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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증명 - 추억이 만들어지는 시간 ㅣ 증명 시리즈
정석화 지음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6년 6월
평점 :
소설의 시작은 작가의 말이 아닐까. 요즘엔 작가의 말이 없이 후기만 있는 소설이 꽤 많다. 작가의 말 몇마디가 때론 소설 전체를 아우를 수 있다. 이 소설엔 짧지만 작가의 말이 인상적이다.
<이 소설을 쓸 수 있도록 제게 영감을 준, 제가 만난 수많은 사람들에게 이 소설을 바칩니다. 그들의 사소한 아집과 더 사소한 이즘과 더더 사소한 거짓말, 그리고 그에 어울리는 열정적인 목소리와 나비의 날갯짓만큼이나 우아했던 몸짓은 이 소설의 흙이 되고 물이 되고 햇살이 되었습니다. 아울러 그들의 그들에 대한 모든 편견에도 고마움을 전합니다>
정중한 것 같지만 결코 그렇지만은 않은 뉘앙스가 풍긴다. 작가는 인간을 불신하는 것이 아닐까. 소설을 읽으면서 의심 자체가 편견이었음을 인정했다. 작가의 시선은 따뜻했고, 그 마음은 끝까지 변치 않고 지속되었다. 작가의 말은 이 소설의 나침반이었다.
상처는 이 소설의 키워드이다. 상처가 덧나 햇살에 반짝이는 사금파리처럼 빛나 보일 때가 있다. 아프지만 아름답게 보이는 상처의 조각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사라가 하는 행동들이 그랬다. 먼 인간의 기억, 혹은 인간임을 포기하지 않는 그녀의 모습은 절로 가슴이 먹먹했다. 밥먹을 때 일부러 사라처럼 해보기도 했다. 사라를 위해 자신을 기꺼이 놓아버리는 중혁도 믿음직스러웠고, 한 여자를 평생 찾아헤맨 한 남자의 사랑 혹은 집념은 애처러웠다. 죽음의 순간 마주하게 된 아버지와 아들에 이르러 눈물을 쏟아냈고, 중혁과 엄마가 눈을 마주치는 장면에서는 눈물보다는 안도감에 숨 한번 뱉어냈다. 셰익스피어가 했던 말처럼 '비극은 희극보다 즐겁다'. 이 소설에는 여러 가지 장르가 복합되어 있다. 몰입감과 이야기 중심의 서술, 공감이 가는 캐릭터, 치밀한 플롯, 이 모든 것이 잘 어우러져 있다. 작가의 능수능란함이 다시 내 꿈을 자극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