기관이 있다. 이마엽이라고도 부르는 전두엽이다. 19세기 말 의사들은 중증 정신병 환자를 치료할 목적으로, 혹은 단순히 사람을 얌전하게 만들기 위해 이 부분을 잘라냈다. 눈 위로 송곳을 집어넣어 뇌 조직을 파괴하는 무시무시한 시술이 당시에는 가장 안전한 방법이었다고 한다. 하긴 무작정 두개골을 여는 것보다야 안전했을 것이다.


<깨어난 장미 인형들>은 위와 같이 꽤나 오싹한 설정들로 이루어진 디스토피아 로맨스다. 아카데미란 이름을 달고 깊은 산중에 폐쇄된 학교에서 세뇌교육을 받는 십 대 소녀들을 주인공으로 삼아 페미니즘도 이야기한다. 초반 50여 페이지는 이노베이션스(innovation! 전근대적 결혼제물 제조공장이라기에는 황송하리만치 혁신적인이름) 아카데미에서의 생활상을 그려낸다. 요즘 기준으로 뇌가 우동사리 수준인 남교수들의 발언과 죽은 듯이 순응하는 소녀들의 모습이 묘사되기 때문에 숨이 막혀 참아주기 힘들다. 실제로 책장이 매우 더디게 넘어갔다. 한밤중 한 친구의 방에 모두 모여 여성잡지를 보면서 음담패설 하기 전까지 그랬다.


작품에는 커다란 반전이 두 번 정도 등장한다. 가장 카타르시스를 주는 부분은 주인공 필로미나가 깨어나는장면이다. 오픈하우스 파티에서 여러 모로 정신적 충격을 받고 와인을 마신 필로미나는 그날 밤 배정된 비타민을 본의 아니게 토한다. 정신병원에서 시간 맞춰 투여되는 알약처럼 소녀들은 밤마다 비타민을 삼킨다. 그런데 다음날 자신은 또렷이 기억하는 사건을 (비타민을 먹은) 다른 친구들은 처음 듣는 얘기 취급한다. 필로미나는 생애 처음으로 의심하기 시작한다. 반으로 쪼갠 비타민 캡슐 속엔 정체 모를 은색 쇳가루가 들어 있었고, 이때부터 주인공은 사라진 친구의 행방을 찾아 본격적으로 행동을 개시한다. 정신없이 빨려들어갔다.


다만, 재미있게 읽는 와중에도 문어체 위주의 번역과 심심찮은 오탈자가 신경에 거슬렸다. 원문은 읽는 맛이 어땠을지 책을 덮을 때까지 궁금했다. 작품 소개에서 철창 안에 갇힌 장미는 뿌리를 공유한다는 말에 매우 설레었던 건 사실이다. 그런데 거기까지였다. 이노베이션스 아카데미에 8개월째 다닌 소녀들은 서로를 너무나 아끼고 사랑하지만, 작품 종장에서 다함께 탈출을 도모하고 감행하는 모습을 보면 좀 허술하다. 이는 캐릭터들이 힘이 없어서라기보다는 작가의 안배가 허술했던 듯싶다. 그 근거는 다음과 같다.


책을 펼치자마자 필로미나보다 임팩트 있게 다가오는 등장 인물이 있다. 그녀의 이름은 밸런타인이다. 최초의 깨어난소녀이며 이 사실을 아카데미 관계자들 모르게 지켜가는 선구자 역할이다. 필로미나의 각성을 도운 그녀는, 주인공이 금기 서적인 시집을 들킨 순간 자발적으로 손을 들고 실험실로 끌려간다. 그리고 어이없이 해체된다. 밸런타인의 역할은 다만 촉진제였을까? 고통받는 여성들의 연대를 상징하는 인물로서 더 깊은 사연을 기대한 내게는 다른 의미로 충격적인 퇴장이었다.


