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길동전 빛나는 우리 고전 그림책 시리즈 7
권혁래 글, 홍선주 그림, 권순긍 자문 / 장영(황제펭귄) / 2014년 10월
평점 :
품절


"저희 집에 있는 홍길동은 ㅇㅇㅇ가 썼다고 했는데 이번에는 ㅇㅇㅇ데, 작가가 왜 달라요?"

 

매주 화요일 아침마다 초등학교 아이들 교실에서 아침책 읽어주기 봉사를 몇 년째 하고 있습니다. 

콩쥐팥쥐, 평강공주, 견우와 직녀 만이 아니라 선녀와 나뭇꾼 이야기도 모르고 있는 아이들을 보고 책선정 모임에서 이번 년도에는 우리 고전을 꼭 읽어주기로 하고 아이들 교실에서 열심히 읽어주었습니다. 

 

먼저 제목을 읽고, 작가와 그린이, 그리고 출판사까지 꼭 읽어줍니다. 

(옮긴이가 있으면 옮긴이까지 꼭 이야기 합니다.)

그런데, 아이들의 이 물음, 참 당혹스러웠습니다. 

 

"저희 집에 있는 홍길동은 ㅇㅇㅇ가 썼다고 했는데 이번에는 ㅇㅇㅇ데, 왜 달라요?"

 

 혹시나 싶어 도서관에서 같은 제목의 책을 꺼내 보니 홍길동전의 원작자인 허균을 밝히지 않은 출판사의 책들이 몇 권 있었습니다. 

아무리 아이들이 읽는 책이라하더라도 원작자가 있는 책이라면 원작자를 밝히는 것이 출판자의 기본 자세가 아닐까요?

(설마 특정 저작권자가 없어서라고 하지는 않을테고.)

 

홍길동전의 경우는 구전되어 오던 이야기를 훗날 기록한 다른 고전들과 달리 허균이라는 원작자가 분명하게 있는데 밝히지 않는지 이유가 궁금해집니다.

우리가 책에 관한 서평을 하거나, 책 속의 한 대목을 인용하거나, 책 이야기를 할 때의 작가와 역자, 출판사에 대해 밝히는 것이 가장 기본으로 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책을 만든 작가와 출판사의 노고에 대한 독자의 기본 예의라고 생각합니다.

 

장편이 원작인 작품을 유아와 저학년 아이들이 읽는 그림책으로 출판하는 경우는 원작에 충실하기엔 한계가 분명히 있습니다. 그 점을 감안하더라도 홍길동전을 읽다보면 눈과 머리에 참으로 거슬리는 대목이 있는데 바로 길동의 계모 '초란'의 길동에 대한 헤코지에 대한 장면입니다. 길동이 신분의 한계에 대한 울분(호부호형으로 표현되는)으로 출가를 결심하게 되고, 초란의 흉계는 부수적인 것이라는 느낌으로 표현해 읽어주더라도 어린 아이들은 계모가 죽이려했다는 것에 더 자극을 받습니다.


좋은 그림도 좋고, 좋은 내용의 글도 좋지만, 책이 지켜야할 가장 기본을 기키는 책을 보고 싶은 독자의 쓴 소리라고 보아주길 바래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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