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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신주의 다상담 2 - 일, 정치, 쫄지마 편 ㅣ 강신주의 다상담 2
강신주 지음 / 동녘 / 2013년 7월
평점 :
이 책의 전체적인 느낌은 기분이 나쁘다는 것이다. 그리고 내용이 좀 오락가락한다는 것? 상담이다 보니 그 사람에 맞는 조언을 해주고자 하려는게 이해는 됐으나 전체적으로 산만하다. 대화체라서 그런 것 같기도 하고.. 그렇지만 강신주씨가 줄기차게 주장하는게 있는데 그건 ‘주인의 삶’을 살자는 것.
일 편.
자본주의 사회에서 일이란 곧 돈이다. 돈 때문에 일하니 공부도 취업에 도움이 되는 것만 찾고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에 대한 고민은 없다. 돈만 많이 벌면 된다는 것. 그렇지 않으면 돈도 많이 벌면서 보람있는 일을 하고 싶다는 것. 하지만 강신주씨는 딱 잘라 말한다. 그런 일은 없다고. 예술가들은 창조적 일을 하며 자신이 하고싶은 일을 하지만 그건 돈이 안된다. 둘 다 충족하는 삶은 매~우 드물다.
타인이 원하는 일을 하는 사람은 노예의 삶이다. 그런데 우린 왜 거기서 보람을 찾고 죽자고 일을 해주나? 자본주의의 중요한 키워드 ‘자발적 복종’.
그런데 이것에 대한 해결책(?)이 게을러져라. 이다. 자본주의라는 거대한 사회체제를 바꾸는 방법치곤 너무 개인적이고 소극적이지 않은가. 패러다임의 전환일까? 너무 소극적이라 생각하는 내가 너무 운동권틱한 거대담론에만 찌들어있는걸까. 정말 대중들이 할 수 있는 방법은 자신이 바뀌는 것 밖에는 없는걸까?
정치 편.
가진 사람들이 더 정치에 민감하기 마련이다. 정치는 ‘사적소유’를 둘러싸고 벌어지기때문. 우리는 가진게 없어 정치에 덜 민감한 것.
가라타니 고진은 국가를 신성시하지 말고 “하나의 독특한 교환체계”로 보자고 제안. 교환되는 것은 수탈과 재분배. 수탈은 우리의 세금이고 재분배는 그 수탈한 것으로 다시 나누는 것. 국가라는 형식은 민주주의에 반하는 것이다.
사회민주주의 역시 개개인들이 주인이라는 사상인 민주주의 앞에 사회의 개념을 붙여 분배자의 역할을 강조. 이 사회는 소유를 인정하고 여전히 통치자와 피통치자의 위계구조가 존재하게 됨으로써 마르크스사상과 민주주의에 반한다.
인문학이 고민하는 정치는 ‘어떻게 소유의 형식을 줄여나갈 수 있을까’이다. 강신주씨는 이 어떻게를 누구도 갖지 못하기 때문에 아무나 가질 수 있는 영역을 넓혀나가는 것으로 생각한다. ‘누구도 갖지 못하기 때문에 아무나 가질 수 있는 영역’은 땅, 공기와 같이 소유할 수 있으나 ‘영원히’ ‘독점적’이라는 것이 없는 것을 말한다. 즉, 공동체의 영역이라는 것이다.
이것을 넓혀가는 방법은 우리 개개인의 한걸음이다. 개인적으론 공감되는 부분이 많았다. 오직 내 생각만이 사람들을 사랑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는 진보진영 특유의 아집과 독선은 분명 반성해야 할 지점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개개인의 한걸음은 말그대로 개개인마다 다르지 않을까? 어떤 사람은 대선에서 야권연대가 꼭 필요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고 어떤 사람은 진보의 색깔이 더 선명한 후보가 완주를 해야 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것은 진보정치의 발전을 위해 노력하는 개인의 한걸음일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것을 조율하고 의견을 맞춰야 하나? 아니면 개인의 생각을 존중하며 각자의 길을 가야하나?
마지막으로 쫄지마 편은 읽는 내내 기분이 나빴다. 강신주씨는 참 여성주의적 시각은 부족하구나 싶었다. 위선이니 위악이니 얘기하지만 결국은 시스템의 문제인데 개인이 위악을 떠는게 무슨 도움이 된단건지 도무지 공감되지 않았다. 하지만 마지막 에필로그 부분은 맘에 들었는데 이 부분을 통해 다시 한번 강조하고 있다.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고. 당당히 자신의 삶에 주인으로 서라고.
그렇지만 이건 절대 개인 혼자의 힘으론 되지 않는다. 물론 개개인이 변해야 사회인식도 변할 것이다. 상담이라곤 하지만 지나치게 개인이 감내하고 변화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함께 변화하는 방법을 모색할 수 도 있을텐데... 그래야 개인이 변화하기 위해 감내의 힘도 생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