박동하는 심장, 따뜻한 피와 살을 가진 사람인 줄 알았던 소녀들이 잘 만들어진 인조인간 즉 기계였다는 것도 신선한 설정이기는 했지만 뭐랄까, 전반적으로 이것저것 집어넣은 설정을 잘 버무리지 못했다는 느낌이 들었다. 두 번째로 큰 반전은 부모들의 존재다. 아카데미에 입학한 소녀들은 부모를 만나지 못한다. 전해 듣고 통화할 수 있을 뿐이다. 작중 필로미나는 악몽 속에서 환상인지 실제인지 구분하기 어려운 과거의 자신을 본다. 그리고 부모의 존재를 궁금해하는 모습이 꾸준히 묘사된다. ‘부모들이란 실은 교내 통신실에 위치한 교신장치를 구성하는 AI였다는 설정이 장엄하게 뒤통수를 때린다. 그러나 역시 거기까지다. 아카데미를 탈출하고 책장을 덮는 순간까지 소녀들의 부모에 대한 진실은 속시원히 밝혀지지 않는다.


부유한 후원자와 교장을 비롯한 교수진 이하 사감은 실험실에서 키워낸 인조인간 소녀들을 가지고 무엇을 하려고 한 걸까. 그들은 충실한 악역이었지만 아카데미 배후에 관해서는 필로미나의 남자친구인 잭슨의 입을 빌려 단 한 줄로 요약된다: “걔네들은 (여성인권 억압을 조장한) 정부와 결탁한 로비스트였어!” 책 한 권에 모든 것을 담을 수 없음을 알고 있다. 하지만 마음껏 두근거린 독자를 적어도 책임져야 하지 않겠는가. 기대한 만큼 아쉬웠던 점은 더 있다. 작품 중후반, 필로미나의 진두지휘 하에 결탁한 소녀들이 반항하자 남교수들은 거침없이 폭언과 폭행을 행사한다. 소녀들은 모욕당하고 얻어맞으며 입에 담지 못할 비하발언에 상처를 입는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잔혹하게 학대당한 피해자를 관객이 가슴 아파하면서도 참아주는 이유는 나중에 가해자들이 합당한 처벌을 받기 때문이다. <깨어난 장미 인형들>은 어떠한가?


소녀들을 오랫동안 학대한 남자들은 대부분 살아남았다. 복수와 살인이 중심인 소설은 아니겠지만, 교육 일선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세뇌를 반복하며 소유욕을 드러내던 교수들이 고작 수면제 쿠키에 취해 잠이 들었고’, 심지어 반드시 깨어나 아카데미를 재건할 거라는 얘기가 등장인물의 입을 통해 나온다면……. 이건 너무 말랑한 보복이다. 무엇보다 안타까운 부분은 드라마 <송곳>같이 눈을 돌리고 싶을 만큼 날것의 현실을 들이댄 소설도 아니고, 그렇다고 영화 <내부자들>처럼 현실에 없는 통쾌한 카타르시스를 선사하지도 못한다는 점이다.


온몸이 너덜거릴 만큼 극한의 전투를 겪고 남자친구의 친구 차를 빌려 타고 아카데미를 탈출하면서 치는 주인공의 대사가 우린 이노베이션스 기업을 파괴할 거야.” 이다. 그럼 지금까진 무얼 했단 말인가? 여기에는 지금껏 스스로를 사람이라고 믿어 왔던 인조인간의 고뇌마저 찾아볼 수 없다. 사람인 줄 알았던 내가 기실 사람이 아니라 기계라니, 살아온 인생 궤적이 송두리째 흔들릴 만한 진실이 아닌가. 한데 소녀들은 의외로 차분하다. 눈물은 금방 마른다.


주인공의 저 대사를 읽고 책등을 다시 살폈다. <깨어난 장미 인형들 1>이 아니다. 속편이 출간될 것 같지 않으니 이 작품은 열린 결말을 추구한 모양이다. 신선한 소재와 무시무시한 설정이 어우러져 맥아리 없는 마무리를 맺었다. 소녀들이 고통당한 분량에 비해 뒤로 갈수록 모든 것이 성급한 작품이었다. 나는 수잔 영이 어떻게 함께 싸울것인지 잘 모르겠다. 일단 한국에 번역 출간된 이 작품만 읽고서는 그런 상태다.


