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기억하지 않았다
안재성 지음 / 창비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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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 인민군 전쟁 포로 정찬우의 입으로 듣는 전쟁과 포로수용소 이야기

 

격정적일 것이란 기대와 달리 주인공 정찬우, 그의 언어는 온화하고 오히려 담담했다.
소설의 중반부까지 긴장감이 떨어질 만큼 너무 태연하게 과거를 들려줘 실화를 바탕으로 엮은 소설이 가질 격정적인 이야기를 기대한 내가 지나치게 앞서 간 게 아닌가 싶었다.

이 소설은  6.25 전쟁에 인민군 교육 위원으로 참전하게 된 정찬우라는 인물이 포로수용소와 형무소를 거치며 십여 년의 고난의 시간을 직접 기록한 실명 회고록을 바탕으로 안재성이 쓴 것이다.

고향인 전라도에서 부모 손에 이끌려 만주로, 그곳에서 수재 소리를 듣는 천재로, 다시 독립군으로, 그러나 천성이 생명을 사랑하고 학문을 사랑하던 그는 선생님이 되고자 했으나 역사는 그를 전쟁터로 몰아넣었다.
일 년 가까이 이념이 충돌하던 지독한 전쟁터 속을 쫓겨 다녔지만 그는 총 한 번, 남북의 병사 한 명, 민간인 한 명 헤쳐본 적이 없다.

지독한 온정 주의자!
전쟁터에서 이런 사람이 또 있을까?

유엔군과 국군에게 북으로 쫓기고 또다시 포위되 남으로 쫓기다 체포되어 포로수용소에 갇히게 되지만 전쟁의 와중에 만났던 인간 군상들의 변절을 직접 겪게 된다. 인민군 장교로 병사들을 인정사정 없이 포탄 앞으로 몰아붙였던 이들이 포로수용소에서 오히려 같은 편이었던 사람들을 고발하고, 감시하는 일에 앞장서는 모습에서 이념형 인간과 거리가 멀었던 정찬우의 실망이 얼마나 컸을지.

지독한 폭행과 고문, 추위와 배고픔 그리고 징벌방의 가혹함을 당당히 견디던 그는 결국 자신과 똑같은 길을 걷고 있던 동병상련의 동지 심영순의 죽음과 함께 무너진다. 애초에 정찬우는 이념형 인간이 아니었다. 그가 북을 선택한 이유는 이념이 아니라 학문의 자유였다. 이념을 선택했던 인간들이 변절해 오히려 극우들과 한치의 차이 없이 동지를 팔고 동료를 착취하는 모습에서 정찬우의 절망이 깊어갔던 것이다.

결국 정찬우는 전향서를 쓴다.

 

 

 

 

 

나에게 자유를 다오

머리 풀어 산발하고

알지 못하는 목적지를 향하여

맹진하는 태풍과도 같이

 

 

1960  .
4.19혁명의 물결은 형무소 담장을 넘어 정찬우에게도 찾아든다.
드디어 자유를 찾게 된 정찬우.
출소하는 그를 맞으러 온 동생과 함께 꿈에도 그리던 고향으로 돌아가게 된 인민군 포로 정찬우의 이야기는 그렇게 끝이 난다.


6.25 전쟁 와중에 정찬우처럼 포로가 된 병사들은 얼마나 될까?

 

 

 

전투에서 총 맞아 죽고, 폭격에 죽고, 굶어 죽고, 포로가 되어서도 고문으로 죽고, 병으로 죽고....

이들의 그 고난의 세월을 기억해주는 이 얼마나 될까?
아무도 기억하지 않았다정찬우가 자신의 삶을 기록한 이유가 아닐까.
또 같은 이유로 겨우 5개월 된 아들을 남기고 형무소에서 석방된 지 10년 만에 비망록을 남기고 허망하게 세상을 떠난 정찬우의 삶을 안재성 역시 소설로라도 기록하고 싶지 않았을까?

소설을 읽는 내내 티베트의 승려 팔덴 갸초의 가둘 수 없는 영혼이 떠올랐다.
중국 공산당에 의해 감옥에서 온갖 고초를 겪다 달라이 라마를 만나 그의 조언으로 자신의 고난을 기록한 책으로 인민군 포로 정찬우의 고난을 기록한 이 소설이 무척 닮았기 때문이다.

우리 땅에 정찬우가 한 사람 뿐 일까?
그런데 왜 아무도 말하지 않는 것일까?
어쩌면 우리는 아직도 이념의 가운데 갇혀 또다른 이념을 강요받던 수용소의 공포가 완전히 사라지지 않은 사회를 살고있기 때문은 아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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