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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기억하지 않았다
안재성 지음 / 창비 / 2018년 3월
평점 :
![](http://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18/0317/pimg_7851691531864259.jpg)
한국전 인민군 전쟁 포로 정찬우의 입으로 듣는 전쟁과 포로수용소 이야기
격정적일 것이란 기대와 달리 주인공 정찬우, 그의 언어는 온화하고 오히려 담담했다.
소설의 중반부까지 긴장감이 떨어질 만큼 너무 태연하게 과거를 들려줘 실화를 바탕으로 엮은 소설이 가질 격정적인 이야기를 기대한 내가 지나치게 앞서 간 게 아닌가 싶었다.
이 소설은 6.25 전쟁에 인민군 교육 위원으로 참전하게 된 정찬우라는 인물이 포로수용소와 형무소를 거치며 십여 년의 고난의 시간을 직접 기록한 실명 회고록을 바탕으로 안재성이 쓴 것이다.
고향인 전라도에서 부모 손에 이끌려 만주로, 그곳에서 수재 소리를 듣는 천재로, 다시 독립군으로, 그러나 천성이 생명을 사랑하고 학문을 사랑하던 그는 선생님이 되고자 했으나 역사는 그를 전쟁터로 몰아넣었다.
일 년 가까이 이념이 충돌하던 지독한 전쟁터 속을 쫓겨 다녔지만 그는 총 한 번, 남북의 병사 한 명, 민간인 한 명 헤쳐본 적이 없다.
지독한 온정 주의자!
전쟁터에서 이런 사람이 또 있을까?
유엔군과 국군에게 북으로 쫓기고 또다시 포위되 남으로 쫓기다 체포되어 포로수용소에 갇히게 되지만 전쟁의 와중에 만났던 인간 군상들의 변절을 직접 겪게 된다. 인민군 장교로 병사들을 인정사정 없이 포탄 앞으로 몰아붙였던 이들이 포로수용소에서 오히려 같은 편이었던 사람들을 고발하고, 감시하는 일에 앞장서는 모습에서 이념형 인간과 거리가 멀었던 정찬우의 실망이 얼마나 컸을지.
지독한 폭행과 고문, 추위와 배고픔 그리고 징벌방의 가혹함을 당당히 견디던 그는 결국 자신과 똑같은 길을 걷고 있던 동병상련의 동지 심영순의 죽음과 함께 무너진다. 애초에 정찬우는 이념형 인간이 아니었다. 그가 북을 선택한 이유는 이념이 아니라 학문의 자유였다. 이념을 선택했던 인간들이 변절해 오히려 극우들과 한치의 차이 없이 동지를 팔고 동료를 착취하는 모습에서 정찬우의 절망이 깊어갔던 것이다.
결국 정찬우는 전향서를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