   하고픈 말이 많아 리뷰가 지나치게 길어졌다. 페미니즘은 예나 지금이나 말도 많고 탈도 많지만 한 가지는 당부하고 싶다. 페미니즘이라는 용어가 마케팅을 위해 가볍게 소모되어서는 곤란하다. 밸런타인을 그렇게 퇴장시켰다면 적어도 레논로즈 스칼라에게라도 주도권을 줬어야 옳았다. 면도날 심장을 가진 소녀는 스스로 되는 것이다. 든든한 남성 후원자인 윈스턴 위크스가 손잡고 약속해준 자유를 받아먹는 것이 아니라! 에필로그를 읽은 독자들은 고개를 끄덕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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쓴다,,, 또 쓴다 - 문학은 문학이다
박상률 지음 / 특별한서재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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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집 <쓴다,,, 또 쓴다>를 읽었다박상률 선생님이 쓰신 책이다작가님이라고 할까 싶었는데 쓰고 보니 선생님이 더 어울린다중학교 국어 시간에 배웠던 수필의 성격 중 하나는 신변잡기였다글쓴이가 생활에서 겪은 온갖 잡다한 기록이 녹아 있다는 거였다자연히수필은 가볍고 쓰기 쉬운 글로 여겼다정신을 놓고 쓰면 언뜻 일기와도 비슷해 보였다하지만 수필이 일기고 에세이가 수필이라면 뭐하러 서로 다른 이름을 갖고 있겠나다 똑같이 부르면 되는걸그렇게 집어든 이 책에서 답을 찾았다.


잘 쓴 수필에는 글쓴이의 'TMI(Too Much Information)' 뿐만 아니라 어떤 현상에 대한 생각이 담겨 있다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은 인생을 어쩌고 사는지 궁금해서 TMI에마저 관심을 갖게 되는 거다진도에서 나고 자랐다는 선생님의 글을 읽고 있으면 풀냄새 흙냄새 밥냄새가 난다구수하고 정겹다. '고갱이'니 '당의정'이니 11수능 세대인 나한테는 다소 낯선 단어들이 많았지만 그것조차 할아버지 옛이야기마냥 재밌기만 했다앉아서 책을 펼쳐 들면 술술 넘어가고 잠시 덮어놔도 곧 다시 읽고 싶어졌다다 보고 나니 배부른 집밥처럼 소화도 잘 됐다이런 글을 쓰고 싶었다누구나 아는 말로 아무나 못하는혹은 못 꺼내놓는 얘기를 하는 거그런 글쓰기에 대한 로망이 있어서다거침없고 솔직하고 담백하면서도 때로 뭉클하다.


나는 이 책을 보기 전에는 박상률 작가에 대해 아는 게 없었다제목에 이끌려서 서평단을 신청했다글을 한 편씩 읽으면서 글쓴이가 어떤 사람인지 궁금했지만 일부러 알아보지 않았다대신 단어와 문장에서 희미한 형상을 잡아내며 상상해 봤다책을 덮고 나서 검색하니 박상률 작가님은 내가 그렸던 이미지와 거의 비슷했다제일 딱 맞는 부분은 갈비씨처럼 말랐다는 묘사였다그러나 외적인 면모만이 아니라 글 자체의 무늬가 글쓴이의 이미지를 닮았다그 점이 신기했다나를 비롯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너무 힘주어서, '배운 티나는 글을 쓰려다 보니 글 쓴 본인과는 이미지가 상당히 다른꾸며진 글을 쓰게 되지 않나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글에 옮겨 담은 모습이 무슨 장인의 솜씨 같았다내 글은 구슬만 많고 꿰지를 못하는 반쪽짜리 보배다뭔가 도움을 받으려고 이 책을 펼쳤는데 부러움만 잔뜩 늘었다.


