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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 사람의 길을 열다 (양장)
배병삼 지음 / 사계절 / 2014년 8월
평점 :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 도서관 초청강연회에 온 도서관 관장 님의 말씀에 의하면 요즘 인문학 열풍이라고 해야할지 고전 열풍이라고 해야할지 어린 초등학생들이 논어나 고전 문학 책를 빌리러 온다고, 너무 어렵지 않느냐고, 초등학생이 읽으면 좋을 재미난 책들도 아주 많다고 해도, 굳이 빌려 간다고 한다.
요즘 신동을 넘어, 영재라 불리는 아이들이 많다더니 너무 영특해서 이미 논어를 꽤뚫어 읽을 경지에 이른 것인지, 아니면 독서이력 시스템에 일찍부터 고전을 읽으면서 오래 전부터 준비된 인재로 자랐음을 증명하기 위한 증거로 남기려고 한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썩 유쾌한 이야기는 아니었다.
그러고 보니 대한민국의 평균적인 교육 과정을 거친 사람치고 논어와 공자를 모르는 이가 있을까?
그럼 과연 논어 속 공자의 말씀 중에 알고 있다 말할 수있고, 알고 있는 것이 있어 이를 실천한다 말할 수있는 것은 과연 얼마나 될까?
"學而時習之 不亦說乎
有朋 自遠方來 不亦樂乎
人不知而不慍 不亦君子乎
배우고 때로 익히면 기쁘지 아니하랴!
벗이 먼 곳에서 찾아오면 즐겁지 아니하랴!
남이 알아주지 않아도 성나지 않는다면 군자가 아니랴!"
'누구나 잘 알고 있지만, 누구도 잘 읽지 않는 책'이라고 비아냥대지 않았던가.
<논어>도 이런 정의에 딱 맞는 고전이다. 잘못된 관습, 누추한 전통의 대명사로 알려져 있을 뿐, 누구도 그 속내를 알려고 들지 않는다는 점에서다.
--논어, 사람의 길을 열다, 2005년 서문에서--
나 또한 이와 다르지 않았음을 고백한다.
심지어 공자를 죽이면 나라를 살릴 수 있다며 자극적인 언어를 쏟아내던 학계의 새로운 빛인지 새로운 오른쪽인지 교수가 펴낸 책을 읽으면서 그가 죽이면 나라를 살릴 수 있는 것이 공자인지, 유교인지, 주자학인지에 대해 긴가민가 하던 부끄러운 옛일이 있었음도 더불어 고백한다.
이쯤이면 공자 님이 "니들이 공자를 알아?" 라며 한 큐를 날릴 만하다.
아니나 다를까,
"사이비 지식인 (鄕原)은 덕을 해치는 강도(賊)이다."
공자의 말씀이 어찌이리 딱 맞는지.
20대엔 공자 님 말씀은 유행 지난 쾌쾌묵은 옛것으로 폐기되어 마땅한 유물이라 생각했다.
30대엔 공자 님 말씀보다 내가 하는 말이 더 옳다 여기며 혹세무민하며 살았다.
40대가 되니 공자 님이 무겁고도 무섭다. (쪽 팔린다.)
춘추 시대는 사람이 눈앞의 사람을 창칼로 죽였다.
오늘날 자본주의 시대는, 사람은 뒤로 숨고 돈이 나서서 사람을 해친다. 도구가 달라지고 방법은 교묘해졌을지언정, 사람이 사람을 살상하는 짓은 다를 바 없다.
나는 오늘 ,논어를 읽는 까닭이 여기 있다고 생각한다.
--논어, 사람의 길을 열다, 2014년 서문에서--
공자의 길은 '그럼에도' 몸을 일으켜 비관적인 인간 세상으로 몸을 던지는 길이다. 문제를 사회 구조의 탓으로 돌리며 뒤로 물러나 조소하는 은둔의 길도 아니요. 고작 제 한 몸의 안락을 위해 이념과 지식을 파는 참여 일변도의 길도 아닌 그 사잇길, "안 될 줄을 번연히 알면서도 뚜벅뚜벅 (정의를) 걸어가는 길". 이것이 공자의 길이다. 여기서 공자의 눈물이 또 후두둑 떨어진다.
--논어, 사람의 길을 열다, 266쪽--
나 역시 눈물이 후두둑 떨어진다.
부끄러움의 눈물이다.
사람이라고 다 사람이 아니다.
사람의 길을 알고자 이 가을이 다 가기 전에 논어를 읽어야겠다.