그래도 쓰고 또 쓰면 언젠가는 부들부들한 물풀 같은 글을 써낼 수 있지 않을까멋있거나있어 보이거나남들보다 눈에 띄게 쓰려는 부담을 내려놓고 솔직담백하게 쓰고 싶다잘 써도 좋고 못 써도 좋으니 꾸준히 펜 놓지 않고 쓰고 싶다담백함이 생각날 때 다시 읽으려고 한다누구한테나 권해주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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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와 성서에서 유래한 영어표현사전 알아두면 잘난 척하기 딱 좋은 시리즈
김대웅 지음 / 노마드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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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와 성서에서 유래한 영어표현사전의 구성은 매우 알차고 독특하다. 1부에선 그리스·로마 신화에서 유래한 영어표현을 다루고, 2부에선 성서에서 유래한 영어표현들을 구약과 신약으로 나누어 알아본다나는 만화로 보는 그리스 로마 신화’ 세대였기 때문에 신화 속 인물들신과 인간의 얽히고설킨 운명 그리고 지명이나 관용어구들의 유래를 낯설지 않게 복습할 수 있을 것 같았다내게 브래드 피트를 최초로 가르쳐 준 영화 <트로이>를 비롯해서 이래저래 서구 신화를 접할 기회가 많았던 덕분이다헌데 1부 1장을 열자 의아해졌다카오스와 코스모스카오스는 내가 알던 그 카오스가 맞는데… 코스모스의 유래를 신화와 연결 짓기는 영 어색하다많이 들어본 의미로는 첫째로쌍떡잎식물 초롱꽃목 국화과의 한해살이풀그러니까 가을에 피는 꽃 코스모스가 있었다두 번째로 칼 세이건의 기념비적인 과학교양 고전이 있었고단어들의 어원과 유래를 보니 코스모스(kosmos)란 그리스어로 질서·조화·정연한 배열을 의미하며 자그마치 혼돈의 상태인 카오스로부터 창조되었다고 한다나는 무엇도 알지 못했던 것이다신선한 충격이 뇌 주름을 타고 퍼져 나갔다와중에 라틴어 표기인 cosmos가 cosmetic(화장품)이라는 단어를 탄생시켰으며 그 뜻은 얼굴을 정연하게 배열해주는’ 도구들이라고 말하는 이 책에 한 방 얻어맞았음은 물론이다도대체 정연하지 못한 이목구비를 아침마다 재배열하는 데야 잠은 늘 부족할 수밖에 없는 것이니까 말이다.


그 뒤로도 올림포스 12신 이전의 거인족과 티탄족을 다룬 부분이 매우 인상적이었다자세히는 몰랐던 부분이기 때문에 재미있었고 페이지마다 집중해 읽어야만 했으므로자연히 독서의 속도가 떨어지기 시작했다이 책은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 엄연히 사전식 구성을 취한다개인차가 있겠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정독하겠다는 목표를 세운다면 쉽게 지칠 수 있을 듯하다내가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을 구분해 목차를 먼저 살피고 궁금한 부분부터 펼쳐 보는 것이 흥미를 유지할 수 있는 비법이라고 생각한다그래서 제우스와 헤라 이후부터는 그렇게 했다.


3장으로 건너뛰니 자연과 관계있는 반신 그리고 괴물들을 다룬다아직도 기억에 남는 몇몇 단어들 중에 거인족 티폰(Typhon)이 있다제우스가 거인족들과 벌인 마지막 전쟁이었고 이 전투에서 제우스는 무려 힘줄을 잘려 힘을 쓸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한다아무튼 승리했지만 티폰의 위력이 실로 무시무시했음을 실감할 수 있는 대목이다후에 티폰’ 이야기는 중세 아랍인들을 통해 중국에까지 전해져 태풍(typhoon)으로 변형되어 쓰인다고 한다티폰이 태풍으로 변형되기까지는 물리적으로도 어학적으로도 가히 천로역정이었을 법한데변형 전후가 한결같이 위협적인 존재를 의미한단 부분이 놀라웠다이를테면 태풍이 이름 모를 과일의 이름으로 붙여졌을 수도 있지 않은가이에 대한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아마 어원학을 공부해야 할지도 모를 노릇이다.


구약성서 편에서 나는 또 한 번 고비를 맞이했다그게 무엇인고 하니 자본주의 사회 소비 일선에 선 인간으로서 무지의 소치를 실감하는그런 고비였다여행 가방의 유명 상표인 샘소나이트(Samsonite)’가 삼손에 종족을 뜻하는 접미어가 결합되어 삼손족즉 튼튼하다는 뜻을 지닌 단어인 줄은 나만 몰랐을제발 그렇지 않기만을 바란다여행 가방을 사러 가면서 상표의 어원을 탐구하지 않고 더 나아가 샘소나이트와 암모나이트에서 발음상의 동일성을 발견하며 낄낄댄 사람이 나 혼자가 아니기를 간절히 기원하겠다명품의 프라이드란그저 또박또박한 한글로 튼튼한 여행가방이라고 써 붙이면 왜 안 되는지 개탄스러울 따름이다.


책을 읽으며 내가 한 경험이 무지를 깨닫거나 웃음이 절로 난 순간들에 국한되지는 않았다가령 오병이어’ 이야기를 보자예수가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의 군중을 먹였다는 기적을 이르는 이 말은 오직 예수의 성스러움을 증거할 뿐만 아니라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나눔의 가치를 되새기게 한다는 것을 아는가성서에 기록되지 않은 또 다른 해석은 이러하다수많은 사람을 먹이기에 턱없는 식량을 걱정하고 있는데 한 어린아이가 품에서 가진 것을 모두 내놓자 이를 따라 주위의 어른들도 자기의 도시락을 꺼내 놓았다는 것이다십시일반의 힘으로 오천 명이 먹을 수 있었던 거다솔선수범과 나눔의 미덕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단지 너무 자주 잊을 뿐이다.


신약성서 편에는 착한 사마리아인이 등장한다마치 관용 어구처럼 쓰이는 이 표현이 착한 이웃도움을 베풀고 대가를 바라지 않는 사람동정심이 많은 사람을 의미한다는 것은 많은 이들이 알 듯하다루카복음서에서 유래된 이야기를 바탕으로 세계 여러 나라에서는 착한 사마리아인의 법을 제정했는데 이는 구조 불이행을 처벌하는 법규라고 한다나에게 특별한 위험을 주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곤경에 처한 사람을 구해주지 않는 행위라머릿속이 복잡해졌다요즘을 사는 우리는 위기에 처한 타인을 구해야 할 때 나에게 특별한 위험을 주는지 아닌지조차 판단하지 않으려고 하는 것 같아서였다이런 현상의 원인을 어느 한쪽에서 찾을 필요는 없을 성싶다이유 없이 누군가를 해하는 범죄자도사건이 일어나는 현장에서 최대한 빨리 몸을 피하려는 나도 저마다의 변명과 사정을 방패삼을 것이기 때문이다언제나 불의의 피해자만이 가운데 끼어 소중한 생명과 명예를 잃는다범죄는 강력한 처벌로 다스린다지만 방관하는 마음을 뿌리 뽑는 것은 사회 구조의 문제다우리는 어디로 어떻게 나아가야 할까.


신화와 성서에서 유래한 영어표현사전에는 너무나 많은 단어의 어원과 유래가 수록되어 있어 속독하기에는 아깝고 아쉽다하나하나 생각하고 곱씹으면 모두 피와 살이 될 지식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이 책의 백미는 과연 마지막에 추가된 부록이라고 할 수 있다우리가 많이 쓰는 관용구를 라틴어 원문발음과 함께 알파벳순으로 정리해 놓았다이제는 그 흔적을 더듬어 찾을 수밖에 없는 사어(死語)들을 가만히 따라 읽노라면 신비로운 느낌마저 가지게 된다중간 중간 건너뛴 부분을 채워 완독하려면 앞으로도 시간이 걸리겠지만기꺼이 감수하고 독서의 즐거움을 누리려 한다. ‘알아두면 잘난 척하기 딱 좋은’ 시리즈가 이번에도 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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